달리다 보면

1화

by 여미

분명 엄마의 목소리였다.


“레디, 땅!”


순간적으로 나도 앞으로 고꾸라지듯이 내리 달렸다. 생각할 틈도 없이 몸이 먼저 반응하면서 힘차게 달렸다. 엄마와는 매주 금요일마다 달리기 시합을 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한동안 그것을 하지 못했다. 모처럼 오랜만에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신발끈이 서서히 풀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달렸다. 엄마가 알면 분명 “넘어지면 어쩌려고 그래” 하며, 달리기를 멈추게 할 것이 뻔했다. 오늘만큼은 멈추기 싫었다. 아니, 멈추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오늘이 지나면 이런 기회는 오지 않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몰려왔다. 이상했지만 계속 그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달리기는 언제 어느 때고 할 수 있는 아주 평범한 것인데, 앞으로 할 수 없게 된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중얼거리면서 한쪽 발을 들어 신발 끈을 양말 속으로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다. 이 정도면 신발끈이 풀렸는지는 아무로 모를 거라 생각했다. 내가 삐대는 사이 엄마는 벌써 저만치 멀어지고 있었다.


엄마는 늘 같은 옷을 입고 달렸다. 한여름인데도 손수건은 항상 목에 두르고 있었고, 등산용 바람막이를 입었다. 몸이 움직일 때마다 꺼끌 거리는 느낌이 별로일 것 같은데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땀이 식으면 곧 추워질 거라 했다. 엄마는 항상 나와 나란히 달리지 않고, 먼저 앞서서 달리곤 했다. 어쩌면 엄마는 나와 달린다는 생각보다는 혼자 달리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 더 맞을 것이다. 그래도 난 엄마와 달리는 것이 좋았다. 우리는 왜 달리는 걸까, 그리고 나는 왜 달리는 걸까, 그 이유를 하나씩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엄마가 갑자기 달리기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엄마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일 듯 말 듯하다가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잠에서 깼을 땐, 오후 4시가 지나고 있었다.


“나 버섯을 먹었더니 변해버렸어”


두두는 마치 나를 모르는 사람 보듯이 쳐다보았다. 우리의 지난 추억을 하나씩 읊어줘도 믿지 않는 눈치였다. 두두는 나 혼자 부르는 연두의 별명이다. 연두는 종종 자기 이름이 너무 완두콩 같이 들려서 싫다고 했다. 그래서 네가 좋아하는 이름으로 불러준다고 했더니 그러면 ‘두’만 불러달라고 했다. 그렇지만 ‘두’라고 하기에는 ‘부’라고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발음하기도 예쁘지 않았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두두’라고 지었다. 두두는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에 들었는지, 메신저나 메일 주소 따위를 모두 두두로 바꾸었다. 두두는 초록색 물통을 들고 어정쩡한 자세로 나를 경계하며 노려보았다. 완벽히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성형수술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편이 나를 받아들이는 데에 더 자연스러운 편인 것은 진작에 알았지만 두두한테 만큼은 숨기고 싶지 않았다. 영원히 우리 사이에 비밀은 없기로, 골동품 언덕에서 옥반지를 마주 대고 약속한 것도 한몫을 했다. 거듭 다행이라 생각하는 것은 내 목소리는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두두는 분명 내 목소리를 기억할 거라고, 작은 희망을 가졌다.


“여긴 나랑 희서만 아는 곳인데....”


두두는 우리의 아지트인 ‘골동품 언덕’을 제삼자에게 들켜버렸다는 눈치였다.


“내가 류희서라니까. 네가 아는 류희서! 나도 어떻게 된 지는 모르겠는데.... 버섯을 먹고 소원을 빌었더니, 진짜 이뤄진 거야. 최고지?”


두두는 여전히 내 눈을 피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이 상황을 끝내주었으면 하는 표정으로, 불편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희서가 일주일 동안 학교에 안 나왔어”


두두는 금방 울어버릴 듯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이 얼굴로 갈 수 없었어. 모두가 못 알아볼 게 뻔하니까.”


두두가 어렵게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아예 다른 사람이 된 나를 보는 눈빛은 불안한 듯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까무잡잡했던 소년 같은 모습은 온 데 간데없고 새 하얀 피부에 짙은 쌍꺼풀과 오뚝한 코, 입술은 앵두 빛깔이었다. 두두는 골동품 언덕에서 함께 발견했던 청록색 옥반지가 끼여진 내 검지를 보고는 한쪽 입술이 움직였다. 똑같은 반지가 두두의 왼쪽 가운데 손가락에 끼여져 있었다.


“뭐라고 소원을 빌었는데?”


두두의 마음이 조금 움직인 듯 보였다.


“아이유처럼 예뻐지게 해 달라고”

“풉! 푸하하하하”

“웃지 마. 진짜야. 그렇게 빌었더니 이뤄진 거라고!”

“그럼 난 다코타패닝처럼 만들어달라고 할래”


두두는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골동품 언덕 정상에서 폴짝 뛰어서 내려와 내 옆에 앉아 물었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조금 더 어려운 걸 물어야겠어”


두두는 이미 나를 알아보는 듯했으나, 어느 순간 재미가 들렸는지 게임을 하듯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마음에 들지 않아도 마음에 든다고 말하는 사람”

“내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창고에서 우유 쏟은 범인이 너라는 거”

“범인이라니, 무슨 큰 죄를 지은 것 같잖아”

“알겠어. 그러면.... 아주 작은 실수를 한 사람.”

“이제 마지막 질문을 할게. 이것만 통과하면 널 류희서라고 인정할 거야”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가도 나는 최대한 답을 맞히려고 온 집중을 했다. 내 기억력에 문제만 없다면, 두두와 관련된 모든 추억을 말할 자신이 있었다.


“류희서가 좋아하는 사람”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모른다는 듯이 두두를 쳐다보았다. 곧이어 떠오르는 한 사람이 생각나자 너무 부끄러워서 돌멩이 뒤로 숨고 싶었다. 그게 누구인 지는 유일하게 두두만 알고 있었다.


“그야.....”


두두는 내가 부끄러움이 많다는 것, 그리고 자꾸만 그 얘기만 나오면 피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너도 알잖아”

“그니까 그게 누구냐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멀리서 자전거 벨이 울렸다.


태호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었다. 두두와 나는 동시에 그를 쳐다보았다. 긴 다리를 휘적휘적 거리며 페달을 가뿐히 밟고는 아파트 단지 골목길로 들어갔다. 자전거 바구니에는 책이 가득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화요일이었고 동사무소에서 운영하는 작은 도서관이 열리는 날이었다. 어디선가 그의 노랫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나는 가만히 그가 지나간 흔적을 여전히 따라가고 있었다. 두두는 내 눈빛이 모든 걸 말해줬다는 듯,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내가 그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겨울이었다. 아파트가 재개발되면서 다른 친구들은 이미 전학을 가거나 멀리 지방으로 이사를 갔다. 그나마 가까운 동네로 이사를 갔던 우리 셋만이 남은 수업을 꿋꿋이 들었다. 두두는 나와 비슷하게 소심한 구석이 있다가도, 거짓말을 하거나 아닌 척을 하는 행동을 경멸했고 태호는 어딘가 화목한 집안에 잘 자란 도련님 같은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가 가진 물건들은 모두 말끔해 보였고,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나는 처음에 태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툭하면 내 짧은 머리를 가리키며 사내자식이라며 놀려댔고, 나는 절대 누구와 결혼하지 못할 거라고 했다. 나는 내가 예쁜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말이 상처가 되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태호를 볼 때마다 얄미움을 느꼈다. 평소 같았으면 말 한번 섞지 않았을 우리들은, ‘잠신 초등학교 마지막 졸업생’이라는 명목으로 단합 같은 것이 생겼다. 한 번은 선생님이 점심으로 컵라면을 먹어도 괜찮다고 하자마자 우리들은 바로 슈퍼로 뛰어나갔다. 전혀 급할 일이 아니었는데도 마치 누군가 쫓아오는 것 마냥 달렸다. 그전까지 나는 내가 달리기를 잘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두 명을 가뿐히 제치고 나니 자신감이 생겼다. 엄마와 달리기를 했을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태호는 자신이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나보다 느리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오늘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다고 했다. 선생님이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고는 우리에게 돌아가면서 하나씩 부어주었다. 급하게 컵라면 용기의 겉면을 잘못 뜯는 바람에 뜨거운 김이 자꾸만 밖으로 샜다. 그 바람에 면이 하나도 익지 않았지만, 그때 교실에서 먹은 라면의 맛은 환상적이었다. 두두는 컵라면 뚜껑을 그릇 삼아 종이로 접어서 후루룩 먹었고, 태호는 국물까지 다 마셨다. 우리 셋은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라면’ 하나로 이미 돈독한 사이가 된 것 같았다. 그 이후에 줄곧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툭하면 라면 얘기만 했다. 교실에서 먹는 라면의 맛은 잊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졸업식 때도 우리 셋만 올 것이 뻔했기 때문에 그때도 컵라면을 먹기로 약속했다. 슈퍼 가게 딸이었던 두두는 신이 난 듯 자신이 우리의 몫까지 챙겨 오겠다고 했다. 나는 엄마의 장떡을 가져오겠다고 했고, 태호는 별 말은 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초콜릿 우유 정도는 가져올 거라고 생각했다. 겨울 방학이 다가올 때가 되자 두두와 태호와 나는 조금씩 비밀을 공유 하기 시작했다. 두두는 자신이 창고에 우유를 옮기다가 전부 쏟은 장본인이라고 고백했고, 태호는 부모님한테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고, 그리고 나는, 고민을 하다가 엄마와 달리기를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사실 비밀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누군가에게 입 밖으로 말한 것은 처음이었다.

졸업식 이틀 전, 엄마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1년 전부터 자주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매일 한쪽으로 등을 돌린 채 누워 지냈고, 나는 그런 엄마가 금방 일어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아빠는 돈을 벌러 중동에 가 있느라 몇 개월 동안 집을 비웠고 오빠와 나만 엄마 곁을 지켰다. 그래도 엄마는 평소대로 꽃에 물 주기를 좋아했고, 조금 괜찮아진 날에는 나와 달리기를 하러 한강에 갔다. 엄마의 병이 심각하다고 느꼈을 때는, 시골에서 할머니가 올라와 우리 집에 지내고 나서부터 였다. 엄마는 툭하면 할머니에게 미안하다고만 했다. 방문 너머로 엄마와 할머니의 말소리가 들리면 나도 몰래 엿듣다가 괜히 눈물이 났다. 엄마가 곧 아빠처럼 먼 곳으로 떠날 것만 같았다. 그러면 나와 오빠만 남는 것인데, 그러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 싶다가도 그보다 졸업식에는 나 혼자 가야 되는 건가, 이런 걱정이 엄마의 병을 걱정하는 일보다 앞섰다는 것이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오빠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너는 무슨 그런 걱정을 하냐며 의학 기술이 발달했으니 엄마는 곧 일어날 거라고 했다. 오빠는 중학생밖에 되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어른 같았다. 나는 엄마가 왜 아픈지를 몰랐는데, 작은 할머니가 같은 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나는 암에 좋다는 채소 같은 것들을 집 앞 풀밭에서 뜯어 와 엄마에게 먹으라고 갖다 줬는데, 엄마는 찡긋 웃어버리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약 냄새 비슷한 쓴 향기가 엄마 입 주변에서 났다.


“이리 와”


엄마는 눈을 감은 채로 나를 끌어안고 이불속으로 넣었다. 대낮이라 잠이 오지는 않았는데, 엄마 품이 너무 따뜻해서 나도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며 소망 같은 것들을 떠올렸다. 한 참을 고민하다가 엄마와 달리기를 하고 싶었다. 조금 눈을 붙이고, 눈을 뜨면 엄마 보고 달리기를 하러 가자고 하려고 해야지,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엄마는 그날 이후로 눈을 뜨지 못했다. 아빠는 엄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바로 귀국을 했고, 할머니와 오빠는 덤덤하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아마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작년에 애지중지 키우던 병아리가 죽었을 때와는 다른, 거대한 슬픔이 몰려왔다. 그때도 꺼억 꺼억 대성통곡을 하며 울었지만 일주일 이면 괜찮아졌다. 이번에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금방 씻겨 내려갈 것 같지 않았다. 내가 가져온 채소를 조금 더 일찍 가져왔더라면, 엄마가 그걸 먹고 더 기운을 차렸을 텐데. 큰 돌덩이가 내 목구멍에 걸려있는 기분이 며칠 동안 들었다. 모든 게 나 때문인 것 같았다. 당연히 졸업식에는 가지 못했다. 내 소식이 학교에도 전해 졌는지, 이웃 아주머니들과 아저씨들이 집으로 자주 찾아왔다. 과일이나 쌀 같은 것들을 우리 남매에게 가져다주었다. 담임 선생님도 찾아와서 나를 한동안 끌어안고 우셨다. 모두가 우리를 불쌍하고 가엾게 여긴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한 편으로는 이런 관심이 불편하기만 했다. 차라리 이 모든 것이 빨리 끝나기 만을 기다렸다.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았으면 했다. 집으로 걸려오는 모든 전화는 할머니가 종종 받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예 받지 않았다. 할머니가 “어, 그래 누구니?” 라며 나를 흠칫 쳐다보기만 해도 일부러 자리를 피했다. 아마 그중에 두두나 태호의 연락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아직은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오빠는 묵묵히 자리를 지키면서 조문객들을 맞이했고, 내 밥을 챙겼다. 처음에는 쌀만 보아도 눈물이 났는데, 할머니가 밥을 먹지 않으면 엄마가 더 슬퍼할 거라고 하니 열심히 먹는 척을 했다.

태호가 나를 찾아온 것은 졸업식이 열린 다음 날이었다.



하루 5분 소설

2화에서 계속


글 여미

yeoulhan@nate.com

여미의 인스타그램 @yeomi_w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