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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Aug 14. 2024

나의 하루, 너의 하루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그즈음이었을 것 같다.


하루는 학교 다녀와서 집에 오니, 부모님도 집에 안 계시고, 혼자 남겨졌는데 갑자기 너무 공허하고 심심한 거다. 숙제도 없었고, 학원도 안 가는 날이였고, 텅 빈 집에 나 혼자 있었다. 아직 바깥은 햇빛이 쨍쨍하고, 밖에서 놀기 딱 좋은 날씨인데, 같이 놀 사람이 없다니, 절망적이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다른 친구들은 나 빼고 재밌게 놀고 있겠지?


나는 이 순간을 아주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처음으로 느낀 외로운 감정이어서 더 그랬을까. 나는 지금 너무 심심하고, 다른 사람들은 안 심심할 것이다(?)라는, 혼자만의 추리를 하며 그날따라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를 했다. 괜히 나 자신이 더 작아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대로 가만히 있기는 싫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내가 어떻게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반 친구들의 집 전화번호가 적힌 주소록을 뒤적거려서 같이 놀 사람(?)을 직접 찾으러 나서기 시작했다. 평소에 친해지고 싶은 친구 중에, 한 명한테 전화를 걸었다. 이 친구는 겉으로 보기에도 항상 밝고, 외향적이고, 친구들도 많고, 공부도 잘하고, 옷도 예쁘게 잘 입는 친구였다. 나는 그 친구를 평소에도 조금 부러워했던 것 같다. 그날의 외로움이, 심심함이,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 정도의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집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어머니께서 받으셨다. 사랑을 많이 받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을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어머니의 말투가 생각보다 딱딱하고, 조금 무서웠다. 내 이름을 말하고 친구에게 통화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금방 바꿔주셨다.


"하얀아, 오늘 뭐해?"

(친구의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그 친구의 얼굴이 하얗고 뽀앴던 것 같아서 하얀이라고 적었다)

하얀이는 조금 당황한 듯하더니, 숙제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용기를 내서 오늘 같이 놀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어? 그러면 나 숙제하고 같이 집에서 컴퓨터 게임할래?"


나는 그렇게 학교에서 말 몇 마디 해보지 않은, 하얀 이의 집으로 갔다(도대체 나는 얼마나 심심했던 거야?).

하지만 나는 그 친구의 집에 갔을 때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친구의 집으로 찾아가 문을 여니, 통화에서 느껴졌던 매서운 말투보다 어머니는 더 무서운 얼굴을 하고 계셨다. 순간 괜히 연락을 해서 놀자고 했나, 후회를 잠깐 했는데 하얀 이는 나를 보더니 밝게 웃으며 반겨주었다. 마치 지옥에서 본인을 꺼내주었다는 듯한 반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늘 예쁜 옷을 입고 있었던 하얀 이의 집은, 내가 예상한 대로 넓고 귀티가 났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나만 빼고 놀고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하얀이는 긴장한 채로 구석 책상에서 문제지를 홀로 풀고 있었다. 그 모습은 불안해 보였고, 초조해 보였고,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하얀이 어머니는 옆에서 하얀이를 혼내는 듯한 말을 계속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도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학교에서 그렇게 밝던 하얀이는, 집에서는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고, 어머니의 눈치를 보느라 우리는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나는 집에 돌아갔다.


밝고 화려할 것 같았던, 친구의 삶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충격이 커서 그런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감정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이 깨달음은 살아가는 동안 꽤나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제는 내 삶이 나만 빼고 모두가 행복할 거라는 생각, 모두가 재밌게 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인간의 삶은, 생각보다 비슷한 구석도 많고, 남에게 말 못 할 아픔이나 사정이라는 것도 각자 무겁게 안고 살아간다.


모두가 외롭겠지, 심심할 때도 있겠지, 공허하고, 허무할 때도 있겠지.

그러다가 좋은 날도 찾아오고, 기쁜 날도 찾아오고, 행복한 날도 찾아오는 거겠지.


오늘은 퇴근을 하고, 냉동해 둔 카레에 치킨너겟을 구워 밥 한 끼를 뚝딱 먹었다.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고, 펭귄(남편)이 퇴근할 때 즈음 콩나물국을 끓였다. 혼자 사부작사부작 청소도 하고, 요리도 끝내고, 낮잠과 산책도 끝내놓고 심심할 때 즈음, 나랑 평생 같이 놀아줄 사람 한 명이 집으로 돌아온다. 이제는 낡은 주소록을 뒤적거리지 않아도 된다!



글 여미

커버사진 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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