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바람이 많이 불고 추운 겨울이었어요. 학원 수업이 끝나고 학원 전용 차량에 탔어요. 저랑, 동갑내기 친구 한 명이 타고 있었죠. 그날따라 학생들이 수업을 많이 빠져서 차 안에는 저희 둘 뿐이었죠. 학원차 아저씨는 여느 때와 같이 조용히 운전을 하고 계셨어요. 저랑 그 친구는 학교 얘기, 친구 얘기를 하면서 한참을 떠들고 있었는데, 아마 배고프다는 얘기도 잠깐 했던 것 같아요. 신호가 걸리자, 차를 세우고 아저씨가 갑자기 저희를 향해 뒤를 돌아보더니, 한마디 하셨어요. "너희 떡볶이 먹을래? 아저씨가 사줄게" 저는 사실 너무 좋아서 가만히 있었는데, 옆에 있던 친구는 뭔가 죄송했는지, 바로 거절을 하더라고요. 평소에도 어른스럽고 생각이 깊은 친구였어요. "아니에요. 아저씨 저희 괜찮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저씨는 근처 김밥천국에 뛰어가셔서 떡볶이를 포장해 오셨어요. 젓가락도 챙겨주시고, 휴지도 챙겨주시고, 물도 챙겨주셨어요. 중간중간 필요한 게 없는지도 계속 물어봐주셨어요. 그렇게 친구랑 뒤에서 신나게 떡볶이를 먹었는데, 친구가 아저씨도 같이 먹자고 했어요. 아저씨는 괜찮다며, 우리가 먹는 모습만 봐도 좋다고 하셨어요. 저희가 떡볶이를 너무 맛있게 먹고 있으니, 기분이 좋으셨는지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사주려고 하셨는데, 친구가 그건 극구 사양을 했던 기억이 나요. 사실 전 아이스크림도 먹고싶었지만 꾹 참았어요. 친구가 그게 예의라고 했어요. 학원차 안에서 누가 떡볶이를 먹을 거라고 생각했겠어요? 그렇게 차 안에서 떡볶이를 먹었고, 아저씨는 정말 흐뭇하게 우리를 바라보셨어요. 그렇게 든든한 상태로 집에 무사히 돌아갔어요. 그 이후에도 아저씨는 두세 번 더 사주셨던 것 같아요. 가물 가물하지만, 아저씨는 계속 저희에게 떡볶이를 사주셨어요. 그때 제 나이는 열네 살이었어요.
떡볶이 아저씨
시간이 흐르고 저는 그 학원을 그만뒀고, 가끔씩 아저씨 생각이 났어요. 너무 감사했는데, 감사 표현을 제대로 못한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도 들었고, 너무 철 없이 얻어먹었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요. 정말 신기하게도 몇 년 뒤 저는 우연히 아저씨를 보았어요. 잠실역 롯데리아에서요. 아저씨는 어린 딸 두 명과, 함께 햄버거를 먹고 있었어요. 그때서야 깨달았어요. 아저씨가 저희에게 떡볶이를 사주고, 흐뭇하게 바라보던 그 미소의 의미를요. 아저씨는 똑같은 표정으로 어린 두 딸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여전히 아저씨는 햄버거를 먹지 않고 있었고, 두 딸은 맛있게 햄버거를 먹고 있었어요. 두 딸을 바라보면서 흐뭇해하고 계셨어요. 아저씨 옆에는 사모님도 계셨는데, 네 가족이 햄버거 집에 도란도란 앉아서 다 너무 행복해 보였어요. 아저씨는 정말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었던 거예요. 가족 안에서도 풍족한 삶을 누리는 분이셨어요. 성인이 되고 제가 취업을 하고, 돈을 벌어보니, 아저씨가 저에게 베푸셨던 시간과 돈은 정말 큰 선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늘 밤늦게 학원 차량을 운전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힘들게 번 돈으로 두 따님을 챙기기도 힘드셨을 텐데, 아저씨는 학생들에게 떡볶이를 사 주셨던 거예요. 우연히 아저씨 가족을 본 날, 저는 아저씨한테 다가가서 인사를 했던 기억이 나요. 아저씨는 저를 알아보셨을까요? 갸우뚱하시더니, 함박웃음을 지으셨던 것 같아요. 그렇게 잠시 아저씨와 스쳐 지나갔는데, 그 모습이 잊히지 않아요. 아저씨는 정말 행복해 보이셨거든요. 학생들을 태우고 운전을 하는 일을 지겨워하지 않으셨고, 매번 시끄럽게 떠들던 저희를 귀찮아하지도 않으셨어요. 어떻게 살아야 아저씨처럼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걸까요? 저는 아무리 따뜻한 음식을 먹어도 아저씨 같은 넓은 마음을 갖기는 힘든 것 같아요. 나중에 제가 성공을 하면 이 에피소드를 꼭 인터뷰할 때 이야기해서 아저씨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행복한 아저씨한테 행복한 떡볶이를 얻어먹었다고요. 그런데 저는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 되어버려서 어디에도 말을 할 기회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곳에 적어둬요. 더 늙어버리면 이 기억마저 사라져버릴 것 같아요.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요. 이제는 가장 소중한 기억이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