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남편)은 순댓국을 무지 좋아한다. "뭐 먹을래?" 하면 순댓국, "뭐 좋아해?" 하면 무조건 순댓국이다. 펭귄의 소울푸드는 당연 순댓국이다. 나 또한 순댓국을 좋아한다. 직장생활을 할 때 마음이 울적하거나 몸이 지치거나 힘들 때 순댓국 한 그릇에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3년 전, 원룸에서 혼자 자취를 하고 있었을 때, 집 앞에 순댓국집이 있었다. 일도 지치고 사람한테도 지친 어느 하루, 퇴근을 하고 터벅터벅 우울한 마음을 안고 늘 그곳으로 가서 순댓국을 시켰다. 매번 순댓국에 소주를 시킬까 말까, 고민만 하다가, 여자 혼자 처량해 보일까 봐 눈치 보다가 결국 못 시킨다(맥주는 괜찮은데 이상하게 소주는 혼자 못 마시겠다....) 이제는 남편과 함께 순댓국을 먹으러 다니니, 소주는 무조건 시킨다.
이러다 굶어죽는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고 있는 중에, 저번주 주말에는 생각보다 장사가 잘됐다. 함께 열심히 일을 하고 가게 마감을 하고 동네 순댓국집에서 소주 한 병과 순댓국 두 그릇을 먹었다. 이 뜨끈한 국물이 정말 만병통치약이다. 소주 한 잔에 묵혔던 가슴이 뻥 뚫린다. 쓸데없는 고민들은 모두 알코올과 함께 날아가버리고, 진한 국물이 나를 감싸준다. 여유로운 하루 끝에 먹는 순댓국 맛도 좋지만,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벌고 나서 먹는 순댓국 맛은 정말 죽여준다.
행복한 순댓국
순댓국을 그렇게 좋아하는 펭귄은, 딱 한번 순댓국을 세상 슬프게 먹은 적이 있었다. 우리는 3년 전, 회사에서 사내연애를 시작했는데, 그때 당시 펭귄은 취업준비를 하는 아르바이트생이었고, 나는 정규직 직원이었다. 펭귄은 6개월 정도 근무를 하고 취업을 위해 그만두었는데, 아르바이트 퇴사를 하고 취업을 위해서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었던 펭귄은 자주 울적해했다. 나에게 모든 고민을 털어놓지는 않았지만, 아마 경제적인 부분, 취업적인 걱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라식수술 부작용으로 컴퓨터를 오래 하는 것을 힘들어했지만, 빠른 취업을 위해서는 컴퓨터를 다루는 취업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신체적인 어려움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이 깊던 시절에도, 그는 나를 보기 위해 내 퇴근시간에 맞춰서 강남역으로 마중을 나오곤 했다.
펭귄과 내가 연애를 하면서 자주 가는 회사 앞 순댓국집이 있었다. 우리는 같이 근무할 때도 매번 점심시간에 그곳으로 순댓국을 먹으러 갔고, 퇴근하고 나서도 자주 먹으러 다녔다. 그날도 펭귄이 나를 보러 회사 근처로 왔고,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단골 순댓국집으로 갔다.
펭귄은 그날따라 많이 힘들어 보였다. 나와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 캐러멜색 예쁜 코트를 입고, 손톱도 단정하게 깎고 왔지만 표정은 울적해 보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이 맛있는 순댓국이 눈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세상 슬픈 표정으로 순댓국을 먹고 있었다. 우리는 그날 아무 말 없이 순댓국을 먹었고, 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 남자친구를 보니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렇게 좋아하는 순댓국을 먹고 있는데도, 슬퍼하다니..... 내가 기억하는 펭귄의 가장 슬픈 모습이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돈도 없고 취업도 되지 않을까 봐 걱정되어서 그랬다고 한다.
우리 둘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절이라면, 그때 펭귄이 슬픈 순댓국을 먹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슬픈 순댓국이 아닌, 어려움도 함께, 고난도 함께 겪으면서 이겨내는 단단한 부부가 되었다. 다툴 때도 많지만,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소중하게 아끼고 있다는 점은 변함없다. 매일매일 펭귄과 함께 행복한 순댓국을 먹고 싶다. 함께 늙어가면서, 순댓국도 오래오래, 우리는 죽고 나서도 하늘에서도 순댓국을 아마 먹지 않을까. (팩트 : 펭귄은 오늘도 순댓국을 먹었다...)
글 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