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테이블' 리뷰
많이 늦은 리뷰이다.
영화 '더 테이블'을 보고 한동안 여운에 젖었다. 그 때문인지 현실 세계의 물리적 흐름을 잊었나 보다. 슬슬 리뷰를 작성해볼까, 하여 날짜를 보니 영화를 본 지 벌써 보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일주일 안으로 작성되야하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탓인지 이다음 영화의 시사회가 튕겨져 나갔다(?) 오랫동안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는 터라 넓은 마음으로 양해를 바란다. 이 충격으로 달력을 하나 장만했다. 이제부터 성실한 리뷰러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김종관 감독의 '더 테이블'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대학교 2학년, 내 나이 스물 하나였다.
시나리오 첫 수업시간에 김종관 감독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영상 관련 전공자들은 아마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폴라로이드 작동법'이라는 6분가량의 단편 영화인데, 장르는 분명 로맨스인데 여주인공 얼굴만 나온다. 보통 로맨스라 함은 남녀가 서로를 쳐다보며 대화하는 것 정도라도 나와야 시각적인 기대감이 상승할 것인데, 이 영화의 남자 배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목까지만 나온다. 이게 무슨 로맨스인가? 하겠지만, 신인 배우였던 정유미의 긴장감 넘치는 짝사랑 연기가 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고야 말았다.
나는 요새 예능프로그램 '쇼미 더 머니'를 즐겨보곤 하는데, 해당 방송을 보며 느낀 것이 하나 있다. 이제는 실력은 기본인 세상이 되어버렸고 남들과 다른 나만의 '특별함'이 있어야 좋은 결과를 얻는다. 여기서 '신예'라는 말이 탄생하게 된다. 지금 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철학이 담긴 독특한 방식을 보았을 때, 이다음에는 어떤 공연을 보여줄지 궁금해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기술과 전문성을 뛰어넘는다.
그런 의미에서 '폴라로이드 작동법'이 그 시대에 가장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생각한다. 놀랍게도 10여 년이 지난 이 단편 영화는 아직 까지도 대학 강의 자료로 쓰이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나는 김종관 감독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 다음 작품에서 '사랑'에 관한 주제를 다룬다면, 그만의 방식으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아름답게 전달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이 영화를 솔직하게 한마디로 말하면 테이블 하나 놓고 총 네 쌍의 커플이 대화를 나누다가 끝나는 영화이다. 서로 다른 시간대에 만나 각자의 사연을 다룬다. 한 장소에서만 모든 사건이 이루어지는 영화, 보통 단편 영화에서만 많이 보아왔지만 한 시간이 넘는 장편에서 시도한 것은 개인적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다.
이렇게 들으면 조금 심심하다고 보는가? 감독이 김종관이다. 남자 얼굴 한 컷도 나오지 않는 단편 영화로, 그것도 남자 배우의 대사로만 채워졌던 6분짜리의 영화로 수많은 영화제에 초청되었으며,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감독의 작품이다. 그가 쓴 대사가 좋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영화를 보기 직전까지도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누구를 바라보며,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사진 같이 찍어주면 안 돼?
첫번째 에피소드이다. 스타가 된 유진과 그의 일반인 전 남자 친구가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된다. 나는 이 에피소드를 보는 내내 유진이 어떤 감정인 지에 대해서 궁금했다. 유진은 그와의 추억이 그리웠던 것일까? 그녀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 줄곧 어떤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던 유진은, 창석의 목적이 결국 사람들에게 연인임을 증명하려고 했던 사실을 알게 된다. 오랜만에 만나 느닷없이 사진을 찍자고 하고, 동료들을 근처까지 불러낸 창석은 유진과의 만남이 진실되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창석과 달리 유진은 가벼운 마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 에피소드를 이끌어가는 것은 '유진'의 시선임을 알았다. 어느 순간 내가 그녀의 마음에 동화되어 창석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상처를 받게 되고, 실망하게 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의 끝없는 무례함에도 불구하고 유진은 왜 화를 내지 않았을까? 그녀의 진짜 속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우리, 이제부터 같이 알아갈래요?
두 번째 에피소드이다. 개인적으로 이 커플의 대사가 가장 좋았다. 경진과 민호는 하룻밤 사랑을 나누고, 애매한 상태에서 서서히 연락이 끊어지게 된다. 원인은 긴 여행을 떠났던 민호에게 있었다. 경진은 민호에 대한 호감이 있었지만, 현재는 원망이 섞인 상태였고 민호는 그렇다 할 잘못도 없지만, 뭔가 그녀에게 미안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서로의 진심을 숨긴 채 대화가 진행되었고, 자신에게 마음이 없다고 생각한 경진은 화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지만, 민호는 그녀를 붙잡는다. 각 나라를 여행하는 동안 그녀를 생각하며 구입한 선물들이 가방 속에서 소시지처럼 나오자 그제야 그녀는 안심하게 된다. 이 사람, 그래도 내 생각은 하긴 했구나 하며.
우리.. 느림보 거북이
세 번째 에피소드. '결혼 사기극'을 벌이는 은희와 숙자의 이야기이다. 유일하게 남녀 커플이 아닌,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다. 돈 받고 가짜 부모를 해주기로 하지만, 숙자는 은희가 왠지 모르게 안쓰럽다. 그것은 결혼 식을 올리기 전에 하늘나라로 떠난 숙자의 딸과도 연관이 되어 있다. 은희는 숙자에게 줄곧 사무적인 말투와 냉정함을 유지한다. 어떠한 틈도 허용하지 않는 은희는, 숙자의 진솔된 이야기에 흔들림을 보인다.
이미 죽은 꽃이야, 그리고 우리도
오래전 이별한 혜경과 윤철. 혜경은 다른 사람과의 결혼을 앞두고 있고, 윤철은 혼자이다. 혜경은 윤철과 엔조이를 하자며 보채지만, 이미 그는 그녀의 장난질에 속아 상처를 받은 듯 보였다. 진심인 듯, 아닌 듯 그를 계속 떠보기만 하다가 확고하게 거절하는 윤철을 끝으로 이 둘은 헤어지게 된다. 그는 혜경과의 연애가 왜 힘들었으며, 무엇이 그의 마음을 닫게 만들었을까?
이 영화를 보면서 나의 오래된 기억과 추억이 떠오르곤 했다. 나도 이들처럼 진실을 말할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감추는 것이 버릇이 되어버렸다. 감독은 네 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지나간 사랑에 대한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다루고 있다. 테이블에 놓여 있던 꽃이 점점 시들고, 분리되어 마지막에는 땅바닥에 뒹굴게 되는 것을 보아 사랑의 변질을 더 강하게 전달하고자 하지 않았을까.
누군가와 다시 만난다는 것, 서로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하지만 실망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상처가 되기도 하며 나의 진짜 마음이 무엇이었는 지를 확인하게 된다. 이 영화는 마치 오래된 편지를 꺼내본 것 같았다. 사랑은 지나갔지만 그래도 우리 참 따뜻했잖아, 라며 차 한잔을 건네는 그런 영화.
무더운 여름이 끝이 났다.
설레는 가을의 시작은 김종관 감독의 '더 테이블'로 한 잔 하는 것이 어떨까.
글 여미
커버사진 임경복
이미지출처 네이버
yeoulhan@nate.com
여미의 인스타그램 ID : yeomi_writer
브런치 무비패스 작가 자격으로 시사회에 참석하여 본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