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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Oct 23. 2017

너를 통해 나를 느낀다는 것

영화 '나의 엔젤' 리뷰

올해도 어김없이 부산행에 몸을 실었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곳,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관하기 위해서다. 똑같은 옷을 며칠 동안 번갈아 입고 대충 끼니를 때우며 암흑 속에서 영화만 보면 질릴 법도 한데, 오히려 풍만해진 가슴을 안고 서울로 돌아온다.


가슴팍을 치는 영화를 보면 비로소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꽁꽁 얼어붙은 나를 꿈틀거리게 만들고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어떤 것을 통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는 것, 그것 또한 사랑이 아닐까.


부산에서 관람했던 영화가 다 재밌고 감동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라 암흑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타이밍을 좀 늦추고는 싶었다. 며칠 동안 영화를 안 볼 작정이었지만, 서울에 오자마자 이 영화를 반드시 관람해야만 했다. 예고편를 본 순간 신비로움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영화 '나의 엔젤'

나 같은 게으른 글쟁이는 영화를 보고도 리뷰를 쓰기까지 참 오래 걸린다. 영화를 아무리 두 눈으로 보았다고 해도 기본적인 자료조사와 이미지를 더듬어보는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도무지 쉽게 손이 가질 않는다. 그렇게 늘 마감 직전에 컴퓨터 앞에 앉아 해당 장면을 떠올리느라 애를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뷰 쓰는 일은 즐겁다. 어느새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 영화를 맞이하면서 느낀  이 기쁨을 타인에게 나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며.


유독 마음에 와 닿았던 영화는 조금이라도 빨리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바로 이 영화가 그러했다. 이미 머릿속에서 어떤 말을 쓸 지에 대한 구성이 이루어졌을 정도로 근래 본 영화 중에 가장 신선하고 독특했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많은 상황들과 관계를 설정하여 전달할 수 있지만, 이 영화가 말하는 사랑은 깊이가 다르다. 주변 인물들을 모두 배제하고, 생략했으며 오로지 두 사람의 이야기로 긴 호흡을 이끌어간다.


영화 '나의 엔젤'

우리가 꼭 보아야 할 사랑 영화


처음부터 투명인간으로 태어난 '나의 엔젤'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아이가 있다. 어머니만이 그를 느끼고 볼 수 있지만, 그는 그 누구에게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는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엔젤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면서 창밖 너머로 한 소녀를 보게 된다. 두 눈이 보이지 않는 '마들렌'이라는 소녀는 친구 한 명 없이 늘 혼자서 방황한다. 소녀는 보이지 않기에 청각과 후각으로 의존하며 살아간다. 투명 인간 엔젤은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게 되고,  마들렌은 그의 존재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소통하게 된다.


허공을 향해 말하고 있는 마들렌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제 3자의 시선이 나올 법도 한데, 그 누구도 이 판타지에 관여시키지 않았다. 그렇게 의외의 전개, 클리셰를 깨는 독창성의 연속은 관객을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게 된다.


너를 통해 나를 느낀다는 것


'관점'에 대한 또 다른 독창성을 얘기하자면, 대부분의 장면은 엔젤이 바라보는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 쉽게 말해서 스크린의 화면이 엔젤이 되어 걷고 듣고 말한다. 관객은 마치 엔젤이 되어 마들렌을 바라보기도 하고 손을 잡아보기도 하며 함께 살아있음을 느낀다. 여기서 사운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는 엔젤을 표현하기 위해 숨소리마저 집요하게 담아내어 마치 관객이 그 현장에 함께 있는 듯한 생동감을 선사한다.


둘은 서로의 친구가 되어주고, 말동무가 되어준다. 마들렌은 엔젤이 가지고 있는 결핍을 알지 못하지만, 그의 목소리와 촉감을 느끼며 사랑에 빠진다. 반면에 엔젤은 그녀의 눈이 되어주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그렇게 이 둘은 어른으로 성장하게 된다.


영화 '나의 엔젤'

어쩌면 많은 것을 볼 수 있어서 누군가를 사랑하기도 전에 자신을 납득시킬 수 있는 조건들을 붙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요즘 같은 시대의 사랑이라는 것, 천천히 상대를 느끼고 바라보는 시간들 조차 주지 않고 몇 초의 시각으로 판단하고 헤어짐을 고한다.


소녀는 두 눈이 멀었지만, 투명인간 엔젤의 존재를 유일하게 알아봐주고 그의 사랑을 느낀다. 이 영화는 두 사람이 연결되는 과정을 흐르는 강물처럼 보여준다. 어떤 식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사랑을 느끼는지, 그 찰나를 깊은 호흡으로 이끌어간다.


한마디를 더 붙이자면,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과정이 많은 지라 마들렌의 클로즈업이 굉장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영화의 몰입에 큰 영향을 주었던 그녀의 눈빛 연기에 깊은 찬사를 보낸다.


부산에서 보았던 모든 영화들이 기억이 나지 않았을 만큼, 아름다웠던 영화 '나의 엔젤' 이었다.


글 여미

이미지출처 네이버

yeoulha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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