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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Sep 11. 2017

내 사랑도, 사랑이야

영화 '시인의 사랑' 리뷰


영화 시인의 사랑

예술가는 아무리 먹어도 배고픈 존재가 아닐까. 아무 영감도 떠오르지 않는 날에는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복이라는 것을 안고 산다.


영화 '시인의 사랑'이 그러하다. 시인의 시는 다른 사람들 눈에 볼품없이 그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지지해주는 한 사람이 있다. 그의 아내는 기껏해야 월 수입이 30만 원이 전부인 그가 밉다가도 애정과 사랑으로 감싼다. 그를 향한 그녀의 포용력의 원천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기에 그리 단단하고 깊이가 있을까.

결혼하기 전, 빚에 시달렸던 그녀에게 괜찮다고 유일하게 응원해준 시인의 마음이 그녀를 녹였을까.


부부는 각자의 결함을 바라보며 위안받고 이해하고 포용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아내는 이제 아이가 갖고 싶다. 남편은 시를 향한 갈망만 존재할 뿐, 그 어떤 육체적인 욕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이 영화의 첫 번째 갈등이 시작된다.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가정도, 생계도, 여자도, 아이도 아닌 오로지 '시'이다. 그 어떤 영감도 떠오르지 않는 시인은 가끔 동호회 사람들과 시낭송을 할 때면 한없이 작아진다. 그 순간, 시인의 사랑을 연결시켜줄 도넛이 등장한다.


영화 '시인의 사랑'

영화 '데니쉬 걸'에서 남편의 양성적인 면을 발견하게 하고 자극했던 사람은 부인이었다. 그에게 장난 삼아 화장을 시키고 드레스를 입히던 그녀는, 그의 내면 안에서 잠재되어 있던 동성애를 건드리게 된다.

시인이 젊은 남성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 것도 어떻게 보면 아내로부터 시작된다. 시인은 이전까지는 여자를 사랑하던 이성애자였다. 하지만 아내가 건네준 도넛을 먹은 뒤로, 한동안 도넛 맛에 빠져서 도넛 가게에 단골손님이 돼버린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인의 사랑이 시작된다.


영화 '시인의 사랑'

아내의 행동에는 분명 잘못은 없는데, 그녀가 건넨 도넛으로 인해 남편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왜 모든 부인은 슬프게도 원인을 제공하게 되는 걸까? 여기서부터 딜레마가 생긴다. 시인은 젊고 잘생긴 아르바이트생을 본 이후로 아내에게도 느끼지 못했던 성적 욕망을 느끼게 된다.


영화 '시인의 사랑'

시인은 젊은 남성을 만난 이후로 무아지경에 빠지게 되고, 멈출 수 없는 자신의 사랑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시인의 사랑은 곧 시를 쓰는 데 있어서도 속도감을 갖고 훨훨 날아오르게 된다. 불행하게도 아내는 임신과 동시에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 속 시인은 말한다. 시인이라는 것은 슬픈 사람 대신 슬퍼해주고, 울고 싶은 사람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아내가 슬퍼할 때 그는 대신 슬퍼해줄 수 없었다. 개인으로서의 고뇌, 사랑, 욕망이 시인에게는 더 중요하고 소중했다.


시인의 선택은 과연 누구를 향하게 될까?


그가 누구를 택한 들, 사실 관객들에게 완벽한 해소가 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젊은 남성도 과연 시인을 사랑했을까? 아니면, 단순히 그의 사랑을 이용한 것이었을까? 결국 두 남성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고 세월이 흘러 시인은 시집을 출간하고 재기를 했다. 아이도 낳고, 아내도 함께 살아간다.


개인적으로 결말은 아쉬웠다. 시인과 젊은 남성의 재회가 꼭 우연적인 만남을 통하여 보답을 했어야 했을까. 그리고 그 물질적인 보답이 과연 이 영화가 가진 톤 앤 매너에 어울리는 선택이었을까. 세명의 캐릭터가 무언가 굉장히 사무적으로 끝나버리는, 시가 가지고 있는 낭만적인 감성이 결말에 고스란히 스며드길 바랬던 나의 마음이 컸던 것일까?


이 영화가 매력적이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시인 역을 맡았던 배우 양익준의 캐릭터 해석이었다. 정말 시인이라면 이런 고통을 갖고 있지 않을까, 이런 딜레마에 빠지지 않았을까 라며 그가 읊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의 호소력이 좋았다. 잔잔한 이 영화에, 양익준이란 매력적인 배우는 신의 한 수이지 않았을까.


책 장을 한 올 한 올 넘기면서 오래된 낙엽을 발견하는 재미, 이 영화를 통해 느끼길 바란다.

시인 한미자 선생님과 함께 감상할 수 있어서, 더 따뜻했던 영화 '시인의 사랑'이었다.


글 여미

이미지출처 네이버

yeoulhan@nate.com

여미의 인스타그램 ID : yeomi_writer


브런치 무비 패스 작가 자격으로 시사회에 참석하여 본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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