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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Jan 02. 2018

졸업

안녕, 2017

대학교를 두 군데나 다녔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졸업을 앞두고 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죽기 전에는 영화를 꼭 찍어 보고 죽겠다며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기어코 학교로 다시 돌아왔다. 자나 깨나 내 마음이 그곳에 향해있는데 어쩌겠는가. 서른이 되든 마흔이 되든, 어차피 계속해서 도전을 할 것 같았다. 


내 지인들은 편입을 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이냐며 놀라곤 한다. 처음에는 웬 물고기를 닮은 나이 든 사람이 갑자기 중간에 들어와서, 친구 하나 없이 아가미만 껌뻑 거리고 앉아 있을까 봐 걱정했는데 의외로 나보다 나이가 어린 동료들과도 굉장히 절친한 사이가 될 수 있었다. 그림을 그렸었다는 것에 첫 번째로 신기했을 것이고, 두 번째는 잘 모르겠다. (호감형 물고기였나 보다) 



비상하는 물고기

얼마 전 있었던 연말 시상식에서 추자현의 수상 소감이 인상적이다. 


행복이라는 것, 노력하고 찾아가면 옆에 있다. 


영화에 대해 먼지만큼도 몰랐던 나는, 넘어져도 일어나고 또다시 넘어져도 일어났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은 뒤 마지막 졸업 영화를 끝내고 스스로 대견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만들었던 작품과 지금의 작품을 보면 눈에 띄게 성장을 한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나에게 영화를 공부할 수 있었던 2년의 시간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잊을 수 없는 값진 시간이 되었다. 그 이유는 글을 쓰는 일을 사랑하며 작가라는 숙명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영화감독이라는 꿈이 더 확실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가도 내 머릿속에 수많은 아이디어와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가슴이 뛰는 경험을 한다. 이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그들의 삶에 영향을 행사하는 만큼 내게 행복한 일이 있을까? 그러나 영화를 만드는 과정만큼은 행복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쓴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자전거를 타고 눈물을 훔치며 한강으로 자주 갔었다. 얼굴이 벌게진 채로 분노의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 그나마 마음이 한 결 차분해 지곤 했는데, 행복할 리가 없었다. 수많은 변수들과 부딪히면서 지치고 험난한 과정들의 연속이었다.

내 판단과 선택에 대한 의문 때문에 자아가 분열되는 느낌도 받았다. 


그러나 몇 달 전 교내에서 졸업 영화 상영회를 했는데,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으며 상영의 기쁨을 느끼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이전의 고통과 괴로움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노력을 쏟아부은 만큼 결과에 곧이곧대로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강연 프로그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미경 강사가 한 말이 있다. 억지로라도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넘어서야 좋아하는 일을 즐길 수 있고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그녀 또한 가장 좋아하는 일은 강의를 하는 것이지만, 가장 하기 싫은 일은 강의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현재 어떤 것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 느끼는 불행, 그 불행의 종착지가 행복이라면 어떨까? 오늘 하루 정말 힘든 하루를 보냈어도, 조금 참을 만하지 않을까? 


공연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재엽 교수가 한 말이 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서 
미래는 결정된다.


우리에게 '내일'이라는 것과 '미래'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까? 사실상 우리는 오늘의 연속이라는 '현재'를 살고 있다. 오늘 하루의 일정을 미룬 채 미래만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오늘 하루를 잘 보내야 미래에도 행복해질 수 있다. 


새해가 밝았다. 몇 년 만에 해돋이를 보러 정동진에 갔는데, 나도 모르게 뜨거운 태양을 보며 벅차 올라서 또 울어버렸다. 나는 왜 이렇게 자주 우는지는 모르겠지만. 


연말을 핑계삼아 잠시 나그네의 삶을 살았는데, 이렇게 보내다가는 내 미래는 오늘과 다를 바가 없을 것 같다는 엄청난 자각을 하고 있다. 이번 봄에는 책이 나오길 기대하며, 꽤 괜찮은 만두를 빚어내기 위해 밀가루 반죽부터 열심히 만들어야겠다. 


글/그림 여미 

커버사진 임경복

yeoulhan@nate.com


브런치를 시작한 지도 1년이 되었네요. 

올해도, 편하게 쉬다가세요. 

- 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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