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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Aug 21. 2017

정말 해야 할까

청소

나는 청소가 싫다.


내가 어지른 것을 하나씩 꼼꼼하게 정리정돈을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내 방은 그래서 더럽고 지저분하다. 이사 온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벽지와 가구는 깨끗한데 그냥 뭐가 많은 느낌이 든다. 심지어 침대의 가장자리에도 읽다 만 책들이 쌓여있다. 좁디좁은 내 방안은 늘 골동품으로 가득 차 있다. 딱히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버려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나와 함께 공존하여 생활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그런 이유인 지는 몰라도 우리 부모님은 내 방에 잘 들어오시지 않는다. 문을 살짝 열어 놓아도 슬그머니 닫고 가시곤 한다. 아주 잠깐 열어놓은 것뿐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닫혀 있다. 정말 그런 이유인 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핑계를 대자면, 난 무언가를 잘 버리지 못한다. 쓰레기통 앞에서도 한 참을 고민하고 서 있다. 완성되지 않은 그림의 낙서라도 언젠가는 나에게 영감을 줄 거라는 생각에 펄럭이는 종이를 차마 반으로 접지 못해 서 있다. 그러는 사이에 정신이 지쳐버리고 팔에 힘이 없어진다. 결국엔 다시 원래 자리에 올려 두고는 잠시 쉴 생각에 침대에 눕는다.  


반쯤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바람이 새어 나와서 그런지 이불과 베개의 촉감이 차갑게 느껴지면서 시원한 기분이 든다. 몸도 마음도 편안한 상태에 이르자 합리화를 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충분히 있는데 굳이 청소를 할 필요가 있을까. 내 방의 여백 이라고는 침대 위에 누워 있을 수 있는 자리, 그 공간 딱 하나뿐이다. 천장을 제외한 바닥과 책상은 모두 옷이나 종이들로 덮어져 있다.


나는 가끔 악몽을 꾸곤 한다.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죽음이 무서워 도망가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방과 악몽 사이에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해 잠시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 무의식적으로 내 정신을 어지럽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며 청소를 할 수 밖에 없는 동기를 얻으려고 노력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하기 싫다, 청소.


한 가지 조건을 걸기 시작했다. 아예 청소를 하지 않아도 깨끗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정리정돈을 생활화하며 살겠다고.

 

그리고 그것은

이 방과 이별하는 순간, 그때부터 실천하기로.


조금 느려서 그래

글/그림 여미

커버사진 임경복

yeoulhan@nate.com


여미의 인스타그램

instagram.com/yeomi_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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