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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에
by 여미 Feb 05. 2018

말이 없는 나무막대기

교감에 대하여

인간은 인간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


사실 그래서 더 심난하다. 누가 봐도 화났는데 아니라고 하고, 토라진 마음에도 애써 괜찮은 척을 하는 것이 다 보인다. 그럴 때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아직도 어렵다. 가끔은 인간이 아닌 다른 것에 기대고 싶어지기도 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친구가 없었다.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탓에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지 않았다. 나를 싫어할 만한 근거를 홀로 상상하고 만들어내어 단정 짓고는 피해 다녔다. 그러다 보니 학교가 끝나면 혼자 터벅터벅 걸어 다니면서 지나가는 개미한테 말을 걸곤 했다. 그러나 수십 마리가 너무나 비슷하게 생겨서 구분이 가질 않았고, 짧은 다리로 빠른 속력을 내며 정신없이 움직이는 바람에 금방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개미는 좋은 벗이 될 수는 없었다.


내 곁에 늘 있어줄 단 한 명의 대화 상대가 필요했다. 현재의 고민들, 먹고 싶은 것, 생각한 것, 하고 싶은 것들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상대를 항상 갈망했다. 바쁘신 어머니가 성가셔하는 내색을 하거나 왜 이렇게 쓸데없는 고민이 많냐는 언니의 질타를 받는 것이 싫었다. 나의 부끄러운 고민을 아무런 표정 없이 들어줄 이를 찾고 싶었다.


말이 없는 나무막대기


어느 가을, 가족과 함께 집 근처로 등산을 했다. 느린 걸음 탓에 가족들과는 저만치 멀어지고 있었고, 혼자 산을 오르다가 돌부리에 끼여있는 나무 막대기를 발견했다. 내 배꼽만 한 길이의 아주 매끈하고 튼튼한 나무 막대기였다. 나는 그것을 지팡이 삼아 땅을 짚으며 천천히 산을 올랐다. 8살 소녀의 몸무게를 지탱해주면서도, 그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나는 말을 걸기 시작했다. 온전히 나만의 독백이었을 수도 있겠다. 학교에서 창피를 당한 일이나 부끄러운 고민까지 서슴없이 말하게 되었다. 표정을 읽을 수 없었기에 내 멋대로 상상을 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묵묵히 경청을 했다. 어느 순간 내 영혼의 나침 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깥에서 나뭇가지를 주워왔다며 어머니가 싫어하실 것이 뻔했기 때문에 집안으로 가져올 수는 없었다. 대신 집 앞 주변 화단에 보이지 않도록 꽁꽁 숨겨놓은 뒤 외출을 할 때마다 그와 동행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숨겨놓은 위치를 잊어버리는 바람에 길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도 했다.


교감이라는 위로


그는 나와 언어로 소통할 수는 없었지만, 충분히 교감을 이루고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내 유년시절 대부분은 산에서 주워온 나무 막대기와 함께였다. 내 이야기를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가끔은 나의 고민에, 나의 생각에 공감해주고 묵묵히 들어주는 사람이 참 좋다. 아무리 수치스럽고 떳떳하지 못한, 부끄러운 사연일지라도 아무 편견 없이 경청해주는 이들이 있다. 경청한다는 것은 상대를 하나의 인격으로 바라봐주고 존중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럼 사람을 찾고, 그런 사람을 좋아하고, 그런 사람에게 기대길 원한다. 교감이라는 것은 꼭 공통점이 있어야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랬구나, 그럴 수 있겠다’ 라며 서로의 있는 그대로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행위,

그것 또한 특별한 교감이 아닐까.  


나라는 사람, 너라는 사람

글/그림 여미

커버사진 임경복

yeoulha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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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별이 빛나는 밤에
나의 글과 그림이 너에게 닿을 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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