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을 그려요
나는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매일 비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비가 오면 온 세상이 칙칙한 암흑으로 가득 찹니다. 그 어둠에 비하면 나의 슬픔은 별 것도 아닌 것 같이 느껴지곤하여 위안이 됩니다. 유일하게 내가 밝아질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된 것만 같기도 합니다. 더불어 빗소리를 들으면 내 몸의 온도가 함께 시원해집니다. 모든 바퀴가 빗물에 굴러가는 소리도 좋아합니다. 잠에서 깨어나 비몽사몽인 상태에서는 어렴풋이 파도치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나는 내 방 안을 바닷가로 꾸밀 수 있습니다.
나는 회색을 좋아합니다. 정갈하고, 깨끗하고,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날이 밝을 때는 회색 옷을 입지 않습니다. 오로지 비가 오는 날에만 아무 무늬가 없는, 회색으로 가득 찬 티셔츠를 입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비가 되고, 비가 내가 되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면서 커다란 우물을 만들어내고 마는, 묘한 끈기가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요?
여기는 비가 오고 있어요. 그래서 기분이 좋아졌고, 기분이 좋으니 나는 연필을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림을 그렸어요. 무얼 그릴까 하다가, 바닷가에 거닐고 있는 달콤한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당신이 있는 곳은 어떠한가요?
그리고 당신의 기분은 어떠한가요?
글/그림 여미
커버사진 임경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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