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건 이후 내 첫 관계 상대는 성인이 될 무렵 교제했던 남자친구였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나는 대학 진학을, 그 애는 취업을 했다. 서로 경험해 본 적 없는 길로 나뉘어 가게 되었던 나와 그 애는 자주, 아니 거의 매일을 싸웠다. ‘왜 조별과제를 남학우와 함께 하냐’, ‘야근을 꼭 오늘 해야 하는 거냐’. 지금 생각해 보면 황당할 만큼 억지스러운 내용들로 의미 없는 말싸움을 몇 시간씩 해 댔던 것 같다.
그러다 한 번은 그 애가 생식기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에 다녀왔다. 헤르페스 2형에 감염 됐다고 했다. 그런 질병에 대해서는 그때 처음 알게 되었는데, 성관계를 통해 전파되는 성병이라고 했다.
그 애는 내게 말했다. 너 때문이라고. 니가 나에게 옮긴 거라고. 얼굴도 모르는 강간범에게 성병을 얻어와서 자길 아프게 한다고.
심장이 쿵 했다. 그렇게 매일 별 것도 아닌 이유로 화내고 싸웠던 나인데, 그날엔 화가 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을 네 번인가 다섯 번쯤 한 것 같다. 잘은 몰라도 왜인지 내 잘못인 것 같았다. 평소와는 다른, 나의 위축된 모습에 그 애는 더욱더 큰소리치며 화풀이를 했다. 그리고 그 후로 갈등이 생길 때면 마치 약점이라도 잡은 것처럼 성병이야기를 꺼내며 내 마음을 갉아댔다.
죄책감을 느끼며 그렇게 스무 살의 연애를 했다. 그 애가 퇴폐업소 매니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까지. 매주 회사 선배들과의 회식에서 갔던 노래방은 성매매 여성과 함께하는 2차였고, 동네친구들과 한숨 자고 오겠다던 사우나는 퇴폐 마사지업소였다. 그 사실들을 숨기려고 내 탓을 했던 것이다.
그랬다.
그럼에도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래서 나를 사랑하는 거였다.
상처를 가리려고 대충 손에 잡힌 붕대를 감았는데, 하필 축축하게 젖은 그것도 불쾌한 냄새가 나는 붕대였다. 다시 붕대를 풀면 남들에게 보일까봐 꽁꽁 숨겨두고 있었는데, 결국 그 안에서 짓무르고 곪아버려 전보다도 심한 상처가 되어버렸다. 제대로 된 치료가 필요했다. 소독도 해주고, 약도 발라주고, 깨끗한 반창고도 붙여주고.
그 애가 나를 떠날까봐 그토록 걱정했는데, 결국 그 애를 두고 온 건 나였다. 허무해. 하지만 덧나버린 내 상처를 더 이상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그 애가 내게 주던 것은 약도, 반창고도, 사랑도 아니었으니까.
어쩌다 그 애를 다시 보게 된다면 말해주고 싶다. 니 덕분이라고. 니 덕에 내 상처를 치료하기로 마음먹었다고. 그래서 좀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20대 초반을 보낼 수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