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피해자인 너에게도 잘못이 있어”
나의 피해 사실을 알게 된 담임교사가 내게 말했다.
공업용 이어봤자 고작 커터 칼인데 베어도 죽기야 했겠냐며 저항하지 못한 나를 탓했고, 손발이 묶인 채 계단으로 떨어지더라도 필사적으로 도망쳤어야 했다며 그러지 못한 나를 탓했다. 한참 어른이, 그것도 선생님이 그렇게 이야기하니 ‘아 그렇구나.’ 했다. 터널 안의 남은 등불은 거기에서 마저 꺼졌다. ‘내가 다른 버스를 탔더라면…’, ‘바로 집으로 가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사건의 시발점을 나에게서 찾다가 터널은 암흑이 되어버렸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생각해 봤다. 본인이 더 속상해서? 다음엔 잘 대처하라고? 어떤 것도 아니다. 당사자보다 마음 아픈 이는 없고, 다음을 준비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그냥 나의 상황이 그에게는 쉬웠던 것이다. 그 쉬운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 나를 답답해한 것이고, 본인은 그 상황을 거뜬히 모면했을 거라는 말이 하고 싶던 거겠지.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그저 막말일 뿐이었다.
스스로를 탓하게 만들었던 그 막말에 휘둘리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던 일이다. 나를 탓할 필요도, 후회를 할 필요도 전혀 없는. ‘위로’라는 포장 속에 건네는 모든 말을 억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받는 사람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면, 더욱이 그것이 사실 상처라면 단호히 거절해도 괜찮다.
이제 더 이상 사건의 원인을 찾지도 않는다. 그런 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내가 어떻게 했어야 하는가 보다는 앞으로의 내가 무얼 하면 좋을지 고민해 본다. 어떤 일이 나를 즐겁게 할지, 터널의 등불을 밝혀줄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