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했던 승강기 안의 공기, 나를 겁주던 칼과 테이프 소리, 붉은색 디자인의 담뱃갑, 깊은 야구모자 아래 그늘까지. 열다섯의 그날은 이제 많이 번져 흐릿하긴 해도 분명한 잔상으로 남아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던 하교 길이었다. 어쩌면 평소보다 조금 더 화창했던 것 같기도 하다. 환승역부터 나를 따라 버스에 올라탄 그는 나와 같은 정류장에 내려 몇 걸음 뒤에서 걸어왔다. 그러고는 승강기에 함께 올라탔고, 단둘만을 태운 승강기의 문은 닫히고 말았다. 내 목에 가져다 댄 칼. 그리고 내 손목과 발목을 묶은 테이프. 처음부터 누군가를 성폭행할 계획으로 챙긴 것이었다. 그 누군가가 내가 되었던 것이고. 내가 경험해 본 그 어떤 순간보다 심장이 가장 빨리 뛰었던 것 같다.
그 이후 나는 엘리베이터를 탈 수 없게 되었다. 집에 가는 그 길에 숨이 막혀 수백 번 주저앉았다. 어쩌면 죽음이 그리 어려운 게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꽤 긴 시간 힘들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정신과 치료를 받았을 만큼. 신고하면 돌아오겠다던 그자가 혹시 나를 다시 찾아오지는 않을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 대해 알게 되면 떠나버리는 건 아닐까. 긴 터널에서 한참을 헤맸다.
15년이 지난 지금, 이제 터널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터널의 출구 근처에서 끝없는 어둠 속을 바라볼 때가 있다. 아직 남아있는 트라우마가 나를 종종 괴롭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처 위로 다른 기억들이 겹겹이 쌓여 그리 쉬이 들춰지지는 않는다.
지금부터 내가 할 이야기는 평범하지 않았던 경험 후, 15년의 시간. 그 시간 동안 나에게 상처를 준 그리고 나를 치유해 준, 내가 만난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이 글을 적으며 남아 있는 아픔을 털어버릴 테니, 이 글을 읽으며 당신의 슬픔을 흘려보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