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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샘 Jun 04. 2022

걷기가 주는 치유

토닥토닥 걷기 학교를 읽으며

일주일 전 책을 만났던 순간은 여러모로 지쳐있던 순간이었다. 자신의 업무들을 경력이 적은 선생님들께 전가하고 부끄러움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비난의 말들이 오가는 시간. 더 이상 에너지가 나지 않았다. 일은 할 수 있었다. 어렵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면에서 더 이상 이 조직에 대한 기대가 생기지 않았고, 교직 사회에 대한 환멸까지 느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어있고 싶었다. 진심어린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기가 어려웠다.



어찌된 영문인지 이 책은 그런 순간에 나에게 다가왔다. 책의 표지를 보았을 때, 교육 서적이 아니라 독립 영화의 표지처럼 느껴졌다. 길게 뻗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두 사람이 꼭 잡은 두 손. 걷기 학교 안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알지 못했던 그 첫 순간에 이 책의 표지가 마음을 움직였다. 이 공간과 시간을 벗어나 저 걸음에 함께 하고 싶었다. 그리고 책을 펼쳤다.



“걷기는 육체와 정신의 가장 이상적인 결합니다. 이것을 단순한 세글자로 내 나름대로 표현한 것이 ‘동중정’이다. 몸은 움직이는데 생각은 정리되고 마음은 고도로 집중이 되면서 고요해지는 신기한 경험을 일컫는 말이다.”



책을 읽는 3일 동안 왜인지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났다. 책의 이야기들은 눈물이 나도록 아름다웠다. 소외된 아이들에 대한 선생님의 진심어린 마음. 경직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많은 갈등 속에서 지쳐있는 아이들에 대한 선생님의 시선. 그리고 그들과 함께 걷기 여행을 계획하고 그 여정을 이 현실에서 결국 해내는 선생님들의 이야기. ‘걷기, 서클 대화, 공동생활’이라는 3요소 속에서 아이들은 선생님의 환대에 마음이 열리고, 자연의 환대에 몸까지 열리는 순간을 경험한다. 그 밝은 에너지 속에서 열리는 서클, 공동 생활 속의 경험들은 아이들의 삶에 새로운 풍경을 선사하고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모든 순간 아이들의 이야기에 경청하고 그 걸음에 함께 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어른은, 리더는, 선생님은…. 정말 이런 존재가 아닐까. 지쳐있는 아이들의 내면을 보는 시선, 넘어져있는 아이들에게 손 내밀어 다시 걸을 수 있다고 외쳐주는, 그리고 그 걸음을 함께 걸어주는 존재.



내가 잃어가고 있던 걷기의 소중한 순간들을 책 속에서 발견했다. 걷기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시들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일상이 힘들 때면 걷기 시작했다. 답답하고 지칠 때면 책 한 권을 들고 긴 길을 걸어갔다. 길을 걸으면서 책을 읽기도 했고, 천천히 걸어 산에 올라가 조용한 곳을 찾아 책을 읽으면 다시 행복해져 긍정적인 나의 모습으로 돌아와 또 열심히 삶을 살아갔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새벽 출근 길 10분 더 일찍 나와 걷기 시작했다. 자연의 모든 존재가 깨어나는 그 순간을 느끼며 새 소리를, 벌레 소리를 조용히 느꼈다. 지하철로 가기 전 잠시 돌아가는 그 10분에 나의 몸과 마음은 열렸고, 그 마음은 매일 만나는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아이들에게 더 여유로운 웃음으로,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그리고 퇴근 후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강 조류 생태공원을 마음껏 걸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온 순간이었지만, 그 마음들은 이 자연이 다 품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연의 휴식 속에서 나는 삶을 살아갈 힘을 다시 얻을 수 있었다.



걷기 학교를 읽으며 사실 이 걷기학교에 내가 학생이 되어 걷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 책 속의 선생님과 함께 제주도, 강화도, 강원도의 아름다운 길들을 걸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시간을 돌릴 수 없으니 내가 그런 선생님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이미 제출했었지만 다시 양해를 구해 교과 보충 프로그램의 계획을 수정하였다. 수학에 어려움을 느끼는 아이들을 위해 연산 수업을 준비했었지만, 그 시작과 사이 사이 프로그램에 연산 대신 ‘걷기 학교’라는 네 글자를 써 두었다. 아이들과 가까운 곳 부터 걸으며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함께 해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네모난 교실이 어쩌면 많이 힘들었을 우리 아이들과 함께 가을을 느끼며 생의 순간을 함께 누려보자.


2021년 1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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