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이 아니었던 것

그동안 단단히 얼어 있었던 감정

by 여울샘

생일 케이크

어린 시절 나는 이모댁에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엄마는 일을 하러 나가셔야 하는 시간이 길었고, 나는 오빠와 함께 자연스레 맡겨졌었다. 큰 이모부와 큰 이모는 마음이 따뜻한 분이셨다. 때문에 우리 남매가 와도 항상 환영해 주셨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빠보다 감정적으로 민감했던 나는 내 것이 아니었던 것들에 혼자서 상처를 받고는 했다. 첫 번째는 생일 케이크였다. 친척 동생의 생일은 12/26로 크리스마스 다음 날이었는데, 친척 동생은 항상 크리스마스와 함께 자신의 생일이 퉁쳐지는 것에 서운해했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로 친척동생의 생일 케이크를 퉁치는 것이었다. 친척 동생은 그 사실에 매년 서운해했다. 하지만 나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도 생일 케이크도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어린 나이에도 케이크가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 참 가슴 아렸다. 케이크가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머무는 가정이 나의 가정이 아니고, 그 가정은 나의 가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자동차

내게 케이크와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자동차였다. 우리 가정은 어린 시절 자동차가 없었기 때문에, 할머니댁을 가거나 어디 멀리 가야 할 때면 이모부댁의 차를 타거나 엄마 친구의 차를 타고 움직였었다. 그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차를 태워주신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지만 나는 내가 타는 그 자동차가 그리 편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의 주 자세인 ‘발꿈치를 까치발처럼 들고 앉는 자세’를 만들어 마음이 편하지 않는 상황이 올 때마다 그 자세로 자동차에 앉고는 했었다. 이 자동차에서는 다들 편한 것 같은데 문득 나만 편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 이 자동차에서 눕고, 자고 하는 이모댁 가족들이 많이 부럽다는 생각을 했었다. 자동차의 공기는 같게 흐르고 있지만 내가 숨 쉬는 공기와 그 가족이 숨 쉬는 공기는 다른 것 같다는 공상을 하기도 했다.


아빠

생일케이크, 자동차 그리고 내가 가질 수 없었던 것은 ‘아빠’였다. 아빠는 내가 가장 사랑했던 존재였다. 아빠는 오빠에게는 엄했지만, 막내딸인 나에게는 한없이 자상했다. 엄마한테 혼나면 아빠 품으로 달려가 숨던 딸이었다. 아빠가 퇴근하고 오시면 너무 좋아서 달려가 아빠를 껴안고 울기도 했다. 아빠 어깨는 내가 가장 좋아하던 놀이기구였다.


그런 아빠를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당시 집안 분위기를 생각하면 집의 공기가 회색 빛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내 가슴 한쪽은 구멍이 크게 뚫려 성인이 된 지금도 채워지지 못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아빠와 함께 있는 딸들을 보면 가슴 한쪽이 시리고 아빠라는 존재가 그리워졌다. 아빠가 채워줄 수 있었던 이 빈 공간은 그 무엇도 채워줄 수 없었다.


그동안 단단히 얼어 있었던 그 감정은 ‘안정감’이다.


가정이 온전히 기능하여 채워주었어야 했던 ‘안정감’. 나는 지금이라도 스스로 그 안정감을 찾아보려고 한다. 다 큰 성인이 되었지만 생일 케이크를 가족들에게 강력히 요구하여 받아낸다던지, 오빠의 자동차를 타고 여기저기 교회도 가고 여행을 다닌다던지…. 어린 시절에는 내 힘으로 할 수 없었던 일들이지만, 지금은 일정 부분 채울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또 책이나 글쓰기, 신앙 등 나의 안정감을 채울 수 있는 다른 면면들을 세워가는 것도 내게 주어진 책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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