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두고 온 것

나의 약함

by 여울샘




나는 원래 말을 잘하는 편이었다. 어디서든 이야기를 하면 ‘말을 잘한다.’, ‘언어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어떤 분위기에서도 어울리는 말을 할 줄 알았다. 적어도 그러려고 애썼다. 스스로도 나의 장점을 ‘언어 능력’으로 뽑기도 했었고, 심리 검사에서도 언어 능력의 점수가 높게 나왔었다.

그런데 마음의 병이 찾아온 뒤부터 말을 잘 이어나가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최근 나가게 된 교회에서나 종종 참여하게 되는 서클, 수련회에서는 어떤 상황이든 주제에 맞게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만나게 된다. 나에게는 전혀 어렵지 않았던 이 상황이 점점 어렵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머릿속에는 분명 생각이 있는데, 그것이 문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단어가 입 근처까지 왔다가 사라지고, 말하려는 순간 타이밍을 놓친다. 문장이 느려지고, 말끝이 흐려진다. 예전 같으면 자연스럽게 덧붙였을 말이, 이제는 목 안쪽에서 멈춘다.

교회나 서클 같은 모임 자리는 그래서 점점 버거워졌다. 기도 제목을 나누는 시간, 소감을 말하는 순간, 모두의 시선이 잠깐 모일 때마다 마음이 먼저 움츠러든다. ‘생각이 아직 정리가 안되었는데..’,’ 주제에 맞는 생각이 떠오르지가 않아..’, ‘앞뒤가 안 맞지는 않을까’. 말하기 전보다 말하고 난 뒤가 더 힘들어지는 순간들이 반복된다. 말을 할 때도, 하고 나서도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괜찮은 척을 한다.
“요즘 좀 피곤해서요.”
“뭐라고 하셨죠?”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이유를 꺼내고, 더 묻지 않기를 바라는 얼굴을 한다. 약해진 언어를 숨기기 위해 웃음을 덧붙이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를 선택한다. 그렇게 나는, 나의 약함을 조용히 한쪽에 내려놓고 온다.

사실 내가 버려둔 것은 언어 능력만이 아니다. 도움받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지금은 조금 느리다고 인정하는 태도, 그리고 “괜찮지 않다”라고 말해도 괜찮은 나 자신.

늘 괜찮은 척하며 살아온 시간은 나를 보호해 주었지만, 동시에 나를 고립시켰다. 약함을 감추는 데 성공할수록, 진짜 나와 연결되는 통로는 점점 좁아졌다. 아무도 나를 몰라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조금씩 연습한다. 말이 막히면 “지금 생각이 잘 안 정리돼요”라고 말해보는 연습. 침묵이 길어져도 스스로를 재촉하지 않는 연습. 이전의 나와 비교하지 않는 연습.

아직은 쉽지 않다. 여전히 많은 자리에서 나는 나의 약함을 두고 나온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약함은 버려야 할 결함이 아니라, 돌봄이 필요한 나의 일부라는 것을. 언젠가는 다시, 혹은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돌아와야 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오늘도 완벽한 문장을 만들지는 못한다.
그러나 불완전한 말 사이에서도, 나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나를, 조금 늦게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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