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교실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며 쓰는 글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오기 전 오늘 감사 목록을 천천히 적어본다.
오늘 하루를 여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침 공부를 하고 나온 나를 칭찬합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하루를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아이들을 사랑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저에게는 사랑이 부족합니다. 주님께서 저를 보시듯, 아이들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주님 이 한 명 한 명의 아이들을 사랑하게 해 주시고 이들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허락하여주세요.
우리 주님은 이 아이들을 어떻게 보실까?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며, 내 마음속에 사랑이 부족할 때 가장 힘든 것을 느낀다. 아이들은 모두 다른 자아를 지니고 있고, 내가 교실에서 똑같이 이야기를 하여도 아이들의 반응은 모두 제각각이다. 그리고 내 마음에 유독 힘들게 느껴지는 아이가 있을 때, 그것은 그 아이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이의 문제가 아닌, 나의 마음의 문제임을 깨달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본능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유형의 사람은 마음으로 알아채고 가까이한다. 하지만 내 안에 굳어져 있는 편견과 기준들로 인해 내가 위험하다고 생각하거나 멀리 해야 한다고 느끼는 유형의 사람들은 처음부터 가까이하지 않는다. 그리고 긴 시간이 흘러 그 사람이 안전하다고 느낄 때 그들을 점차 가까이한다.
그러한 나의 성향이 아이들을 볼 때에도 종종 나옴을 느낀다. 나는 차분하고 조용한 상태를 좋아하고 깊은 생각과 성찰을 할 때 행복을 느낀다. 교실 안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호흡, 명상, 서클, 예술 활동들을 통해서 아이들이 마음의 평화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나의 이런 교육의 방향이 모든 아이들의 마음에 와닿고 효과적일 수는 없다. 유독 잘 흡수하고 많은 성장을 이루어내는 아이가 있는 반면, 이 방향을 종종 어려워하는 친구들도 만난다. 그 아이들을 만날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그리고 내가 힘들어하는 친구들은 보통 아침부터 장난을 치면서 교실로 들어오는 아이, 하루 종일 신나 있는 상태로 수업에는 잘 집중을 못하는 아이,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면 한 시간이고 악을 쓰며 우는 아이, 그리고 끊임없이 즐거움을 추구하며 수업 시간에도 만들기, 읽고 싶은 책 읽기 등 자신이 하고 싶은 행동에 집중한다. 그리고 수업 속에서 자신이 흥미가 있는 주제가 있을 때만 수업에 참여를 한다. 상당히 외향적이고, 수업 가운데에서도 선생님의 이야기에서 농담을 던지거나 아이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것을 찾아서 관련되지 않는 말을 하며 교실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하지만 2학년인 친구의 유머가 나에게 그리 재미있게 다가 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수업 진행을 방해한다고 느껴서 마음이 힘들어지고, 아이를 통제하려고 하는 욕구가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난다.
사실 힘들다. 많이 힘들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내 마음에게는 조금 더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작년 모임에서 신기한 것을 발견한 적이 있다. 내가 유난히도 힘들어했던 유민(가명)이라는 아이를 작년에 맡으셨던 선생님께서는 아주 훌륭한 친구라고 칭찬하시는 것이다. 나한테는 수업 시간에 계속 돌아다니고. 장난을 치며, 집중력이 낮은 아이로 인식이 되었던 친구다. 하지만 그 선생님께서는 유민이를 선생님을 잘 돕고, 활발하며, 마음 따뜻한 아이로 보고 계셨다. 나에게는 이 경험이 정말 중요한 순간이 되었다. 어쩌면 유민이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유민이를 보는 시선, 그 시선 안에 내가 갖고 있는 편견과 굳어진 인식들이 문제였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수업이 방해받지 않고 진행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수업 시간에는 차분하게 앉아 있어야지.'
'수업 시간에 장난을 치고 비속어를 하는 행동은 옳지 않아.'
'10분도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 마음속 구석구석 자리 잡고 있는 굳은 생각들. 이 생각들이 나의 마음을 가려 아이의 존재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나의 질문을 바꾸어보았다.
'아이들은 꼭 내 수업을 조용히 들어야 할까?'
'차분하게 앉아있는 아이들을 기특하게 여기는 내 마음은 어디서 시작된 걸까.'
'내가 장난이라고 부르는 그 행동들 아래 어쩌면 더 큰 유민이의 욕구들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내가 유민이의 숨겨진 욕구를 바라보지 못하고 행동만 나무랄 때 그 결과는 유민이와 우리 교실 속에서 어떻게 열매 맺을까.'
'유민이가 아닌 내 마음에 조금 더 변화하기 힘든 고정관념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 아닐까.'
'유민이의 삶의 전체의 과정 중 이 시기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곰곰이 생각을 하다 보니, 변화해야 할 것은 유민이가 아니라 나의 마음속 굳어진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유민이의 그 행동만 보고 나무라고 유민이를 혼낸다면 나는 교육 전문가라고 불릴 수 없을 것이다. 교사가 아닌 누구라도 그것은 할 수 있을 테니까. 이 아이의 마음을 바라봐주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수업을 아이들과 즐겁게 진행하고 싶은 나의 욕구도 어쩌면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아래 내용은 PDC(긍정 훈육법)에서 바라보는 지나친 관심 끌기에 대한 아이의 숨겨진 메시지와 그에 따른 훈육 방법이다.
< 아이의 행동 >
지나친 관심 끌기
(다른 사람의 지속적인 도움과 관심을 얻으려고 함)
<부모, 교사의 반응>
성가시다. 짜증 난다. 걱정된다. 죄책감을 느낀다.
<아이의 행동의 그릇된 신념>
‘내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때 또는 특별한 대접을 받을 때 나는 소속감을 느껴.’
‘당신이 나 때문에 분주할 때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아.’
< 숨겨진 메시지>
나를 봐주세요. 나도 함께하고 싶어요.
< 긍정 훈육법>
제대로 된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일을 하도록 이끌어 준다.
‘난 너를 사랑해. 나중에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낼 거야.’
특별한 대접을 하지 않는다.
바꾸거나 구해주려 하지 않고 아이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고 믿는다.
특별한 시간을 계획한다. 아이들이 일정표를 짜도록 도와준다.
문제 해결 과정에 참여시킨다. 가족회의 또는 학급회의를 활용한다.
비언어적 신호를 정한다. 작은 행동은 무시한다.
"나를 봐주세요. 나도 함께하고 싶어요."
이 문장이 나를 울컥하게 만든다. 그래 유민이의 행동은 나를 방해하고 싶어서가 아니야. 유민이를 봐달라고 하고 있는 거야. 함께 하고 싶다는 건데.... 나는 유민이의 그 마음을 왜 보지 못했을까.
교실에 들어오는 유민이를 바라본다. 그리고 웃으며 유민이에게 인사를 보낸다.
"유민아 안녕, 오늘도 선생님과 즐겁게 생활해볼까?"
오늘은 이 아이의 마음을 더 보듬어주어야지.
아이의 존재를 더 많이 인정해주고 작은 행동도 칭찬해주어야지.
쉬운 과정이 아니지만, 이 교실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더디 가더라도 포기하지는 말자.
2022. 06.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