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주는 분위기 자체 때문인지 이맘때가 되면 뭔가 설레는 마음이 생긴다. 한국도 길거리나 백화점, 쇼핑몰에 가면 여기저기 형형색색의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번쩍번쩍 빛이 난다. 종교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너도나도 크리스마스를 즐긴다.
작은 선물이라도 성의를 표현하는 게 호주에선 크리스마스의 정성이고 마음이다.
호주는 11월이 되면 벌써 크리스마스 장식 꾸미기에 바빠진다. 백화점과 쇼핑몰은 뭐 말할 것도 없고 길거리에 있는 작은 카페나 가게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알록달록한 장식으로 꾸며진다. 가게 입구만 들어서도 벌써 연말이구나 느껴질 정도로 분위기가 반전된다.
어렸을 때 외국 드라마에서나 봤던 모습이 재현되는 기분이다. 연말이 되면 집집마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는 듯 집 앞 정원은 크리스마스 조명과 장식으로 이쁘게 꾸며진 곳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곳을 지나가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11월이 되면 호주 사람들은 집에 장식할 크리스마스 소품을 사고 고마운 사람에게 전달할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한다.
좋은 게 있으면 나눌수록 좋다. 훈훈한 문화가 있으면 함께 하면 좋고 따뜻한 마음을 받았으면 그 마음을 나눌 줄도 알아야 한다.
나는 호주 멜버른에 처음 왔을 때 어학연수로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고 쇼핑몰에 있는 작은 액세서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11월부터 쇼핑몰은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화려하게 탈바꿈하고 연말이 되니 평일과 주말 구분 없이 사람이 많아졌다. 이 시즌이 되면 내가 일하는 곳도 장사가 잘되었다.
액세서리 가게이기에 선물을 사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도 많았다. 11월 초부터 내가 일하는 가게에는 많은 사람으로 평소보다 훨씬 바빠졌다. 호주에서는 일할 때 손님과 비교적 많은 대화를 나누는 편이다. 대화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서비스이다.
열심히 구경하는 손님이 있어서 말을 걸어보니 선물을 고르고 있다고 하였다. 생일 선물인가 해서 여쭤보니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민하고 있었다. 아직 크리스마스가 약 두 달 정도 남았는데 벌써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른다고? 나는 조금 의아했지만 내 의무를 다해야 했기에 성심성의껏 열심히 팔았다.
두 달 전부터 준비성이 대단하시네 하며 놀랄 틈도 없이 이맘때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오는 손님이 많아졌다. 호주는 크리스마스에 선물하는 문화가 있다. 이 문화를 몰랐던 나는 미안하게도 같이 사는 친구에게 선물만 받았었다. 두세 달 같이 산 옆 방 친구에게도 선물을 할 만큼 주변 사람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성의를 표현하는 게 호주에선 크리스마스의 정성이고 마음이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주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 선물을 미리 사놓고 포장까지 다 한 다음에 크리스마스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며 선물을 함께 건넨다. 이런 문화를 몰랐던 나는 호주에서 2년 동안 일방적으로 선물만 받았었다.
그렇다면 호주에 산 지 거의 9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의 나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다지 크게 신경 쓰진 않지만 크리스마스 선물 사는 걸 즐기고는 있다. 이전엔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되거나 친구들과 *마니토를 한다든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 인지 별거 아니어도 주변에 고마운 사람에게 가끔 크리스마스 선물을 한다. 립밤이나 핸드크림과 같이 부담 없는 선물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마니토: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편지나 선물을 제공하는 사람. 주로 제비뽑기를 통해 선정한다. 비밀 친구라는 뜻을 가진 이태리어에서 나온 말이다. (출처: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생각해보면 내가 염치없이 받았던 크리스마스 선물이 너무 따뜻했다. 새해맞이를 며칠 남기고 아쉬우며 뒤숭숭한 마음이 훈훈하게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미처 선물을 사지 못해 너무 미안한 마음에 나는 준비하지 못했다고 변명해도 당연히 이해해주었다. 원래 호주에선 이게 문화라며 선물을 주고 싶었다는 그 마음이 낯선 타지에 있는 나에게 무척이나 따뜻하게 와닿았다.
이런 기분 좋은 기억이 있기 때문에 나도 누군가에게 예상치 못한 따스한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다. 의무적으로 하는 건 아니지만 11월부터 쇼핑몰이나 백화점을 다닐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면 선물을 사고 크리스마스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전달한다.
좋은 게 있으면 나눌수록 좋다. 훈훈한 문화가 있으면 함께 하면 좋고 따뜻한 마음을 받았으면 그 마음을 나눌 줄도 알아야 한다.
한국에 있을 때는 연말이 다가오면 화려한 장식으로 기분이 좋아졌다가도 한 해가 끝난다는 게 그저 아쉬우며 헛헛한 마음이 컸는데 호주에서 맞이하는 연말은 마음이 따스해진다.
선물을 받지 않아도 괜찮으니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마음이 행복하다. 그런데 말은 이렇게 하고 선물을 안 살 수도 있다. 나가서 선물 고르는 것도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다. 그래도 아직 크리스마스가 많이 남았으니 그때까지 이 따뜻한 마음을 계속 유지하며 선물을 골라봐야겠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모두 소용없는 일이니 말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여울(Yeouul)
<빈티지의 위안>, <멜버른의 위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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