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울 Yeouul Nov 30. 2022

다음이 언젠데?! 하다 보니 자주 가게 된 호주 캠핑

10월 중순 내 생일을 기념으로 남편과 처음으로 단둘이 캠핑을 떠났다. 넓은 땅에 대자연으로 이뤄진 호주는 캠핑의 성지이다. 그만큼 캠핑장도 많다. 캠핑장에 가면 마치 나만 캠핑용품이 없고 캠핑카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캠핑을 즐긴다.







호주에서 친구들과 캠핑을 몇 번 가봤지만, 남편과 단둘이서 캠핑을 가본 적은 없었다. 여럿이 함께 갈 때는 내 잠자리만 가볍게 챙겨 갔다. 나는 캠핑용품도 없을뿐더러 여러 명이서 함께 가면 다들 이것저것 가져 와서 충분히 캠핑을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다니다가 남편과 단둘이서 가려니 도저히 우린 캠핑하러 다닐 준비가 안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친구에게 얻은 작은 텐트와 캠핑용 의자, 잠자리 용품만 있었다. 해나 비, 바람을 피해서 앉을 곳이 전혀 없었다. 이런 상태로 캠핑하러 가면 도저히 캠핑다운 캠핑을 즐길 수 없을 거로 생각했다. 해와 비를 막아주고 호주의 거센 바람을 피할 수 있는 튼튼한 그늘막이 필요했다. 찾다 보니 차에 연장해서 설치하는 텐트를 발견했다.




지금 나의 환경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내 처지에 맞게 최대한 누려 보려고 한다.







우리 차는 왜건이라 뒤가 조금 길기 때문에 차박이 가능했다. 텐트가 마침 할인하고 있어서 AUD $120(약 107,270원, 2022.11.28 기준)에 나름 저렴하게 구매했다. 그리고 적어도 밥 먹을 곳은 필요하니 테이블도 함께 구매했다. 이렇게 텐트와 테이블을 구매하고 우린 캠핑을 떠났다.



구매하고 처음 설치하는 텐트로 첫 난관에 부딪혔지만, 뭐든 처음은 항상 어려운 법이니깐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조금 짜증 났던 건 설명서에 그림 없이 영어로 된 설명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구글링과 유튜브가 있으니 우리의 짜증은 금방 해소되었다.







텐트를 치고 나니 모양새가 제법 괜찮아 보였다. 차 안에 에어 매트리스도 설치하고 전기장판도 깔았더니 완벽해졌다. 이보다 무슨 장비가 더 필요한가. 차도 작은데 이만하면 우리는 굉장히 만족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남편과 처음 떠난 2박 3일 캠핑은 모든 게 너무나도 잘 흘러갔다. 체크아웃하기로 한 셋째 날이 오기 전까지는. 이튿날 밤부터 천둥 번개가 동반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 비는 우리가 체크아웃 하는 날 아침까지 미친 듯이 쏟아졌다. 비를 맞으며 이 상태로 철수해야 한다는 게 너무나도 끔찍했다. 좋았던 건 비가 와서 차에 해가 안 들어오니 잠은 더 곤히 잘 수 있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남편은 다음 날 일을 가야 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일단 나는 남편에게 다음 날 쉴 수 없는지 물어보고 캠핑장 리셉션에 같은 자리에서 하루 더 연장할 수 있는지를 알아봤다. 다행히도 모든 게 가능했다.



이렇게 우리는 비가 온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3박 4일 캠핑을 하게 되었다. 이때 당시 캠핑의 추억이 좋아서인지 우리는 그로부터 2주 뒤 또다시 캠핑을 갔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고 즐기려고 노력한다면 삶의 만족도가 조금 더 상승하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캠핑용품도 다 있고 호주는 캠핑장이 여기저기 많기 때문에 우리에겐 선택의 조건도 넓었다. 다음으로 미뤄봤자 언제가 될지 모른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생긴 나만의 마음가짐이 있다.



다음은 없다. 다음으로 미룰 바엔 그냥 안 한다고 생각한다. 가능성을 열어두어 희미한 희망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 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하고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어졌다.



미루다 보면 1년 뒤 5년 뒤 10년 뒤에 물론 할 수는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 신경 써야 할 게 더 많은 환경으로 바뀐다. 가족, 직장, 건강 등 고려해야 할 게 점점 더 늘어난다.







가능성을 열어두어 희미한 희망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 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하고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어졌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과감하게 포기할 건 빨리 포기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게 되었다. 모두 각자 삶에 다른 조건과 상황이 적용된다. 어떻게 보면 나는 이렇게 자유롭게 캠핑하러 다닐 수 있는 처지가 되기 때문에 누리고 있다. 대신에 다른 사람이 당연히 받는 혜택을 나는 누리지 못 할 수도 있다. 저마다 주어진 환경이 다르고 생각하는 삶의 이상향이 다르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고 즐기려고 노력한다면 삶의 만족도가 조금 더 상승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번 주에 남편과 또 캠핑을 가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 25분 거리에는 캠핑장이 있다. 캠핑장 근처에 별건 없지만, 캠핑장 안에 수영장도 있고 여러 가지 시설이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캠핑 바이브를 즐길 수 있다.



나는 현재 호주 시민권도 없고 영주권도 없다. 집도 렌트이기에 이 동네를 언제 떠날지도 모르고 심지어 호주를 떠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 나의 환경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내 처지에 맞게 최대한 누려 보려고 한다.




일러스트레이터 여울(Yeouul)

<빈티지의 위안>, <멜버른의 위안> 저자


Instagram: @yeouulart@yeouul_illustrator

Youtube: 여울아트(Yeouul Art)여울여울

Website: https://yeouul.creatorlink.net



매거진의 이전글 그저 허기진 배를 채워주던 기내식이 그리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