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한국으로 베트남 항공 기내식 리뷰
올해 9월 한국에 다녀왔다. 나는 현재 호주에서 살고 있다. 한국은 언제 가도 너무 좋은 곳이다. 이제 점점 코로나에서 벗어나 자가격리도 사라지고 해외를 오갈 수 있는 많은 제약이 없어졌다. 한국을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흥분되었다.
이번에 한국에 가게 된 건 큰 가족 행사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비자 만료를 앞두고 갈까 말까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다가 결국 한국행 비행기를 끊었다. 마침 저렴하게 나온 베트남 항공이 있었고 망설임 없이 바로 예약했다. 호주에서 한국으로 가는 왕복 비행기 비용은 대략 70만 원 정도였다. 저렴한 대신 베트남에서 경유하는 시간이 조금 길었다. 그래도 그게 뭐 대수인가. 한국행 비행기를 끊고 난 이후로 매일 기대가 되었다. 어쩌다 보니 친구도 같은 비행기를 함께 타게 되어 남편과 친구 이렇게 셋이 우리는 다 함께 한국으로 가게 되었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여행은 우리의 경험을 폭넓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보는 시야의 한계를 넓혀주기도 한다.
호주에서 지낸 지도 벌써 9년이 다 되어간다. 한국은 열 번도 넘게 왔다 갔다 하며 여러 항공사를 이용하였는데 베트남 항공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행기를 탈 때 제일 좋은 건 기내식이다. 비행기에서 잠을 잘 자는 편도 아니고 영화 보는 걸 즐기는 것도 아니고 기내에서 내가 가장 즐기는 건 와인과 함께 곁들여 먹는 기내식이다. 이상하게도 기내식과 함께 먹는 와인이 참 맛있다.
비행 일정은 이러하였다. 호주에서 베트남으로 간 다음 대략 7시간의 경유를 거치고 한국으로 갔다. 호주에서 베트남으로 가는 기내에서 먹은 첫 식사는 치킨이었다.(위의 사진 참고) 어떤 비행기를 타던 기내식은 거의 소고기, 돼지고기, 치킨, 생선 이 중에 두 가지 음식이 나오고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식으로 나온다. 나는 거의 치킨을 선호한다. 치킨은 웬만하면 거의 다 맛있다.
이번 베트남 항공에서 먹은 치킨 기내식도 나름 괜찮았다. 메인 메뉴와 함께 나오는 사이드 음식도 좋았다. 이걸 뭐라고 부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카로니 같은 것에 바질을 섞어 만든 음식인데 바질 향이 가득해서 와인과 아주 잘 어울렸다.
그리고 나는 메인 메뉴에 같이 나오는 밥 옆에 있는 야채를 좋아한다. 어떤 메뉴를 시키든 거의 모든 메뉴에는 삶거나 볶은 야채가 곁들여 나온다. 이 야채가 왜 이렇게 맛있는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별로라고 남기던데 나는 이 흐물흐물한 야채를 좋아한다.
기내식에서 별로 안 좋아하는 건 사이드로 나오는 디저트이다. 와인과 먹어도 중화되지 않을 만큼 달콤함이 나에게는 한도 초과이다. 단 음식을 별로 안 좋아해서인지 디저트는 웬만하면 손도 안 댄다.
호주에서 베트남까지 비행시간은 8시간 50분이었다. 비행기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흘러 다음 기내식이 나올 때가 되었다. 배가 고파질 시간이긴 했다. 두 번째 기내식은 파이였다.(위의 사진 참고) 어설프게 뒤척이며 자고 일어났더니 뭔가 속이 느글거려서 고기보다는 야채가 들어간 파이가 낫지 않을까 싶어 야채 파이를 주문했다. 생각보다 맛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먹은 기억이 난다.
오랜 시간 비행하고 우리는 호찌민 공항에 도착했다. 호찌민 공항에서는 무려 7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경유하는 곳으로 가니 승무원이 우리의 목적지를 물어봤다. 한국으로 간다고 하자 옆 카운터를 가리키며 저쪽에서 기다리라고 하였다.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계속 기다렸다. 알고 보니 경유 시간이 길어서 베트남 항공에서는 간식을 제공하고 있었는데 간식이 다 동이 나서 가져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할 것도 없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30분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자 우리는 간식을 포기하고 경유하는 곳으로 갔다. 베트남 공항을 구경하며 두리번두리번하는데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났다. 분명 기내식도 잘 먹었는데 이상하게 허기가 졌고 쌀국수가 무지하게 당겼다. 어쨌든 베트남까지 왔는데 쌀국수는 먹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쌀국수를 먹기 위해서 공항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는데 쌀국수 가게가 몇 개 없었다. 그러다 위층에 푸드코트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올라가 보니 음식점과 바가 있었고 우리는 쌀국수 전문점으로 보이는 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각자의 취향대로 토핑이 올라간 쌀국수를 주문하였다. 쌀국수는 냄새부터가 달랐다.
손님이 비교적 없는 시간이라 음식이 빨리 나왔고 바로 쌀국수 국물을 먼저 맛보았다. 내가 여태껏 먹어 본 쌀국수 중에 가장 맛있었다. 공항도 이 정도인데 베트남 현지에서 먹는 쌀국수는 얼마나 더 맛있을까 상상하게 되었다. 솔직히 호주 멜버른에서 먹는 쌀국수도 진짜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다시 멜버른에서 쌀국수를 먹으면 맛없게 느껴질 것 같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호주 유학 에세이 <멜버른의 위안>에 쌀국수를 극찬하며 썼는데 개정판을 낸다면 이 부분은 분명히 수정해야 할 것 같았다. 베트남 사람이 많이 사는 멜버른에도 나름 맛있는 쌀국수 가게가 많다. 그렇지만 정말 현지에서 먹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때 이후로 현재까지 멜버른에서 쌀국수를 안 먹고 있다. 뭔가 실망하게 될까 봐 두렵다. 호찌민 공항에서 먹은 쌀국수 맛이 잊힐 때쯤 다시 먹어볼 생각이다.
장거리 비행을 하고 멜버른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생각나는 음식은 쌀국수이다. 멜버른에 도착해서 시원한 쌀국수를 한 그릇 먹고 오지 카푸치노를 한 잔 마시면 비행 중 소진되었던 기력이 충전된다.
- <멜버른의 위안> 본문에서
호찌민 공항에서 쌀국수도 먹고 베트남 맥주도 마시고 우리는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시간이 되었다.
나는 비행기에 타자마자 바로 맥주를 주문했다. 기내에서 맥주 한 잔 정도는 꼭 마시는 편이다. 항공사마다 제공하는 맥주가 다르며 그 나라의 맥주를 맛볼 수 있는 기회이다. 여행하는 기분도 들고 기내의 답답한 공기를 맥주의 탄산이 상쾌하게 환기해 주니 이것 또한 기내에서 누리는 혜택이다.
과거의 경험이 있기에 우리는 그 기억을 그리워할 수도 있는 거다.
한국행 비행기에서 먹은 기내식은 사진을 보니 소고기를 주문한 듯했다.(위의 사진 참고) 양념이 잔뜩 있어서 밥과 비벼 먹으니 맛있었다. 신선한 야채도 함께 나와서 좋았다. 이렇게 마지막 기내식을 먹고 우리는 한국에 잘 도착했다. 한국에서 18일이라는 짧은 여정을 마무리하고 다시 호주로 돌아왔다.
호주로 올 때도 일정은 똑같았다. 호찌민을 경유하여 호주 멜버른으로 왔다. 일단 한국에서 호찌민으로 가는 비행기에서는 한국에서 출발해서인지 기내식으로 김치볶음밥이 나왔다. 김치와 밥을 볶는 건데 어지간하지 않고서야 김치볶음밥이 맛없을 수는 없다. 기본은 하겠지 하고 먹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더 자극적인 맛을 선호하는 사람을 위해 볶음 고추장도 함께 나왔다. 그런데 간이 잘 배 있어 굳이 고추장을 넣지 않아도 괜찮았다.
5시간 남짓한 비행으로 호찌민 공항에 다시 도착하였다. 호주에서 한국으로 갈 때 한번 들러서 그런지 두 번째 방문할 때는 뭔가 익숙했다. 이번에는 공항에서 나눠주는 간식을 받아 갔다. 경유하는 곳으로 가니 우리 비행기 티켓을 확인하고는 바로 간식을 건네줬다. 호찌민 공항에서 경유 시간은 거의 7시간이었다. 아무리 경유 시간이 길다고 해도 이렇게 간식을 주는 곳은 처음이었다.
호찌민 공항에 다시 오니 쌀국수가 생각났다. 여기서만 맛볼 수 있기에 이 기회를 놓칠세라 나는 바로 쌀국수 가게로 향했다. 너무 만족스럽게 쌀국수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운 후 공항에서 미적미적 시간을 보내다 보니 쌀국수는 이미 다 소화되고 출출해졌다. 그래서 공항에서 받은 간식을 꺼내 먹었다.(아래 사진 참고) 빵이 생각보다 맛있었다. 요플레는 거의 물 같았다. 그래도 배가 고파서인지 후루룩후루룩 잘 먹었다. 지루했지만 시간은 어떻게든 흘러서 어느덧 호주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호주로 돌아가는 여정은 길어서 기내식이 두 번 나온다. 첫 번째로 나온 기내식은 사진을 봐도 자세히 기억이 안 난다.(아래 왼쪽 사진 참고) 고기가 조금 질겼던 것 같은데 맛은 나쁘지 않았다. 호주로 갈 때는 다행히 야간 비행이어서 기내에서 좀 잘 수 있었다.
잔 것 같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어두웠던 기내가 불로 환히 밝혀지고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나서 눈이 떠졌다.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비행경로를 확인해 보니 비행기는 호주 상공을 날고 있었고 아침이 되어 기내식을 먹을 시간이었다. 아침이라 그런지 서양식 아침 식사 메뉴가 나왔다.(아래 오른쪽 사진 참고) 스크램블 에그와 소시지이다. 다른 메뉴도 있었는데 나는 기내에서 자고 일어나면 서양식 아침 식사가 당긴다. 계란과 볶은 야채를 먹어야 더부룩하며 허기진 배가 진정이 된다.
베트남 항공 기내식을 총 평가하자면 나는 꽤 맛있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기내식이 대단하게 맛있었던 곳은 없었다. 그냥저냥 허기진 배를 적당히 잘 채워주는 게 기내식인 것 같다. 근데 그렇다고 또 엄청나게 맛없어서 못 먹은 기내식도 없었다. 10년 전만 해도 나는 향신료나 외국 음식을 잘 먹지 못해서 기내식이 낯설어 굶으며 비행을 한 적도 있었다. 이제는 여기저기 여행도 많이 다니고 외국에 살다 보니 그냥 주는 대로 잘 먹는다.
이번 기내식에서 제일 맛있었던 음식을 꼽자면 김치볶음밥이다. 역시 한식이 최고이다. 그리고 가장 좋았던 건 공항에서 먹은 쌀국수이다. 그때 맛본 쌀국수 때문에 호주 멜버른에서 다시 쌀국수를 시도 못 하고 있다. 언젠가 그 맛이 잊힐 때쯤 멜버른에 있는 최고 평점의 쌀국수 가게를 찾아가 먹어볼 것이다.
기내식은 비행 중에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간단하게 제공되는 식사이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식사에 불과하겠지만 유독 기내식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비행기에서만 먹을 수 있는 기내식은 뭔가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코로나가 시작되며 해외여행이 막혔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기내식을 주제로 여러 상품과 서비스가 만들어졌다. 기내식 도시락이 나오기도 하고 기내식을 제공하는 식당이 생기기도 했다. 사실 기내식에 대단한 음식이 제공되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그 경험을 그리워했다. 비행기에서만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경험을 코로나로 인해 못하게 되니 이렇게라도 그 경험을 사서 색다르게 체험하고 싶은 거다. 그래서 이번에 나도 열심히 기내식을 사진으로 기록한 것 같다. 코로나 때문에 자유롭지 못했던 비행을 이렇게 다시 편하게 하게 되니 기내식마저 너무 특별하게 느껴졌다.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먹어 본 경험이 없다면 굳이 그립지도 않을 것이고 생각도 안 날 거다. 과거의 경험이 있기에 우리는 그 기억을 그리워할 수도 있는 거다. 그래서 인생에서 경험은 언제나 중요하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보는 시야의 한계를 세상의 한계로 받아들인다.
- 쇼펜하우어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여행은 우리의 경험을 폭넓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보는 시야의 한계를 넓혀주기도 한다.
일러스트레이터 여울(Yeouul)
<빈티지의 위안>, <멜버른의 위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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