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1년부터 7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로 뽑혔던 멜버른에 살고 있다. 코로나의 여파로 많은 변동이 있었던 작년(2022년)에는 멜버른이 10위로 뽑혔다. 여전히 높은 순위이다.
멜버른에 산 지 벌써 8년이 되었다. (워킹홀리데이로 골드코스트에서 1년) 솔직히 말하면 살기 좋긴 하다. 그런데 이게 참 뭔가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다. 멜버른은 공원이 많고 도시가 복잡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친절하다.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처럼 대표적으로 언급할 만한 건 딱히 없지만 그냥 정말 살기에 좋은 곳이다. 살면 살수록 더 느끼는 것 같다.
저마다의 삶에는 시기와 타이밍이 있고
각자 이루고 싶은 삶의 과정이 있다.
때론 후회도 하고 잘못된 결정도 하고
시간도 낭비해봐야 한다.
원래 내가 호주에 온 목적은 학업을 위해서였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비자가 만료되어 한국으로 돌아갔지만, 결혼하면서 다시 호주로 돌아왔고 현재 나와 남편은 호주 이민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워킹홀리데이 때 만나 호주에서 다른 사람들이 겪는 비슷한 과정을 함께 밟으며 경험했다.
호주에 산 지 오래되다 보니 주변에서는 내가 당연히 영주권이나 시민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처음 호주 올 때 이민 생각이 없었던 나는 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호주에 살다 보니 여기서 평생 사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이민을 위해서는 포기해야 할 게 많았다. 호주 이민에 내 인생을 바칠 만큼 가치 있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렇지만 결혼하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남편과 나는 호주에서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고 20대 이후에 호주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이곳에서 가정을 꾸리는 게 더 안정적일 거라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너무 감사하게도 가족처럼 의지하고 지내는 친구들이 있기에 이것 또한 우리에겐 의미가 컸다. 남편의 오랜 친구들이 남편의 영향으로 호주로 오게 되었고 이 친구들은 우리보다 먼저 결혼하고 영주권을 받아 호주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하였다. 남편과 나는 동갑인데 남편 친구의 아내 또한 모두 동갑이어서 우리는 서로 친구로서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 이제는 생일과 명절을 항상 함께 보내며 가족같이 너무나 소중한 관계이다.
삶의 타이밍이라는 게 너무나도 기가 막히게 잘 맞아떨어졌고 내 주변 환경과 상황이 자연스럽게 호주에서 삶을 꾸리게 이끌어 갔다. 사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들었다. 진작에 이민을 결심했으면 지금쯤 영주권을 받고 조금 더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렇게 되면 내가 이전에 누렸던 걸 건너뛰었어야 한다.
힘들게 입학해 값진 경험을 했던 호주 대학 생활, 한국에서 가족과 보낸 소중한 시간, 한국에서 스튜디오를 오픈하고 다양하게 시도했던 창작 활동, 한국에서 책을 출간하며 쌓은 커리어 등이 내 인생에서 사라진다고 상상하니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후회를 계속 교훈 삼아
'이것도 하나의 과정이야.'라고
습관적으로 자기 합리화 속에
갇히지만 않으면 된다.
저마다의 삶에는 시기와 타이밍이 있고 각자 이루고 싶은 삶의 과정이 있다. '진작에 이렇게 할걸.'이라는 후회는 적어도 삶의 깨달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한 삶의 과정이 있으니 후회라는 것도 할 수 있다. 어떻게 인생이 항상 완벽할 수 있겠는가. 때론 후회도 하고 잘못된 결정도 하고 시간도 낭비해봐야 한다.
삶에서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며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을 찾아 조금씩 전진하면 된다. 단지 이 후회를 계속 교훈 삼아 '이것도 하나의 과정이야.'라고 습관적으로 자기 합리화 속에 갇히지만 않으면 된다.
나는 현재 호주 이민을 준비하고 있지만 일이 엎어져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도 하나의 과정이야.'라고 내뱉으며 합리화 속에 갇히지 않게 최대한의 노력을 할 것이다. 반드시 호주에서 살아야 하는 게 나의 인생 목표는 아니지만 일단 결정한 일에 대해 책임을 다하여 만족하는 결과를 만들고 싶다.
한 번쯤은 이민을 고려해 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일단 워킹홀리데이든 한 달 살기 등을 해보며 판단해 보는 건 어떨까. 영주권을 받기 전에는 영주권만 바라보며 달리던 사람들이 막상 영주권을 받고 나면 더 큰 산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주변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는데 버티면 영주권은 다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나와 남편은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와 어학연수를 거쳤으며 대학 생활도 해보고 여러 가지 일을 하며 돈도 벌고 정말 많은 경험을 호주에서 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버티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버팀은 상당히 버거울 수 있다. 호주에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난다. 호주 임금이 높다고 하지만 비자 연장비로 1~3년마다 돈을 내다보니 돈을 모을 수가 없다. 이민을 위해 버팀을 감당할 수 있는지는 한번 살아봐야 알지 않을까.
<출처>
https://www.mad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14070
일러스트레이터 여울(Yeouul)
<빈티지의 위안>, <멜버른의 위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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