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이 글은 스포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영화 리뷰도 아닙니다.
초등학교 때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개봉했다. 영화관에서 해리포터를 봤던 그때의 충격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그때는 상상할 수 없었던 CG와 마법의 세계는 어린 나를 한순간에 매료시켰다.
솔직히 해리포터 1, 2, 3까지는 제법 기억이 잘 나는데 4부터는 기억이 안 난다. 어느덧 훌쩍 커버린 영화 속 주인공들을 보니 너무 어른처럼 느껴졌고 점점 내용도 복잡하고 어려워졌던 걸로 기억한다. 분명 영화관에 가서 다 보긴 했지만 내 머릿속에선 리셋이 되었다.
솔직히 몇몇은 충격을 받을 수 있는데 나의 남편은 여태 해리포터를 한 번도 안 봤다고 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그는 머글로 불린다. 정작 본인은 자신이 왜 *머글로 불리는지도 몰랐을 거다.
*머글: 해리포터에서 마법사가 아닌 일반인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요즘 어린아이들이면 해리포터를 못 본 게 당연하겠지만 어떻게 우리 또래인데 해리포터를 단 한 번도 안 봤을 수 있는지 그는 나에게 연구 대상이었다. 언젠가 함께 몰아보기를 하자며 다짐했지만, 해리포터가 2, 3편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해리포터가 없는 넷플릭스만 구독하고 있는 우리에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호주 넷플릭스에 해리포터 전편이 공개되었다. 그래 이건 기회라며 지난 주말 남편과 해리포터 1편부터 몰아보기를 시작했다. 모두 2시간이 넘는 영화이기에 주말에 열심히 봤지만 3편까지 밖에 보지 못했다.
해리포터 1, 2, 3편은 크리스마스나 특별한 날에 OCN에서 수도 없이 틀어줘서 너무 많이 봤다. 그런데 처음부터 본 적은 없었다. 중간부터 보다가 광고 나오면 채널을 돌려서 놓치고 이런 식이었다.
어렸을 때 보고 이렇게 해리포터를 처음부터 제대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참 신기하다. 어린 나이에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보면서는 다니엘 래드클리프(해리포터 역)가 너무 잘 생겼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완전 아기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남편에게 '얘들이 다 너무 귀엽지 않아.'라며 연발했다. 이젠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엠마 왓슨(헤르미온느 역)의 생김새와 말투 또한 왜 이렇게 사랑스럽고 귀여운지 모르겠다.
이번에 해리포터를 한 번도 안 본 머글 남편과 해리포터 몰아보기를 하며 느낀 게 있다. 개봉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 봐도 너무 훌륭한 CG이지만 이걸 처음 보는 남편의 시각으로는 다소 촌스럽고 CG 티가 많이 날 것이다. 물론 내가 봐도 이건 분명 CG이네 하며 티가 많이 나도 어렸을 때 느낀 짜릿하고 신선한 감동이 있기에 아는 내용과 장면이 나와도 여전히 입을 벌려 감탄하며 봤다.
아무리 해리포터가 대단한 작품이라고 한들 이걸 처음 보는 사람은 내가 어렸을 때 받은 충격과 감동을 고스란히 전달받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생각하니 한편으론 뭔가 안타깝기도 했다.
뭐든 다 때가 있고 시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늦게까지 놀다 엄마에게 혼나며 불려 갔던 추억, 친구네 집에서 자고 싶다며 떼를 썼던 기억 등 말 안 듣고 철없던 시절이었지만 모두 그런 때가 있는 거고 그렇게 어린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을 통해 우리는 성장한다.
어린이는 어린이인데 다 이유가 있다. 어른이 아닌데 어른처럼 굴 필요가 없다. 친구들과 놀고 싶은 게 당연하고 게임을 하다가 늦게 자고 싶기도 하고 어떨 땐 학교도 가기 싫고 그럴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한심한 어린 시절 추억이 있기에 우리는 그 기억을 추억하며 재밌게 살아갈 수 있다.
현재 나를 포함한 주변에서는 돈 모으기와 집 구매가 매번 대화 주제로 거론된다. 물론 이것도 인생에서 너무 중요하지만 지금 내 나이에 누릴 수 있는 충격과 감동을 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드트립도 다녀보고 사막도 가보고 배낭여행도 하고 패러글라이딩이나 스카이다이빙 같은 액티비티도 하면서 즐기며 살고 싶다.
돈 많이 벌고 나중에 해도 된다고 하지만 나이 먹고 했을 때 내가 느끼는 감정과 지금 느끼는 감정은 확연히 다를 것이다. 무엇을 하던 지금 이 나이가 지나면 모두 느낄 수 없는 감정이 되어 버린다.
머글 남편과 해리포터를 보면서 느낀 확연히 다른 나와 남편의 온도 차로 깨달은 사실이다. 어린 시절 영화관에서 해리포터를 보며 느낀 감동은 그때 그 나이에만 가질 수 있는 감정이었다. 그때 느낀 감동 덕분에 나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그 시절의 아련함을 그대로 떠올린다. 어린 시절 영화관에 앉아 날아다니는 빗자루를 보며 소리 없이 우와를 외치던 나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는 기분이다.
무언가를 한다는 건 단순히 그 행위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우리가 다녔던 학교나 좋았던 여행지를 다시 찾았을 때 느끼는 감정이 매번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모든 걸 다 경험하고 살 순 없고 모두가 다 한다고 나도 반드시 해야 하는 규칙이 있는 건 아니다. 내가 정한 규칙 속에서 사소하지만 소중한 감정을 키워가며 나만의 행복 루틴을 만들어 보자.
돈 많이 벌고 나중에 해도 된다고 하지만 나이 먹고 했을 때 내가 느끼는 감정과 지금 느끼는 감정은 확연히 다를 것이다. 무엇을 하던 지금 이 나이가 지나면 모두 느낄 수 없는 감정이 되어 버린다.
일러스트레이터 여울(Yeouul)
<빈티지의 위안>, <멜버른의 위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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