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통영에 잠시 머물렀다. 한 달 살기가 목표였지만 생각보다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았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최대한 쥐어짜서 2주 정도 통영살이를 하였다.
통영 시골 바닷가 앞에 있는 숙소에 머물면서 한적한 동네를 산책하고 카페에서 글을 쓰며 작업하였다. 가끔은 여행도 하고 알차게 나만의 시간을 보냈다. 이때 무슨 야심 찬 생각이 들었는지 통영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를 매일 촬영하였다.
혼자 무언가를 시도할 때 가장 위험한 건
포기보다는 끝내는 걸 힘들어하는 거다.
일어나서 바다를 보며 야외 테라스에 앉아 빵과 커피로 아침을 먹는 장면부터 13일 동안의 통영 일상 브이로그를 올리는 게 목표였다. 2주 동안의 여정을 통영살이라 말하기 민망하지만, 여행 목적이 아닌 그냥 작업하고 밥 먹는 일상이었기에 내 나름 통영살이라 언급하고 싶다. 그런데 여행이 아니어서 그런지 아침 먹고, 산책하고, 카페 가고 이런 지루한 일상이라 내가 촬영하고 편집했지만 재미가 없다.
이때 당시 유튜브를 하는 목적이 많이 불분명해진 상태였다. 코로나가 터지고 일상에 많은 제약이 있었을 때 내가 가진 재능으로 미술 유튜브를 시작하였다. 좋아해서 시작한 건 아니었다. 가지고 있는 재능을 썩히느니 이렇게라도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나의 얄팍한 의지가 반영되었는지 영상 반응이 좋지 않았다. 결국 유튜브를 방치해 두고 있다가 2021년에 엄마와 목포 여행을 다녀오면서 다시 시작하였다. 목포에서 생각보다 영상을 많이 찍어서 사진첩을 정리할 겸 유튜브에 올리고 영상을 지워서 핸드폰 용량을 확보하자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이 영상 반응이 좋았다. 현재 목포 여행 브이로그 조회수는 2만 회가 넘는다.
이전에 미술 영상 올렸을 땐 100회가 안 넘는 것도 많았다. 그에 비하면 목포 여행 브이로그는 내 기준에서 상당히 높은 조회수이다. 이후 나는 여행을 다니면서 찍은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뭔가 수익을 바라고 한 건 아니다. 그저 내 핸드폰에 있는 영상을 정리하여 용량을 줄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맘때 나는 통영에 갔고 쓸데없는 포부를 갖고 통영살이 13일의 일상을 브이로그에 담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편집은 계속 미루었고 통영 영상은 점점 내 사진첩에 케케묵은 자료가 되었다.
내가 유튜브를 망한 이유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글쓰기와는 다르게 브이로그에서는 내가 솔직하지 않다. 왠지 모르겠지만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고 나의 이야기를 숨기게 된다. 그러다 보니 편집할 때 부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잘하고 싶다는 마음보단 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누구나 깨닫는 시점은 각각 다르다.
물론 학창 시절에 깨달으면 남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나아가긴 하겠지만
우리가 모두 그 속도에 맞출 필요는 없다.
그래서인지 정작 내가 만든 영상이지만 지루해서 검토하는 것마저 귀찮아했다. 영상을 올리고 나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꾸역꾸역 통영살이 9일 차까지 업로드하고 편집을 멈추었다. 통영 영상은 또다시 내 핸드폰 사진첩 과거 기록으로 점점 더 숨어 들어갔다.
나는 올해 호주 멜버른에서 (1)아웃백으로 로드트립을 앞두고 있다. 자그마치 편도로만 차로 18시간 정도 걸리며 1,600km에 가깝다. 왕복으로 계산하면 엄청난 거리이다. 나는 이 여행을 브이로그로 만들고 싶다는 야심 찬 생각을 다시 한번 더 가지게 되었다.
(1)아웃백은 오스트레일리아의 건조한 내륙부에 사막을 중심으로 뻗어있는 넓고 인구가 희박한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인구의 90%는 면적으로 약 5%에 해당하는 해안 지역에 집중되어 있고, 내륙부 지역의 인구 밀도는 1평방 킬로미터당 1명 이하이다.
그런데 그러려면 일단 내 핸드폰에 있는 통영 영상을 먼저 다 해치워야 했다. 정말 하기 싫어서 미룰 대로 미룬 숙제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그냥 지우고 싶지는 않았고 드라이브로 옮긴다 해도 또다시 숙제만 미루는 상황이기에 이번엔 담판을 지어야 했다.
그런데 이전처럼 당사자도 안 보는 재미없는 영상으로 편집하고 싶진 않았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걸 이용하여 약간의 변화를 줘야 했다. 나는 꾸준히 하는 글쓰기를 활용하여 영상 전체에 자막으로 이야기를 담아 조금 덜 지루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편집을 바꾸었다.
이렇게 하니 나름 만족스러웠다. 알찬 내용이 담긴 자막은 아니지만 영상을 보는 내내 자막에서 내가 떠들어대는 거라도 보니 덜 지루하고 전보단 나았다. 이제는 꽤 즐거운 마음으로 편집한다. 이전에 끝내지 못한 통영살이 10일 차부터 13일 차까지 4개 영상을 모두 편집하여 드디어 업로드를 완료하였다. 이제 더 이상 핸드폰에 통영 영상은 남아 있지 않다. 내가 간직하고 싶은 타임랩스 영상 몇 개만 남아 있다. 핸드폰 용량도 넉넉해졌다.
2021년에 다녀온 걸 2023년에서야 마무리 지었다. 열심히 찍은 영상을 지우기 아깝다는 마음가짐 하나로 끝을 냈는데 막상 올리고 나니 기분이 좋고 후련했다. 그런데 사실 나에게는 아직 숙제가 더 남아있다.
2022년에 호주 멜버른에서 시드니로 7박 8일 로드트립 다녀온 여행 브이로그도 올려야 하고 '인더숲 BTS'에서 방탄소년단이 머무른 춘천 숙소 '레이크 192'를 방문한 리뷰 영상도 올려야 한다.
그래도 이젠 제법 내가 흥미 있는 콘셉트를 잡았으니 기운 내서 해보려고 한다. 사막 지하동굴 마을로 향한 로드트립을 하기 전까지 이전에 다녀온 모든 여행 브이로그를 완료하는 게 나의 숙제이다. 혼자 하는 숙제이기에 미뤄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지만 찝찝한 기분을 남기지 않기 위해 끝내는 습관을 만들고 싶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고 한다.
자책이 아닌 인정을 해야 한다.
힘들지라도 끝까지 해내려는
용기와 끈기를 키워보자.
성취를 반복하면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
혼자 무언가를 시도할 때 가장 위험한 건 포기보다는 끝내는 걸 힘들어하는 거다. 안 맞는 게 있다면 스트레스받으면서 굳이 꾸역꾸역 할 필요는 없다. 적당한 포기는 또 다른 도전에 사용할 에너지를 만들어 준다.
그렇지만 끝까지 끝내지 못해서 적당한 핑계를 둘러대며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공부와 사회생활 모든 것이 똑같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하던 공부는 끝까지 해내기 위한 연습이었다. 학창 시절에 이 연습이 잘 되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힘들다.
그러나 나이에 따른 시간이 존재하는 게 아닌 사람에 따라 다른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각자 인생의 타임라인을 잘 활용하면 된다. 누구나 깨닫는 시점은 각각 다르다. 물론 학창 시절에 깨달으면 남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나아가긴 하겠지만 우리가 모두 그 속도에 맞출 필요는 없다.
하고 싶은데 잘 안 된다면 핑계를 찾아 자신을 합리화하기보단 자신의 잘못된 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개선하도록 노력해 보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고 한다. 자책이 아닌 인정을 해야 한다. 힘들지라도 끝까지 해내려는 용기와 끈기를 키워보자. 성취를 반복하면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
(1)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C%95%84%EC%9B%83%EB%B0%B1
일러스트레이터 여울(Yeouul)
<빈티지의 위안>, <멜버른의 위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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