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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Yeouul Jun 14. 2024

호주 워홀 1년 하면 영어 잘하나요?

내가 처음 호주에 온 건 2013년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호주 대학 졸업이었지만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문법에 특화된 영어 실력이 다였기에 영어도 공부하고 호주 문화에도 익숙해지기 위해 접근이 쉬운 워킹홀리데이부터 시작하였다.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외국에 얼마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자신이 어떻게 그 환경을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호주 워홀을 오기 전 워홀 다녀온 사람들의 정보를 많이 캐고 다녔는데 내가 경험해 보지 않는 이상 남들의 경험이 내게 체감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워홀을 오기 전에는 누군가 어학연수나 워홀을 1년 다녀왔다고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럼 영어 잘하시겠네요!"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수줍은 미소를 띠며 아니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20대 초반 아직 세상 물정 잘 몰랐던 사회적 나이로는 어렸던 나는 이렇게 답한 사람들이 그저 겸손하다고만 생각했다.


호주 워홀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갔을 때 나는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호주에 1년 동안 있었으니 이제 영어 잘하겠네?"


나의 대답은 역시나 '아니요.'였다.





호주 워홀을 가기 전에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1년 내내 영어를 하는 환경 속에 있는데 당연히 영어가 늘겠지. 영어가 안 느는 건 아니지만 유창하게 잘하게 되는 건 아니었다.


가끔 유튜브를 보면 1년 워홀 다녀왔는데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막상 주변을 둘러보면 그런 사람들은 흔치 않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 하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해외 거주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호주에 오기 전에 한 생각과 비슷할 것이다. 영어를 하는 환경 속에서 매일매일 지내는데 어떻게 영어가 안 늘지?


그래! 답은 이렇다. 영어를 하는 환경 속에서 24시간 동안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호주 친구를 사귀고 호주 사람들과 섞여서 하루 종일 쫑알쫑알 말하고 산다면 영어가 당연히 늘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낯선 호주 땅에 떨어지면 영어도 안되고 호주 문화도 낯설고 그러다 보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한국 커뮤니티를 찾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한국 사람을 사귀게 되고 한국인이 섞여 있는 곳에서 일하게 되고 결국 한국말 할 기회가 늘어난다. 외국 친구를 사귄다 한들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거나 매일 어울리지 않는 이상 영어가 확연히 늘지는 않는다.


그럼 영어를 써야 하는 직장을 구한다면 당연히 영어가 늘지 않을까. 이건 어떤 직장을 구하냐에 따라 달라진다. 처음 워홀 와서 영어도 잘 못하는데 호주 사람들이 일하는 사무직을 구할 수는 없다. 워홀을 온다면 주로 카페나 식당, 쇼핑몰에서 일할 기회를 얻을 것이다. 여기서 호주 사람들을 상대하면 처음에는 영어가 늘겠지만 결국 사용하는 말이 한정적이어서 어느 순간 영어 실력은 정체되고 더 이상 늘지 않는다.





그럼 영어를 잘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하나이다. 공부를 해야 한다. 미드를 본다거나 책을 읽는다던가 나만의 공부법을 찾아서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미드를 보면서 따라 하는 쉐도윙으로 발음 연습을 하고 회화에 유용한 문장을 익히거나 수준에 맞는 책을 읽으며 단어와 문장 구사력을 공부하는 게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이밖에도 자신에게 맞는 영어 공부법이 있을 테니 여러 시도를 해보며 시간을 들여야 영어가 는다.


영어 학원에 다니는 것도 도움이 된다. 워홀을 간다면 호주에서 어학원 1~2개월 정도 다녀보는 걸 추천한다. 자연스럽게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 있어 학원이 끝나도 친구들과 어울리며 영어로 말하는 환경이 자동으로 연장된다.


나는 워홀 때 호주 가정에서 숙식을 제공받는 대신 가사를 돕는 데미페어를 2개월 했고 어학원도 3개월 다녔으며 초반에는 매일 1시간 이상 따로 영어 공부를 했다. 이렇게 하니 영어가 늘긴 했지만 입에서 툭툭 바로 나오는 유창한 영어 실력은 아니었다.


한 번은 워홀 때 친구들과 맥주 공장 투어를 다녀왔는데 거기서 맥주 공장 역사에 대해 설명하는데 거의 알아듣지 못해서 멍 때렸던 경험이 있다.





내가 지금까지 계속 언급하고 있는 건 워홀에 국한된 상황이고 호주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제대로 된 직장에 취업한다면 남들과는 차별화된 영어 실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래 산다고 영어를 다 잘하게 되는 건 아니다. 환경이 중요하다. 호주에서 10년을 살았다고 한들 한국인과 일하고 한국인과 살고 가끔 마트에서 장이나 보는 정도라면 어떻게 영어가 늘 수 있겠는가. 뭐든지 자기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달려있다.


그렇다면 호주에 산 지 10년 차인 현재 나의 영어 실력은 어떨까. 형편없는 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많이 부딪힌다. 사실 나도 매번 영어 공부 해야지 다짐한다. 영문 책을 읽거나 미드를 보며 공부하거나 나 스스로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의 영어 실력이 확연히 늘었던 건 공부를 가장 열심히 할 때였다. 도서관에 가서 매일 아이엘츠(IELTS)를 공부하고 대학교 3년을 다니는 동안 영어가 가장 많이 늘었다. 이때는 학업에 적합한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등을 수도 없이 많이 했으며 정돈되고 공식적인 문장을 써야 했기에 워홀 때 나의 영어 실력과 비교했을 때와는 상당히 향상되었었다.


그렇지만 졸업하고 바로 한국으로 가서 영어를 안 쓰다 보니 점점 나의 영어 실력은 퇴화했고 코로나 시기에 호주에 다시 들어오게 되어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는 환경에 살다 보니 영어와 한국어 모두 다 퇴화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현재는 다시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


글을 마무리 지어 보자면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외국에 얼마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자신이 어떻게 그 환경을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호주 워홀은 참 값진 경험이다. 엄격한 조건 없이 나이만 된다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주에 와서 세계 각국의 친구들도 사귀며 다양한 문화도 접해보고 새로운 일도 해보고 더해서 향상된 영어 실력까지 갖추고 한국에 돌아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굳이 심하게 스트레스받으며 자신을 그런 환경으로 몰아넣진 않아도 된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열심히 하고 그 나이에 누릴 수 있는 워홀을 신나게 즐기다 가면 된다.


워홀이 끝나고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어떤 대답을 하고 싶은지에 따라 자신의 워홀을 설계해 나가면 된다.


"워홀 1년 하고 나니깐 어때?"


어떤 대답을 하고 싶은가. 혹은 어떤 대답을 할 텐가.




일러스트레이터 여울(Yeouul)

<빈티지의 위안>, <멜버른의 위안> 저자


Instagram: @yeouulart@yeouul_illustrator

Youtube: 여놀자(yeonolja)여울여울

Website: https://yeouul.creatorlin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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