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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Yeouul Apr 24. 2022

호주에 사니 요리가 점점 늘어요

김치찌개가 1인분에 2만 원?


내가 호주에 처음 온 건 2013년이다. 중간에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한국에서 1~2년씩 보낸 기간이 있긴 하지만 호주에서 지낸 기간이 길긴 길다. 호주 생활이 오래되고 익숙해지다 보니 나는 요리하는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


처음 내가 호주를 온 건 워킹홀리데이였다. 초기 정착금을 환전해서 들고 와 돈이 다 떨어질 때쯤엔 일자리를 구해 돈을 벌어 생활비를 메꿔야 했다. 호주에 와서 좋은 시간을 많이 보냈지만 이렇게 긴 외국 생활은 처음인지라 한국 생각이 많이 났다. 그 와중에 가장 그리웠던 건 한국 음식이다. 한국에서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기에 우리 집에서는 냉장고만 열면 항상 김치와 밑반찬이 있었다. 그렇지만 호주에선 그 흔한 김치조차 자유롭게 먹을 수 없었다. 물론 돈이 많다면 불가능한 건 없지만 돈을 아껴야 했기에 쉽게 사 먹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내가 있던 지역인 골드 코스트는 다소 한적한 시골이기에 한인 마트와 한국 식당이 흔하지 않았으며 카페는 3시에 닫고 식당과 마트는 9시가 되면 닫았다. (2013년 기준) 그렇기에 한국 음식을 먹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2013년 당시 골드코스트 한인 식당에서 파는 김치찌개 가격은 $15이었다. 그 당시 환율로는 대략 2만 원 정도이다. 호주에서 지낸 지 한 달이 지났을 때 나는 김치찌개를 너무 먹고 싶어 첫 외식을 하였고 내 피 같은 돈 2만 원을 결제하고 나서 깨달았다. 웬만하면 음식은 해 먹기로 다짐했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아꼈기에 돈도 더 모을 수 있었고 호주에서 큰 불만 없이 오랜 기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별거 아니지만 직접 만든 요리로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며 헛헛한 마음을 포근하게 채우는 것은 어쩌면 일상에서 큰 감정의 면적을 차지한다.





요리에 자신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블로그와 유튜브에 레시피가 잘 나와 있기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간단하게 찌개 끓이는 것부터 시작하여 볶음, 탕 등 점점 어려운 요리에 도전하였다.


당시 골드코스트에는 한국인과 일본인 유학생이 많았다. 나는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는 한국 친구들과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일본 친구들을 초대하여 자주 요리를 해주었다. 너무나 폭발적인 반응에 자신감이 생겨 점점 더 요리를 많이 하게 되었고 다른 외국인 친구들도 초대하여 한국 요리를 대접하였다. 얼마나 요리를 많이 했으면 어머니께서 요리하러 호주에 갔냐며 말씀하셨다.





2014년에 나는 대학교에 가기 위해 멜버른으로 왔다. 처음 왔을  나는 복잡하고 휘황찬란한 도시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서울에서 살아서 도시 생활이 놀랄 것도 없었지만 지난 9개월 동안 골드 코스트의 한적한 시골 생활과 비교해보면 여유와 복잡함이 공존하는 도시인 멜버른이 낯선 파라다이스 같았다.


호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멜버른에는 많은 한인 마트와 한국 식당이 있다. 그리고 비교적 저렴하다. 현재 한국 물가와 비교했을 때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 멜버른으로 오니 나의 요리 세계는 점점 더 넓어졌다. 다양한 식자재를 구할 수 있으며 세계 곳곳에서 온 다른 나라의 친구들과 함께 살면서 여러 나라 요리를 배웠다.





나는 멜버른 CBD에서 학교에 다니며 일했기에 멜버른에서 렌트비가 가장 비싼 CBD에서 살았다. 현재 멜버른 교통비는 왕복 $9.2(한화 8,411.47, 2022.4.21 기준)이다. 그럼 한 달에 대략 20만 원 넘게 교통비가 들게 된다. 교통비와 편리함, 시간 절약을 생각하면 비록 모르는 사람과 쉐어를 할지라도 CBD에 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4~5년 동안 멜버른에 살면서 세계 곳곳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쉐어를 했다. 인도, 이탈리아, 프랑스, 태국, 호주, 일본 등 여러 나라 친구들과 함께 살면서 즐거운 쉐어 생활을 보냈다. 함께 식사도 하고 게임도 하고 시간을 보내며 각 나라의 다양한 문화도 공유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함께 살면서 가장 많이 부딪히는 공간은 주방이었다. 신기하게도 내가 쉐어했던 친구들은 나와 비슷하게 집에서 요리를 자주 하며 보통 이상의 요리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나는 가끔 친구들이 주방에서 요리할 때 신기하거나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보면 레시피를 물어보곤 했다.


특히나 나는 식당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친구들은 집에서 간편하게 만들어 먹는 게 신기했다. 한 번은 프랑스 친구가 집에서 라따뚜이를 만들어 먹는데 내가 생각한 비주얼과는 너무 달랐다. 프랑스에서는 손님이 올 때나 정갈하고 이쁜 모양으로 라따뚜이를 해 먹지 평소에는 그냥 집에 있는 채소를 다 넣고 토마토소스를 넣어서 간편하게 해 먹는다고 한다. 그 이후 나도 따라 만들어 봤는데 정말 간단하고 맛있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도 식당에서 먹는 비빔밥과 집에서 해 먹는 비빔밥의 비주얼이 조금 많이(?) 다르긴 하지만 둘 다 맛있다.





이렇게 요리하다 보니 절로 요리가 늘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나뿐만이 아닌 호주에서 지내는 많은 유학생이 나와 비슷했다. 매번 외식할 수도 없으며 테이커 웨이 음식도 저렴하지 않기에 어쩔 수밖에 없이 집에서 해 먹어야 하는 날이 많다. 그러다 보면 요리가 절로 늘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건 호주에서 그렇게 요리를 많이 했던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가니 요리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한국에는 저렴한 길거리 음식도 많으며 밀키트와 간편 요리가 너무나도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호주에서 내가 요리를 가장 많이 했던 시기는 바로 코로나 락다운 때이다. 식당도 문을 닫고 거리가 황폐해진 멜버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집에서 매일 요리하는 것이었다. 외출 제한으로 자유롭지 못할 때는 장 보러 가는 일이 가장 기쁜 일이었고 집에서 요리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즐거웠다. 친구들과 짧은 기간 함께 지낼 때는 부대찌개 10인분을 해서 나누어 먹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요리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함께 식사하면서 그 기쁨을 모두와 함께 나눌 수 있어서이다. 골드코스트에서 지낼 때 한국을 그리워하는 친구들과 한국 음식을 먹으며 힘든 시기를 함께 버틸 수 있었기에 호주에서 더 값진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밥이라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서서 더 많은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요리하면서 얻는 소소한 행복함과 함께 식사하면서 나누는 대화의 즐거움 등 많은 감정이 발산된다.





이렇게 요리해서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쌓은 작고 소중한 순간이 있었기에 낯선 타지에서 작은 위안을 얻으며 힘든 순간에도 잘 이겨낼 수 있었다. 별거 아니지만 직접 만든 요리로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며 헛헛한 마음을 포근하게 채우는 것은 어쩌면 일상에서 큰 감정의 면적을 차지한다.





일러스트레이터 여울(Yeouul)

<빈티지의 위안>, <멜버른의 위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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