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할 수는 없다. 조금씩 나아지면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성숙해지는 게 무엇인지는 많은 생각을 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의무적인 학업에서 벗어나면 모든 결정과 선택은 나의 몫이 된다. 누군가의 영향이 있을 순 있겠지만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짊어져야 한다. 그렇게 인생의 과정을 밟아가다 보면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온다.
억울하고 슬프고 답답한 여러 감정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연습을 한다. 틀에 박힌 학교에 있다 세상에 나오면 모든 게 처음이 된다. 감정도 경험도 모두 새롭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갈등을 마주하게 된다. 갈등은 결국 화로 변질하고 극적으로 치달을 때도 있다.
사회 초년생 때의 나는 일을 할 때 큰 그림을 볼 줄도 모르면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나의 주장을 내세워야 했고 친구나 가족 간의 갈등에서도 할 말은 해야 했다. 이런 갈등 속에서 상처를 많이 받기도 했지만 내가 준 상처의 깊이도 깊을 것이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달라진 점이 있다면 화가 적어졌다. 그리고 말을 내뱉기 전에 머리로 한 번 거른다. 하고 싶은 말이 목 끝까지 차올라도 일단 생각하고 내뱉으려고 한다. 그러다 대화가 마무리되면 나는 안심을 한다. 그래 그 말은 안 하길 잘했어.
주변에 보면 갈등이 적은 사람들이 있다. 나는 예전부터 이들을 계속 관찰했다. 어떻게 저런 상황에서 화가 안 나지. 어떻게 저런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을 수가 있지. 나 같으면 억울할 것 같은데 표정이 한결같네. 답답하지 않나.
내가 생각하기엔 이해가 안 가는 상황에서 어떤 불화나 논쟁을 만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생각을 들여다봤다. 불공평한 상황이어서 화를 낼 법도 한데 평정심을 유지하는 그들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면 모두 비슷한 대답을 하였다.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냥 그러려니 해."
"솔직히 괜찮진 않지. 그래도 내가 뭐 어떻게 하겠어."
나와 비슷한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마인드를 가졌다는 게 나보다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굉장히 화가 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감당하기 힘든 경우가 오면 답답하고 억울하고 속상한 감정을 갖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화가 많지 않은 사람들의 대처법을 보며 나도 배우고 싶었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행동으로 이행하지는 못했다. 답답한 상황이 오면 결국 나는 화를 내고 내 주장을 내세웠다. 그리고 굳이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됐는데 하면서 후회했다.
이런 생각과 행동을 반복하다 보니 나도 어느새 지쳤다. 결국 결과가 항상 같다는 건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지 못한 화와 도로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에 항상 후회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갈등이 있을 때 대화의 습관을 바꾸기 시작했다.
일단 목소리를 격양시키지 않는다. 나는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내 의견이 맞다고만 말하는 게 아니지만 목소리가 격양되면 상대는 오해한다. 상대가 나한테 똑같이 해도 나는 오해를 한다. 왜 나한테 화를 내고 자기 의견만 맞는다고 그러지. 결국 나도 똑같이 생각하면서 내가 말하는 건 화를 내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목소리의 톤이 중요하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톤을 높이면 안 된다.
그리고 경청한다. 나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상대가 하고 싶은 말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상사든 친구든 가족 간의 대화에서든 모두 경청이 중요하다. 물론 나도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그들이 왜 그렇게 말을 토해내는지 들어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화를 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못해 토해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 또한 참지 못하고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다 토했던 것처럼.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머리로 한 번 거르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가끔은 짧게 대답만 하고 말을 이어가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런 식으로 대화하다 보니 오히려 마음이 더 편안해졌다.
화를 낸다는 건 결국 자신에게 똑같이 돌아온다. 갈등의 온도는 상황 속에서 격조된 열기를 더해줄 뿐만 아니라 화를 내는 사람의 내면의 열 또한 올려 준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 그게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신에게 돌아온다. 누군가에게 소리를 지르면 본인 또한 그 격양된 어조에 영향을 받는다.
그렇지만 한 번에 변할 수는 없다. 연습해야 한다. 알면서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후회해도 괜찮다. 대신 잘못된 행동에 대한 인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성숙해진다는 건 대화의 연습으로 우리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대화법을 배워 가는 것 같다. 모든 갈등의 원인을 들여다보면 결국 말이 문제인 경우가 많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
말(言, 말씀 언)과 관련된 속담이 무려 60개가 넘는다. 그만큼 오래전부터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고 있다.
나는 아직도 대화하다 보면 실수를 많이 한다. 굳이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할 때가 있고 상대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말을 하기도 한다. 완벽할 수는 없다. 조금씩 나아지면 된다.
이래서 사회가 있는 것이고 우리는 그 사회 속에서 대화하며 인생을 배워 가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은 대화를 하기 위해 대화의 연습을 하는 것이고 그렇게 우리는 성숙해진다.
그림출처: https://www.instagram.com/yeouul_2019/
일러스트레이터 여울(Yeouul)
<빈티지의 위안>, <멜버른의 위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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