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글쓰기였다. 이때까지 노트에 소소하게 끄적끄적거리다가 친구를 통해 브런치라는 곳을 알게 되고 지극히 개인적인 내 공간을 마련하게 되었다. 나의 공간이 생기면, 언젠가는 내 얘기를 써보고 싶었다.
예전에는 '나'를 주제로 쓴다는 것이 어려웠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었다. 들어주는 게 쉽지 내 얘기를 하는 건 늘 서툴렀다.
“넌 항상 왜 네 얘길 안 하니?”
한 친구가 물었다. 이 친구는 나와 대화를 해보니 생각이 깊고 어른스럽다며 친해지고 싶다 했다. 그때 당시에는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들어주는 것이 배려라고 느꼈지만 친구는 관계가 지속될수록 들어주기만 하는 나에게 의아함을 느끼며 말했다.
“나도 네 얘기를 듣고 싶어.”
'나'를 드러내는 것이 서툴다 보니 상대는 나와의 대화가 피상적이라 느꼈는지, 나에 대해 알고 싶다고 단도직입적으로말했다. 한쪽이 들어주고 기대기만 하는 일방적인 관계는 네가 지쳐버릴 거라며, 내 얘기도 해달라고 했다. 그 후로 점차 나는 나의 얘기를 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 친구와 둘도 없는 절친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예전에 글을 쓸 때도 나는 나를 나타내는 글보다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글쓰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소설류를 많이 읽었고, 에세이는 잘 읽지 않았다(지금은 반대지만). 하지만 내 공간에서 만큼은 가상의 인물의 얘기보다는 나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나의 얘기를 하기 전 나를 간단히 서술하자면 현재 서른을 목전에 앞둔 29.9세의 보편적인 직장인이다. 한 회사를 쭉 다닌 건 아니고 퇴사와 이직의 경험이 있다. 그리고, 평생을 약속한 남자와 삶을 공유하고 있다. 인생을 추구하는 방식은 어딘가에 매여있지 않은 자유로움을 추구하지만 그렇다고 도전정신이 있진 않다. 도전이든 모험이든 동경하지만 변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새로운 시작이 어렵다. 굳이 변화하려 한다면 현 상황이 너무 안 좋아서 정이 떨어질 때로 떨어진 후거나, 혹은 한참 마음을 먹어야지 가능하다.
지금부터 브런치에 담을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이야기다. 내가 지내온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느낀 점들을 고스란히 담을 예정이다. 이 이야기가 혹 누군가에게 닿아 큰 영감과 귀감을 주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저 나를 나타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다.
첫 서두에서 나를 표현하는 글에 나이에 대해 먼저 서술했는데 나는 두 달 뒤면 서른이다. 요즘 매체에 ‘서른’을 소재로 하는 이야기가 늘어나고 있다. 나는 현재 나와 별반 달라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사람들에게는 서른이 주는 임팩트가 큰 것 같다. 남편과 연애시절 나이에 관해 대화한 적이 있었다.
“오빤 서른이 되면서 뭔가 달라졌어?”
“아니, 늘 똑같아.”
곧 있음 서른인데, 남들에게 영향력을 크게 미치는 그 나이를 남편은 어떻게 지나왔는지 궁금했다. 근데 남편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두 살 터울인 언니를 봤을 때, 서른은 언니에게 꽤나 큰 영향력을 미친 것 같았다. 서른이 된 그 해, 언니의 책장에는 '서른'의 관한 책들이 하나 둘 꽂히기 시작했고 본인 생일날 자기 자신에게 선물을 주겠다며 루이뷔통 백을 샀다. 또한 동갑인 친구 역시 서른 번째 생일날 스스로에게 구찌백을 사주겠다며 웃었다. 단순히 남녀의 차이인가? 싶어 언니에게 물었다.
“이때까지 자신에게 잘해왔다는 선물로 사주는 거야?”
“그런 것도 있고.”
“오빠의 서른은 별 다를 게 없었대. 근데 여자들에게 유독 서른이 특별한 것 같아.”
“남자들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30대고, 여자들이 빛나는 순간은 20대 중후반. 확실히 달라.”
“빛나는 순간이 지나니까 명품으로 빛내는 거야?”
“뭐 그런 거지. 그냥 나 좀 괜찮게 살고 있다는 걸, 나쁘지 않게 살고 있다는 걸 나 스스로 보여주고 싶어서.
명품이라는 의미가 다들 갖지 못하는 거잖아, 희귀하고. 근데 난 그걸 맘만 먹으면 이렇게 가질 수 있다!
작은 용기를 부여하는 거?”
“근데 왜 하필 서른이야?”
“그 나이 때면 직장생활도 어느 정도 하고 돈도 있고, 능력도 있고, 뭐 여러모로 당당함을 보여주고 싶은 거지.”
생각해보면 나이에 대한 잣대가 여자에게 유독 심한 거 같다. 예전보다 조금 덜해졌다곤 하지만 아직도 여자 나이 서른이라면 한 풀 꺾인다, 여자 서른이면 한 물 갔지. 란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하다 못해 여자들 사이에서도 우리 이제 서른이야, 관리하자. 라며 우스갯소리로 말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나는 나의 서른이 이제껏 지나온 생일과 마찬가지로 무던히 지나갔음 한다. 그저 그런 날의 일상처럼. 의미부여를 하고 무언갈 더 하려고, 더 특별해지려고 애쓰지 않고 싶다. 어차피 내 삶의 모든 날은 특별할 테니 서른의 그 해도 내가 지나온 그리고 앞으로 내게 주어진 많은 날 중의 하루이고 싶다.
다만, 언니와의 대화를 하면서 나이 얘기를 하던 순간 남편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서른이 되었다고 크게 달라진 건 없는데, 그런 얘긴 있잖아.’
‘뭐?’
‘20대 연애, 30대 연애 다르다고.’
‘응.’
‘그건 있는 것 같아.’
‘어떻게 다른데?’
내 물음에 남편은 오른손으로 핸들을 잡곤 왼쪽 검지 손가락을 입에다 가져다 대며 말했다. 운전을 하면서 골똘히 생각할 때 하는 남편 특유의 버릇이다.
‘덜 소진하려는 것 같아.’
‘엥?! 그럼 서른 넘어 만난 나에게는 힘을 덜 쏟는다는 말이야?’
괜한 서운함에 입술이 삐쭉 튀어나왔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아니면 아닌 거. 정들어버리면 관계 끊기가 힘드니까 아니면 감정이 깊어지기 전에 시작하지 않는 거 같아.’
‘응.’
‘한 마디로 20대와 다르게 30대가 되면 맺고 끊음이 확실해지는 거 같아.’
‘그럼 내가 헤어지자 하면 안 잡는다는 거야?’
한 번 마음이 삐딱선을 타니 되지도 않는 말들이 튀어나왔다. 어쩌면 상처 받지 않으려는 방어기제에 대한 말이기도 한데 그때 당시에는 그 말이 서운해 언니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