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作
이 책은 그 전부터 유명했던 작품이지만 영화라는 계기로 재조명된 작품이기도 하다.
유명한 배우들의 출연으로 매스컴에서 심심치 않게 보였던 작품.
영화도 좋아하지만 책을 더 좋아하는 나로써는 책의 영화화가 과연 더 좋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글을 영상으로 옮기면서 상상을 실체로 만나게 되면 더 좋을까?
나는 너무 좋아했던 소설이나 작품은 실체가 아닌 글로써 내 상상에만 그 주인공이 머물러주기를,
출연한 어떤 배우의 이미지로 각인되진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더 크게 든다.
나는 책을 사서 읽는 것보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처음에 '두근두근 내인생' 이라는 작품이 등장했을 때 도서관에는 이 책을 빌리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작은 소도시의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나에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갈 때 마다 검색해서 이 도서가 있는 지 살피기를 여럿 반복할 때 쯤, 드디어 내 손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막상 내 손에 들어오고 나니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작가의 문체가 어렵게 느껴졌고 한장 넘기기도 어려워졌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이 책을 다시 손에 집었다.
그때 읽다 실패했던 게 생각나서 오기도 생겼고 그리고 꼭 다시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근 3년 전보다 내가 자란 까닭일까, 이번에는 이상하게 책이 쉽게 읽혔다.
소설의 줄거리를 말하자면 누군가를 책임지기에는 너무나도 어린 열일곱의 나이에 아이를 낳은 부모와
희귀병으로 자신보다 더 일찍 늙어가는 아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시점은 아들인 아름이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 부모의 얘기와 현재 자신의 얘기를 넘나들며 부드럽게 진행된다. 특히 어린 부부가 아름이가 갓 태어났을 때 그 벅차하던 감정들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를 짊어지는 것에 대해 꺼려하고 어려워하기만 했던 아버지 태수가 아름이가 태어나고부터 변하는 과정이 가장 좋았다. 소년이 아버지가 되는 순간이 고스란히 드러난 대목이었다.
소설이 후반부로 치닫으면서 슬픈 내용도 많았다. 3살부터 발병한 아름이의 희귀병 때문에 병원비는 수많은 빚을 지고도 모자랐고 결국 옛친구의 남편이 진행하는 프로에 나가 동정에 호소하게 된 아름이네 가족.
머뭇거리는 부모님을 대신해 자신이 먼저 출연의사를 밝히는 아름이가 대견스러우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아름이의 방송 출연 후 쏟아지는 뜨거운 관심과 달리 아름이는 병상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병원에 있으면서 받게 된 한 소녀의 메일에 아름이는 설레임을 느끼지만 사실 그게 시나리오작가 지망생이 자신의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거짓으로 소녀인 척 아름이와 접근했다는 것을 알고 나는 분노했지만, 아름이는 침착했다.
이런 설레임이 자신에게 오는 것 조차가 가당치도 않은 것이었다는 것인 듯, 말이다.
마음에는 생채기가 나 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텐데도 아름이는 결국 웃어넘겼다. 늘 그랬던 것 처럼.
아직 어리디 어린 열일곱 소년은 너무 빨리 늙어가는 자신의 겉모습처럼 그렇게 원치 않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네가 뭘 해야 좋을지 나도 모르지만, 네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좀 알지."
"그게 뭔데요?"
"미안해하지 않는 거야."
"왜요?"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네."
"흔치 않은 일이니까…"
"……."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
"그러니까 너는,"
"네, 아빠."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
"그리고 마음이 아플 땐 반드시 아이처럼 울어라."
- 아빠인 대수와 아들인 아름이의 대화에서 -
"미라야, 자?"
"아니."
"아름이 말이야."
"응."
"인간이라면 마땅히 할 줄 안다고 생각한 거, 그런 걸 하나도 못하는 게 완전 신기하지 않니?"
어머니는 졸음에 겨운 말투로 성심것 대꾸했다.
"응."
"그런데 그걸 하게 만들었다는 거 아니야, 우리 엄마 아빠가."
.
.
"미라야, 자?"
"아니."
"아름이 말이야."
"응."
"우리 보며 입술 오물거릴 때 되게 할말 많아 보이지 않니?"
"……."
"그리고 왜 자면서 혼자 웃을까? 애기들도 꿈꾸나?"
- 아름이가 태어난 후 아빠가 된 대수가 한껏 들떠서 아내 미라에게 한 말들
"일부러 숨긴 거는 아니야."
"응. 알아요. 그러니까 엄마, 언젠가 이 아이가 태어나면 제 머리에 형 손바닥이 한번 올라온 적이 있었다고 말해주세요."
왜 지금이냐고, 조금만 참다 갖지 그러셨느냐고,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오래 전, 아무도 모르게 원망하고 서운해했던 기억도 굳이 헤집어내지 않았다.
이제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하나도 중요할 리 없었다.
어머니는 대답 대신 내 손을 꼭 잡았다. 나는 잠에 취한 사람처럼 느리고 아둔하게 말했다.
"아빠."
"응?"
"그리고 엄마."
"그래."
그러곤 남아 있는 힘을 가까스로 짜내 말했다.
"보고 싶을 거예요."
- 아름이의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