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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Nov 12. 2019

머저리 클럽

최인호 作






chapter 1 (p.72)            

머저리 클럽.
그것은 참으로 멋진 이름이었다. 통쾌하고도 바보스럽고, 어딘지 유머러스한 이름이었다.

   동순, 영민, 철수, 문수, 동혁, 영구 이 여섯 악동들의 무리에 명칭을 붙인 날 


chapter 2 (p.101)

연가
한 소년의 마음속을 휘젓고 간 소녀가 있었다.
화지(畵紙) 위에 낙서하듯 상처만 내놓은 소녀였다.
소년은 언제부터인가, 새벽종이 울리는 아침이면
두 손 모아 무릎 꿇고 기도하는 버릇이 들었다.
주님의 화안한 은총이 샘에 물고이듯 그녀의 가슴속에 가득하길 빌었다.
소녀는 모른다. 왜 이렇게 어두운 밤인데도
짙은 어둠 속에서 바람이 불고 그 바람 속에서 그녀를 부르는
가냘픈 소리가 잠을 못 이루게 하는 것인가를…….

   첫 사랑을 하게 된 동순이가 소림을 생각하면서 쓴 첫 시인데,

사랑에 빠진 소년의 애타는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고

그 나이대에 느낄 수 있는 순수한 마음이 나타나 있어서 굉장히 감명깊게 읽었다.



chapter 3 (p.364-365)

"자신을 얻었다. 대한민국 땅덩어리가 좁기는 하지만 돌아다니면서 많은 풍속과 인습을 보고 배웠다. 그리고 자신을 얻었다. '하면 된다' 라는 확신을 얻었다. 그 동안 속을 썩인 것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날 아침 벌떡 일어나 나를 구속하는 것과 모두 헤어져 먼 곳으로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때 이번만큼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떠나고 싶었다. 나는 바다와 하늘, 숱한 나무와 초가지붕을 보았다. 배도 타봤고, 도움도 많이 받았다. 우리가 싫어하는 보리밥이 꿀맛인 것을 알았다. 우리가 요따위 고생쯤으로 고민하는 것은 정말 한갓 검부스러기만큼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문수를 못 본 지 20여일이 채 못되었는데도 문수에게서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이상한 기상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의 말투는 옛날과 같이 익살스럽고 우스꽝스러웠지만 그의 태도엔 나를 이끄는 위압감이 있었다. 나는 이상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컸다. 이상하게도 커 버렸다. 마치 어른처럼 문수는 의젓해졌다, 하고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문수가 학력고사를 앞두고 심한 스트레스와 자신을 옭아매는 것에 벗어나 일탈을 했고 그로인해 그의 클럽 친구들과 가족들은 그가 행방불명되었다고 온갖 걱정을 다 했었다.하지만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다 결국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문수는 가족과 친구의 걱정과 달리 너무 많이 성장하고 돌아왔다. 돌아와서 문수가 자신의 친구 동순에게 뱉은 말이 참 대견했다. 그 시절이든 지금이든 고3은 참 서글프다. 문수를 보고 그 시절엔 난 어땠었나, 하고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chapter 4 (p.433-434)

시대는 늘 움직이고 있다. 너희들이 배워온 지식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문제는 이제부터이다. 그 지식이 사회와 조국에 부딪쳤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것이 진짜 교육이요, 지식이다. 이 세상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그 자리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요, 둘째는 그 자리에 있으나마나 한 사람이요, 셋째는 그 자리에 없어야 될 사람들이다. 너희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어주길 바란다. 우리 학교 공부는 바로 그러한 너희들을 만들어주기 위한 초보적인 과정에 불과하다. 너희들의 시대엔 부정하지 말고, 겸손하고, 조국을 사랑하고, 강한 자에 강하고, 약한 자에 약하며,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을 도우며, 부지런한 국민이 되어주길 바란다.

   졸업식 때 담임선생님이 제자들에게 건넨 마지막 말씀.



chapter 5 (p.438-439)

우리는 얼싸안고 우리의 피가 우리의 가슴으로 수혈되듯 통하고,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우리들의 시대를 같이 헤엄쳐 나갈, 깊은 신의와 우정 속에 맺어진 머저리 동지임을 재확인했다. 누구의 제안 없이도 우리는 죽 둘러섰다. 운동선수처럼 스크럼을 짰다.

"머저리 만세!"

우리는 모두 합창했다.

   졸업식 때 고등학교 시절의 머저리 클럽 여섯 악동들의 마지막 모습



chapter 6

그때 우리는 늘 조금은 화가 나 있었어. 때로는 누구라도 제발 시비를 걸어주길 바라며 퉤퉤 침을 뱉으면서 세상을 향해 눈을 부라렸고, 우리를 향한 어른들의 기대를 무너뜨리는 것에 통쾌함을 느끼기도 했지. 공부 따위, 장래희망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멋대로 행동할 때면 내 자신이 참 멋있다고 느끼기도 했어.

그런데 왜 그랬을까? 아무도 없는 방에 불을 꺼두고 비 내리는 창밖을 보노라면 괜스레 눈물이 났어. 친구들과 떼를 지어 다닐 때면 여학생들에게 야유를 보내고 껄렁하게 굴면서도, 등굣길 버스 안에서 훔쳐보고는 하던 여학생과 길에서 단둘이 딱 마주치면 숨이 멎을 것만 같았지. 그리고 참 외롭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 지금 내가 지나는 이 시간을 아버지도, 선생님도 지나왔다는 것을. 그리고 한때는 누구나 순수했다는 것을. 우리 인생에 깊이 각인된 그 시절의 순수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표지의 마지막 어귀들





내가 인상깊게 읽은 구절 이외에도 머저리클럽 이란 소설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이들과 합병을 했던 Y여고 샛별클럽 여학생 얘기들, 이 두 클럽 멤버들 간의 사랑, 그리고 크리스마스 고아원 봉사, 산행, 소소하게 얽혀있는 이야기기가 군더더기 없이 잘 짜여있다.



이 책은 성장소설답게 참으로 따뜻하다. 그들의 방황, 고민들을 전혀 질책하지 않고 이해한다는 듯 품어주는 작가의 문체가 난 참으로 좋았다. 고3 때를 돌이켜 보면 나 역시도 방황 아닌 방황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그땐 뭐 그렇게 힘들었는지, 온갖 걱정과 고민을 겹겹히 껴안고 버겁게도 살았던 것 같다. 그땐 내가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아픈 줄 알았다.



그 당시에 난 자율학습 시간에 친구들과 몰래 밖으로 나온 적이 있다. 학교에서 조금 걸어내려가면 바로 중학교가 있는데 친구들과 중학교 벤치에 앉아 밤 하늘을 보며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쉬기도 하고 울기도 했었다. 웃고 울었던 그 시절에 나는 돌이켜보면 참 찬란했었던 것 같다. 그때처럼 진실하게 내 미래를 고민해본적도 없었으니까.



그 시절에 난 내 인생에 대학이 전부였고 대학이 나의 인생을 판가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대학을 오고 보니 그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인생은 그렇게 쉽게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아마 이 책의 주인공들도 이젠 다 어른이 되어서 내가 겪은 일들을 이미 다 겪었을 지도 모른다. 



학력고사를 앞두고  방황하였던 책 속의 학생들 모두 그 때 자신을 그토록 애태우고 눈 앞이 아득하게 만들던 입시가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대학이 인생의 척도를 판가름 나게 하는 잣대가 될만큼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 다는 것을 이미 모두 다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왠지 이 소설의 제목이 뜻하는 머저리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닐까. 이 세상 어디에는 다 완벽한 사람이란 눈씻고 찾아보기 힘들고 각자 한 가지 모자라는 점이나 혹은 어리석음을 지닌 머저리같은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 그래서 이 머저리클럽은 왠지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해서 누구든 이 곳에 낄 수 있는 것 같단 느낌이 들어 위화감이 전혀 없다.



마지막으로 머저리클럽 악동들을 위해, 그리고 지나간 나의 세월들에 박수를 쳐주고 앞으로 모진 세월을 나아갈 나를 위해. 나도 클럽 학생들 틈에 끼여 스크럼을 짜고 같이 합창하고 싶다. 



"머저리, 만세!"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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