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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Nov 19. 2019

나를 이야기하다

09. 떠나가는 너 바라보는 나 





09. 떠나가는 너 바라보는 나




오랜만에 C의 블로그에 들어가 봤어.
글 쓴 걸 보니까 좀 달라진 것 같았어.
부쩍 성숙해진 느낌?




B와의 카톡에서 오래전 나와 인연을 끝낸 C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고등학교 등·하교 길을 함께 하며 여러 얘기를 나눴던 C. 내 기억 속 C는 참 어여뻤다. 하지만 좀 묘했다. 새하얗고 예쁘장한 얼굴이 눈에 띄었지만, 늘 갈색머리를 헝클어트린 채 돌아다녔다. 그리고 가끔씩 사람을 빤히 바라보는 그 눈동자가 텅 비어 보여서 오묘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 친구 앞에 타이틀을 붙인다면, 감정 없는 인형. 딱 그 말이 어울리는 친구였다.



C와 얘기를 나눌 때 나는 "미래가 걱정돼." "난 앞으로 뭘 할까." "공부가 어려워." 등등의 얘기를 했다면 C는 아주 단순했다. 걱정하는 나완 달리 초지일관 "어떻게 되겠지."가 끝. 그리고 C의 얘기의 90%는 누군가로 인해 당시 느꼈던 감정들이 끝이었다. 그것도 "싫다. 좋다. 기분 좋다. 기분 나쁘다." 라며 복잡하지 않고 간단한 단어만 쓰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깊은 생각은 하기 싫은 건지 아님 안 드는 건지 나와 C 사이엔 심오한 얘기 따윈 없었다.



풋내기 시절 나눴던 얘기의 끈은 어느덧 20대 초반까지 이어졌었지만 여전히 피상적인 대화일 뿐이었다. 멀어진 시점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내가 취업하고 C는 어느 회사 인턴생활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



나는 그녀의 일상이 궁금해 C의 인턴생활에 대해 물었었는데 그때 취업에 대해 남모를 스트레스를 받았던 건지 그녀는 내게 버럭 화를 냈다. 너는 나에 대해 그런 것만 물어대냐며 쏘아붙히던 C. 멀어진 시간만큼 희미해진 기억 속 C는 그 말을 끝으로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나의 사과도 'ㅇㅇ'으로 받아버리고 그 후의 내 말도 쿨하게 읽씹 하던 그녀.



나는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내가 너무 예민할 시기에 이 친구 맘을 더 힘들게 했구나 - 라며 미안해지는 것도 한순간, 그 친구의 반응에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하고 나 역시도 화가 났다. 그 후로 우리는 멀어졌다. 내가 기억하는 건 이 정도인데, C의 기억 속 나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때 당시엔 C랑 이어진 인연이 몇 년인데 고작 이런 말로 사람을 끊어내나 싶어 좀 억울하기도 하고 C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미안하다고 내가 사과해도 이 인연이 다시 돌이켜질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C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에게 C의 근황을 알려주던 B를 봐도 그랬다. B와 C는 나보다 더 친한 인연이었는데 한 순간에 멀어졌다.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끝은 나와 똑같았다. B의 말에 대한 C의 답변,



'ㅇㅇ'



참 명쾌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C가 인연을 끊어내는 방식이 참 신기하고 웃겼다. 몇 년의 시간을 'ㅇㅇ'으로 끝내다니. 어쩌면 세상에 사람은 많으니까, 나를 거슬리게 할 사람이면 그냥 한 번에 끊어내자. 다른 사람은 또 사귀면 되니까. 이런 마인드인가?



근데 그 생각도 거기서 끝이었다. 어차피 나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니 나도 깊게 생각하지 말자 하고 보낸 시간이었다. 근데 며칠 전 B를 통해 C의 이름을 듣고, 나도 C의 블로그를 들어가 보았다. C가 달라지길 바랬던 사람으로서 C의 글이 궁금했다.



B가 말한 글들은 다 삭제되어 없었지만 단순한 일상을 서술해놓은 글에서도 C는 변해 보였다. 짤막한 글귀들이었지만 감정에 대해 다양한 표현을 썼고, 글만 보면 그녀가 듬쑥해졌다고 느껴질 수 있었다.



C로 인해서 나와 멀어진 인연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름 적을 만들지 말자, 라는 타이틀을 목에 걸고 지내왔는데 내게도 돌아선 인연들이 있었고 그런 인연들에 지나치게 연연하던 시간이 있었다. 요즘 여러 SNS를 통해 누군가의 근황이 궁금하면 이름이나 그 사람이 썼던 ID를 검색해도 나온다. 아니면, 찾지 않아도 우연히 만나게 되기도 한다. 



C와 다른 케이스로 멀어진 친구, D도 있다. D와 멀어졌는데 주변 친구와 다 멀어진 기억도 있다. 왕따? 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통해서 그 친구들은 친해졌지만 '나'는 그들과 멀어졌고, '내'가 그들과 멀어짐으로써 그들의 결속력은 강해졌었다. 하지만 그 후, 그 친구들은 다시 뿔뿔이 멀어졌다. 인연이란 게 참 씁쓸하고 웃기다.



시간도 많이 흘렀고, 멀어질 시점의 기억들은 내겐 힘든 기억이라 애써 잊어버리려고 노력해서인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D는 솔메이트라고 느낄 정도로 같은 감성을 지녔는데 멀어져서 안타깝고 슬펐던 내 마음만 기억난다. 그때는 전화기를 붙잡고 전화를 걸어볼까, 시간이 지나면 괜찮지 않을까, 내가 잘못하든 안 하든 미안하다 말해볼까. 했었다.



D의 주변을 빙빙 맴돌던 미련했던 그때의 내가 안쓰러우면서도 왜 그렇게 연연했지 싶으면서도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누군가와 인연을 끝내는 걸 몰랐기에, 서툴렀기에, 그만큼 나는 더 아팠다. 하지만 그 아픔으로 깨달았다.



세상에서 나를 이유 없이 싫어하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멀어지는 사람도 있고.

아득해져서 희미해진 어린날의 기억들과 맘의 상처가 차곡차곡 쌓여 알게 된 사실이다.



한 책에서 봤는데, 유대교 교리 중에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중 한 사람은 반드시 당신은 비판한다. 다만 열 명 중 두 사람은 당신과 서로가 모든 것을 받아주는 더 없는 벗이 된다. 남은 일곱 명은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이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삶을 살면서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 없고 모든 이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 다만 열 명 중 두 사람처럼 인생에 나와 꼭 맞고 오랜 인연을 가져갈 몇몇의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 좋은 사람으로 나쁜 기억이 덮어지고, 잊혀가고 희미해져 간다.



어쩌면 인연에 미련두지 않았던 C가 현명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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