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부터 인스타에 간간히 이 영화의 캡쳐본이 떠다녔다.
몇 컷의 사진이었지만, 쓸쓸한 흑백색감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2007년, 기차안을 배경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기차안에서 역무원이 표 검사를 하는데
기차표를 못 찾은 샤오샤오(여자주인공)는
다시 기차표를 사야될 상황에 놓인다.
그 때 젠칭(남자주인공)이 "이거 그 쪽 표 아니에요?"라며
곤란한 상황에 빠진 샤오샤오를 도와주고,
그 때 둘은 서로가 같은 동향임을 알고 친구가 된다.
같이 고향에 내려온 둘은,
함께 새해를 맞이하며 소원을 빈다.
이 젊은 청춘남녀의 소망은 꿈의 도시, '베이징'에서 성공하는 것.
특히나 샤오샤오는 지긋지긋한 가난과 지금의 현실에서 벗어나 베이징서의 화려한 삶을 꿈꾸고 있다.
베이징에서 정착하고 편하게 살기 위한 방법으로
샤오샤오는 '결혼'을 선택한다.
그래서인지 샤오샤오가 만나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다,
못 생기고 키도 작지만 오로지 능력좋고 베이징에서 성공한 남자들이다.
남자친구가 생겼다며 소개할 때 마다
젠칭은 묻는다.
하늘에 있는 별도 따주고, 바다에 있는 진주도 캐줄 수 있을만큼 널 사랑하냐고.
하지만 샤오샤오는 거기엔 대답없이 그저 웃으며
남자의 직업과 그가 가진 물질적인 조건들만 읊어놓을 뿐이었다.
하지만 연애도 맘대로 안되는지, 늘 실연당하는 쪽은 샤오샤오였고,
심지어 마지막으로 만난 남자는 유부남이었다.
상처받은 샤오샤오에게 이별의 이유도 묻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그녀 옆을 지켜주는 젠칭.
사실 젠칭은 첫 만남부터 샤오샤오에게 ‘우정’이 아닌 ‘사랑’의 감정이었지만,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우정’으로써 샤오샤오 곁을 맴돈다.
결국 젠칭의 마음을 알게 된 샤오샤오는
매번 상처받고 힘들던 연애를 끝내고
드디어 자신의 곁에서 묵묵히 자신을 지켜주던 젠칭에게 맘을 연다.
비록 젠칭은 돈도 없고 베이징에서 성공한 남자도 아니지만
그와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한 연애를 시작한다.
지금 가진 게 없어도
함께할 미래를 위해 서로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버는 둘.
(택시 타는 돈을 아끼면 두 끼 먹을 돈이 생긴다며
추운 날 버스를 기다리던 둘의 모습과,
힘이 들고 지칠 때 마다 서로를 생각하며 버티는 모습이
내 맘을 뭉클하게 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둘의 사랑도 점차 끝이 보였다.
돈이 없어도 행복했지만,
가진 게 없어도 서로만 있으면 될 것 같았지만,
아직 젊은 이들에게 가난은 큰 벽과도 같았다.
꿈만 먹고 살기엔 베이징의 삶은 너무나 고달팠으며
아무 빽도 없이 밑바닥 부터 일어서기엔
베이징에서 삶은 너무 팍팍했다.
현실에 벽에 부딪힌 둘 중, 먼저 무너져버린 쪽은 젠칭이었고
그런 젠칭을 샤오샤오는 곁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샤오샤오의 기다림에도 젠칭은 변하지 않았고,
점차 지쳐가던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며 버텨왔지만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고 있진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같이 꼭 붙어 걷던 길에서도
멀찍이 떨어져서 걷게 되고,
둘이 있을 때 대화도 점점 줄면서
심적인 거리도 멀어지게 된다.
결국엔 이별한 둘.
샤오샤오가 떠났지만,
떠나는 샤오샤오를 바라보기만 할 뿐 젠칭은 잡지 못한다.
이 때 둘의 감정이 어땠을까.
샤오샤오가 떠난 이유는
자신과 대화하기 거부하고,
노력해도 가까워지지 않는 젠칭에게 지친 게 큰 이유긴 했지만
자꾸만 변해버리는 젠칭에게 '힘'이 되주기 보단
오히려 자기의 존재가 버거워지는 것 같았고,
젠칭은 샤오샤오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자신이 싫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떠났고
그는 그런 그녀를 잡지 못했던 게 아닐까.
샤오샤오가 떠나고 난 뒤,
젠칭은 샤오샤오와 사귈 때 부터 제작했던 게임을 완성시켜 게임 개발자로 성공한다.
성공 후 집도 사고 부자가 된 젠칭.
그 후 샤오샤오가 원하던 '베이지에서 성공한 남자'가 되어 그녀를 찾아갔지만,
돌아오는 그녀의 대답은 차갑기만 하다.
이 때 나는 젠칭이 참 바보같다고 생각했다.
샤오샤오와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샤오샤오의 마음을 더 헤아려서 말했어야 했는데
네가 원하는대로 했잖아, 부자가 됐잖아. 뭐가 문제야 라는 듯이
힐난하는 태도가 샤오샤오 입장에선 얼마나 실망스러웠을까.
샤오샤오가 젠칭을 사랑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녀가 베이징에서 성공하고 부자인 남자들만 만나다가
젠칭에게 마음을 준 이유는, 자신에게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없었던 그녀만을 향한 '사랑'과'진심'
오랜 시간 함께했지만 아직도 자신을 모르는 젠칭에 대한 실망감과 더불어
어쩌면 샤오샤오는 부자가 된 젠칭보다
"널 위해 밤하늘의 별도 따주고 바다에서 진주도 캐줄게."
라고 말했던,
자신만을 순수하게 사랑했던,
젠칭을 더 그리워했고 더 원했던 것 같다.
더 이상 그런 젠칭을 만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샤오샤오는 또 한번 젠칭을 떠나고
결국 둘은 또 다시 이별한다.
.
.
영화는 과거의 삶과, 현재의 삶을 왔다갔다하며 보여준다.
왜 현재의 삶이 흑백일까 -
그건 젠칭이 게임 초고를 작성했을 때,
샤오샤오에게 처음 보여주는데
그때 샤오샤오가 젠칭에게 이렇게 물었다.
"만약에 이안이 켈리를 못 찾으면 어떻게 돼?"
"그럼 세상이 온통 무채색이 되지."
현재에는 젠칭이 샤오샤오를 되찾지 못했기에,
서로가 서로를 놓쳐버렸기에 흑백이었다.
서로 함께했던 시간이 과거,
서로가 곁에 없는 시간이 현재.
그래서인지 과거는 선명하게 칼라로 보여주고,
현재는 흑백으로 보여준다.
헤어지고 우연히 재회한 둘은
처음엔 서로 함께했던 기억들을 되짚으며 그저 즐거워한다.
하지만 곧 물밀듯 밀려오는 좋은 기억에 아쉬움이 덧대어져
또 다른 가능성에 질문을 던진다.
만약, 그 당시 네가 내 곁에서 조금만 더 버텼더라면,
안 떠났다면,
내가 널 잡았다면,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은 다르지 않았을까?
하지만 어떻게 되었든 결국엔 지금처럼 되었을거란 그녀의 말이 참 아프게 들렸다.
타이밍과 인연이 이래서 참 중요한 것 같다.
I MISS YOU
여자의 말에 남자가 말한다.
"나도 네가 그리웠어."
여자는 울면서 대답한다.
"이 말은, 내가 널 놓쳤다는 뜻이야."
이 장면에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둘의 연기와 감정선도 좋았지만,
특히 여배우의 연기가 너무 좋았다.
웃을 때 아이처럼 해사한 미소를 가졌지만
울 때 세상 모든 슬픔을 다 끌어안은 듯한
저 표정이 마음을 아리게 만들었다.
내가 가진 게 부족하고 아무것도 없어도 이 사람 하나만 있으면 될 것 같았던 날,
아무 조건없이 사랑할 수 있었던 날,
라면 하나를 나눠먹고, 돈이 없어 배를 곯아도 사랑 하나에 울고 웃었던 젊은 날,
단칸방에 살면서도 함께할 미래를 꿈꾸며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지지하던 그 시절을
슬프고도 아름답게 보여준 영화.
이 영화를 보고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샤오샤오의 말처럼 어떻게 되었든 결말은 바뀌지 않았을거란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단 말처럼,
그들은 너무 사랑했지만 너무 아팠고,
서로 노력했지만 너무 힘들었다.
이별은 아프지만,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절을 함께 했던 사람으로써
서로의 기억 한켠에 머무는 것이 더 아름답지 않을까.
사람과의 인연은,
본인이 좋아서 노력하는데도
자꾸 힘들다고 느껴지면
인연이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될 인연은 그렇게 힘들게
몸부림치지 않아도 이루어져요.
자신을 너무나 힘들게 하는 인연이라면
그냥 놓아주세요.
-혜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