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 기억 청소부, 델키

언제부턴가 자주 깜빡하는 일이 생기곤 하나요?

by 여울LEE


머릿속에 입력되는
저장용 기억들을
지우는 게

제 일인 걸요?
/


[ © 여울LEE / 기억도, 전등도 깜빡깜빡 ]



직장 생활만 10년째인 제인은,

요즘 들어 한숨이 차곡차곡 쌓인다고 했다.


“업무에 쓰일 중요한 자료들은

늘 완벽하게 미리 준비하거든?

그런데, 항상 하나씩 뭔가가 빠지곤 해.


나 정말 이상하지. 마치 머릿속에

수명이 끝나가는 전등이 깜빡거리며

겨우 달려있는 느낌이 들어. “


제인의 말 끝에 따라 나오는

눅눅한 좌절감은, 어느 누가 보더라도

콧등을 찡그리게 할 정도였다.


말을 마친 제인은, 자신의 책상에

놓여 있는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한 동안 턱을 괸 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 © 여울LEE / 델키를 만나다! ]



그날 밤.

퇴근 후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 제인.


“이제 내 공간이니까. 조금은 편하게

쉬어도 되겠지? “라고 말하며

침대 위 이불속으로 깊게 다이빙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불 위에서 쓱- 쓱-

뭔가에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한 소리에 잔뜩 겁먹은 제인의 목에선

마른침이 꿀꺽, 꿀꺽 삼켜지기 바빴다.


‘뭐야? 이 집엔 나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어야 하는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이불을 살짝

걷어보니.


“으악! 너... 넌 누구야!

아니, 정체가 뭐야?! “




[ © 여울LEE / 안녕! 기억 청소부, 델키 ]



분홍색의 작고 네모난 꼬마가

놀란 제인의 곁으로 콩콩콩 뛰어와

단 숨에 손바닥 안을 차지해 버렸다.


제인은 두 눈을 힘껏 비비고, 여러 차례

감고 뜨기를 반복해 봤지만. 눈앞에 있는

작은 꼬마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내 꼬마의 그 작은 입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헤헤. 안녕? 반가워요! 오늘에서야

드디어 제인을 직접 만나네요.

전 지금 굉장히 즐거운 기분이 든답니다! “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입꼬리가

귀엽게 올라가는 꼬마를 보며,

제인도 덩달아 긴장감이 풀려갔다.


“넌 이름이 뭐야?”

라고 제인이 물으니


분홍색의 네모난 꼬마가 대답했다.


“난 델키! 기억 청소부죠.”




[ © 여울LEE / 우린 언제나 함께할 거야 ]



델키는 자신이 하는 일과 역할에 대해,

제인을 바라보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는 제인의 머릿속에 지내고 있어요.

저장용 기억들이 하나씩 들어올 때면,

무거워 보이는 기억들은 지워버리는 편이죠.

그게 제가 하는 일이니까요. “


델키의 말을 들은 제인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대답했다.


“그럼, 여태까지 내가 중요하게 여겼던

기억들을 지웠던 게 바로 델키였어?! “


델키는 해맑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인은 델키에게 대답했다.


“대체 왜, 내가 중요하게 기억하려고

넣어 둔 것을 몽땅 지워버린 거야?

내가 얼마나 난감했는 줄 아니?! “


델키는 제인의 날이 선 말투에

조심히 말을 이어갔다.


“저는, 제인에게 끊임없이 생겨나는

무거운 저장용 기억들을 지워주고 싶었어요.

그러면 제인의 스트레스도 줄어들고,

행복해질 것 같았거든요. “


제인은 델키의 말을 듣곤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꾸역꾸역, 억지스럽게도 일상에서

버텨보려 집어넣었던 ‘책임적 기억’들을

델키는 모조리 알아채고 있었던 것이었다.


제인은 잠시 눈물이 핑 돌았지만,

작고 작은 델키의 두 손을 잡고서 대답했다.



날 위해 걱정해 줘서 고마워.

델키가 무거운 기억들을 지워준 덕분에

머릿속이 깨끗해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었어.


그런데 델키.

생각보다 난 훨씬 강해.

지금까지 성장하며 쌓아온 내공들이

날 단단하게 만들어줬으니까 말이야.


그래도 혹시나 언제고

내가 너무 버거워 보이거든.


그때, 또 지금처럼 도와줄래? “


제인과 델키는 서로 마주 보며

따뜻한 웃음을 전했다.



창가 너머, 밤하늘엔

이들을 더욱 아늑하게 비춰주는

영롱한 달이 환히 빛나고 있었다.




[ © 여울LEE / 봄의 맑음, 찰칵! ]



/ 이번화에서는 자주 잊어버리거나, 깜빡하는

일상을 보내며. 상상해 본 가상 존재 ‘델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봤습니다.


키보드에 보면 “Delete“ 자판이 있는데,

딜리트를 줄여 ‘딜트’라고 이름을 지을까

하다가. 이름으로 사용하기엔 어색해서

살짝 바꿔봤더니 귀여운 이미지와 딱 맞는

우리의 청소부 델트가 탄생됐답니다.


델트는 지우개지만, 지우다는 의미보단

삭제에 좀 더 가깝게 설정한 성격의

캐릭터기 때문에 기본 바탕은 Delete에

두고 작업했던 것 같습니다:)


**

저는 요즘 바쁜 일상을 소화해 내느라

중요한 것들을 종종 잊어버리곤 합니다.

분명 생각해 둔 건데, 기억에서 지워져 버리는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제 머리 안에. 기억을 지워주는 지우개가

들어있진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 게

이번화의 주인공인 델키로 만들어졌답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 같나요?


혹시, 자주 무언갈 까먹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나요? 그렇다면!


델키가 숨어있을 지도! ʕ¨̮ʔ!!! ~*




다음화에서 또 만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ദ്ദി(⸝⸝ʚ̴̶̷̆ ᴗ ʚ̴̶̷̆⸝⸝)!!






[ 오늘의 삽화 ] 기억 청소부, 델키

© 여울LEE



+ 그림 제작 과정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