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자주 깜빡하는 일이 생기곤 하나요?
머릿속에 입력되는
저장용 기억들을
지우는 게
제 일인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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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울LEE / 기억도, 전등도 깜빡깜빡 ]
직장 생활만 10년째인 제인은,
요즘 들어 한숨이 차곡차곡 쌓인다고 했다.
“업무에 쓰일 중요한 자료들은
늘 완벽하게 미리 준비하거든?
그런데, 항상 하나씩 뭔가가 빠지곤 해.
나 정말 이상하지. 마치 머릿속에
수명이 끝나가는 전등이 깜빡거리며
겨우 달려있는 느낌이 들어. “
제인의 말 끝에 따라 나오는
눅눅한 좌절감은, 어느 누가 보더라도
콧등을 찡그리게 할 정도였다.
말을 마친 제인은, 자신의 책상에
놓여 있는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한 동안 턱을 괸 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 © 여울LEE / 델키를 만나다! ]
그날 밤.
퇴근 후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 제인.
“이제 내 공간이니까. 조금은 편하게
쉬어도 되겠지? “라고 말하며
침대 위 이불속으로 깊게 다이빙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불 위에서 쓱- 쓱-
뭔가에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한 소리에 잔뜩 겁먹은 제인의 목에선
마른침이 꿀꺽, 꿀꺽 삼켜지기 바빴다.
‘뭐야? 이 집엔 나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어야 하는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이불을 살짝
걷어보니.
“으악! 너... 넌 누구야!
아니, 정체가 뭐야?! “
[ © 여울LEE / 안녕! 기억 청소부, 델키 ]
분홍색의 작고 네모난 꼬마가
놀란 제인의 곁으로 콩콩콩 뛰어와
단 숨에 손바닥 안을 차지해 버렸다.
제인은 두 눈을 힘껏 비비고, 여러 차례
감고 뜨기를 반복해 봤지만. 눈앞에 있는
작은 꼬마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내 꼬마의 그 작은 입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헤헤. 안녕? 반가워요! 오늘에서야
드디어 제인을 직접 만나네요.
전 지금 굉장히 즐거운 기분이 든답니다! “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입꼬리가
귀엽게 올라가는 꼬마를 보며,
제인도 덩달아 긴장감이 풀려갔다.
“넌 이름이 뭐야?”
라고 제인이 물으니
분홍색의 네모난 꼬마가 대답했다.
“난 델키! 기억 청소부죠.”
[ © 여울LEE / 우린 언제나 함께할 거야 ]
델키는 자신이 하는 일과 역할에 대해,
제인을 바라보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는 제인의 머릿속에 지내고 있어요.
저장용 기억들이 하나씩 들어올 때면,
무거워 보이는 기억들은 지워버리는 편이죠.
그게 제가 하는 일이니까요. “
델키의 말을 들은 제인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대답했다.
“그럼, 여태까지 내가 중요하게 여겼던
기억들을 지웠던 게 바로 델키였어?! “
델키는 해맑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인은 델키에게 대답했다.
“대체 왜, 내가 중요하게 기억하려고
넣어 둔 것을 몽땅 지워버린 거야?
내가 얼마나 난감했는 줄 아니?! “
델키는 제인의 날이 선 말투에
조심히 말을 이어갔다.
“저는, 제인에게 끊임없이 생겨나는
무거운 저장용 기억들을 지워주고 싶었어요.
그러면 제인의 스트레스도 줄어들고,
행복해질 것 같았거든요. “
제인은 델키의 말을 듣곤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꾸역꾸역, 억지스럽게도 일상에서
버텨보려 집어넣었던 ‘책임적 기억’들을
델키는 모조리 알아채고 있었던 것이었다.
제인은 잠시 눈물이 핑 돌았지만,
작고 작은 델키의 두 손을 잡고서 대답했다.
“날 위해 걱정해 줘서 고마워.
델키가 무거운 기억들을 지워준 덕분에
머릿속이 깨끗해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었어.
그런데 델키.
생각보다 난 훨씬 강해.
지금까지 성장하며 쌓아온 내공들이
날 단단하게 만들어줬으니까 말이야.
그래도 혹시나 언제고
내가 너무 버거워 보이거든.
그때, 또 지금처럼 도와줄래? “
제인과 델키는 서로 마주 보며
따뜻한 웃음을 전했다.
창가 너머, 밤하늘엔
이들을 더욱 아늑하게 비춰주는
영롱한 달이 환히 빛나고 있었다.
[ © 여울LEE / 봄의 맑음, 찰칵! ]
/ 이번화에서는 자주 잊어버리거나, 깜빡하는
일상을 보내며. 상상해 본 가상 존재 ‘델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봤습니다.
키보드에 보면 “Delete“ 자판이 있는데,
딜리트를 줄여 ‘딜트’라고 이름을 지을까
하다가. 이름으로 사용하기엔 어색해서
살짝 바꿔봤더니 귀여운 이미지와 딱 맞는
우리의 청소부 델트가 탄생됐답니다.
델트는 지우개지만, 지우다는 의미보단
삭제에 좀 더 가깝게 설정한 성격의
캐릭터기 때문에 기본 바탕은 Delete에
두고 작업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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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즘 바쁜 일상을 소화해 내느라
중요한 것들을 종종 잊어버리곤 합니다.
분명 생각해 둔 건데, 기억에서 지워져 버리는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제 머리 안에. 기억을 지워주는 지우개가
들어있진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 게
이번화의 주인공인 델키로 만들어졌답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 같나요?
혹시, 자주 무언갈 까먹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나요? 그렇다면!
델키가 숨어있을 지도! ʕ¨̮ʔ!!! ~*
다음화에서 또 만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ദ്ദി(⸝⸝ʚ̴̶̷̆ ᴗ ʚ̴̶̷̆⸝⸝)!!
[ 오늘의 삽화 ] 기억 청소부, 델키
© 여울LEE
+ 그림 제작 과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