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찌찌와 파래의 삑삑거리는 소리에 일어난다. 피곤함에 몸이 흔들렸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고 그대로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간다. 불을 켜면 찌찌와 파래가 거실로 나온다. 항상 파래가 먼저 아침똥을 싼다.
“우리 파래 코 잘 자고 일어나서 똥 쌌어? 잘했어 잘했어.”
파래의 눈을 마주보고 별탈없이 아침똥을 싼 파래를 칭찬하고 찌찌에게로 간다. 두 앵무새들이 아침똥을 싸는 장소가 서로 다르다. 그 이유는 모른다. 스스로 정한 곳이기 때문에.
찌찌는 파래에 비해 아침똥을 싸는 게 조금 힘겹다.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흔들거리기를 몇 번 반복한 후 똥을 싼다. 하지만 그렇다고 더 크게 인사해 주면 안 된다. 파래가 서운해한다.
“우리 찌찌 코 잘 자고 일어나서 똥 쌌어? 잘했어 잘했어.”
찌찌까지 칭찬해 주고 나서 아이들의 밥그릇과 물그릇을 들고 싱크대로 가서 설거지를 한다. 깨끗한 그릇에 아침 모이를 주고 물을 준다.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숨을 토하며 혼잣말을 뱉는다.
아빠의 장례를 치르고 이틀은 몸살과 두통에 시달렸고 이틀은 졸음에 취했다. 5일째 되는 오늘에서야 몸도 정신도 조금은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된 것 같다. 찌찌와 파래가 모이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커피를 몇 모금 더 마시고 휴대폰을 열어 사진을 본다. 하얀 국화꽃 속에 아빠의 영정사진이 놓여있다.
“아이고 아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슬픈 한숨만 내쉰다.
아빠는 6월부터 몸이 아프셨다고 했다. 그리고 8월 중순,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연세도 있으시고 만성이라 전이도 안 된다고 했다. 항암으로 꾸준히 약만 복용하면 된다고 했다. 아빠의 지인도 같은 병인데 그냥 꾸준히 약만 챙겨먹으면 된다더라 했다. 그래서 다행이다, 생각했다.
꿈을 꿨다. 찌찌가 눈은 뜨고 있는데 몸은 굳어있는 꿈이었다. 나는 우리 찌찌 죽으면 어떡하냐며 소리 질렀다. 그 꿈을 꾸고 나서 나는 행여 찌찌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까 조마조마하며 지냈다. 한순간도 찌찌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꿈을 꾸고 나흘 후, 아빠의 상태가 조금 안 좋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일주일 입원해서 체력을 올린 다음 항암은 통원으로 하면 되겠다고 했는데 체력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했다.
“주말에 내려갈게.”
그렇지만 주말이 되기도 전, 통화 후 이틀 후에 바로 위급하다는 연락이 왔다. 정신이 없었다. 뭘 챙길 여유도 없이 기차를 예매하고 내려갔다.
아빠는 병원 관련 다큐에서나 보던 환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몸은 앙상하게 뼈만 남아있고 링거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코에 줄을 이어 산소를 투입하고 있었다. 꾸준히 약만 먹으면 된다더니 며칠 새 이게 무슨 일이야... 정신없어 하는 내 손을 아빠가 먼저 잡아주셨다.
또다시 꿈을 꿨다. 이번에는 이불 속에서 파래가 죽었단다. 믿기지가 않아서 이불을 뒤져 파래를 찾았다. 꼬리깃이 빠진 채 파래가 굳어있었다. 나는 우리 파래가 죽었다며 엉엉 울었다. 꿈에서 깨어 깨달았다. 두 앵무새의 꿈은 아빠에 대한 꿈이었구나... 그리고 사흘 후, 아빠는 영원한 잠에 드셨다. 병명을 알고 3주 후,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고 1주 후에 아빠는 돌아가셨다. 그래도 다행이라 했다. 일주일 동안 자식들, 손주들, 서울 사는 친척들까지 다 보시고 좋은 말 나누시고 편안히 주무시듯 가셨으니 이것도 복이라 했다.
아빠가 입원해 계실 때, 병실 옆 휴게실에서 동갑내기 작은언니와 나란히 앉아 얘기를 나눴다.
“언니, 우리도 나중에 늙으면 저렇겠지?”
“그러겠죠.”
“한 30년 남았나...”
“30년도 안 남았을 수도 있어.”
“그치...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빠의 장례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작은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가씨, 우리 재밌게 살게.”
아빠의 죽음 후에 내가 살아야 할 ‘재밌게’ 사는 의미가 흔히 아는 가벼운 의미는 아니리라. 내가 부여한 무게감대로 재밌게 살기 위해 다시 기운을 내고 있다. 작품 투고를 위해 기존에 썼던 글들을 수정하고 스케치를 새롭게 시작했다.
수시로 아빠의 사진을 들여다본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내 마음에 아빠의 자리가 생기고 아빠를 그리는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이상하다. 모든 게 다 거짓말 같고, 겪었지만 겪지 않은 일처럼, 병실에 누워있는 아빠의 모습부터 영정사진까지 모든 게 다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