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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여유 Mar 06. 2023

우리의 눈이 두 개인 이유

확증편향에 대하여


나에게는 이름보다 별명이 편한 친구가 있다. 함께한 20년의 세월만큼 서로의 인생 흑역사까지도 자연스레 알고 있는 사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대화는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화제로 채워진다. 여느 날처럼 함께 들어간 카페에서 친구가 불쑥 핸드폰 뒷면을 내 눈앞에 내밀며 말했다.


"이것 봐!"          


고개를 들어 무심코 뒷면을 보니 친구의 딸아이 사진이 붙어 있었다. 친구의 딸이 벌써 이렇게 많이 컸구나 싶어 흐뭇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오, 귀엽다!" 

   

그런데 친구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그렇지? 이거 진짜 웃기지 않아?"


친구는 손가락으로 작은 스티커를 가리켰다. ‘돈을 아껴 쓰자’라고 적힌 스티커였다. 딸아이의 장난감에 붙어있던 스티커 문구가 재밌길래 자신의 핸드폰에 붙여놓았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다시 보니 신기하게도 아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스티커가 너무나도 한가운데에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같은 곳을 보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반응했던 우리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만약 친구가 그때 스티커를 가리키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녀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딸아이 사진이라고 지금까지도 확신했을 것이다.








왜 우리는 예민하게 반응하는 걸까     


생각해 보면 이런 일들이 왕왕 있었다.               

소소한 일상이나 우리와 거리가 먼 연예인 얘기,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추억, 인생에 대한 어설픈 철학을 나눌 때는 우린 항상 즐거웠다. 너무나도 잘 맞았다. 그리고 설령 나와 다른 의견일지라도 오히려 그 자체가 흥미로웠다.               



그런데 문제는 각자의 신념이 들어가는 주제를 나눌 때였다. 예를 들어 정치, 경제,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는 평소와 다르게 각자의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시공간에 살고 있으면서도 마치 서로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들처럼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친구는 나에게 객관적 레퍼런스를 보내라고 말했고 나 또한 그 말에 어이없어하면서도 내가 맞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다수의 레퍼런스 자료를 보내곤 했다. 하지만 그 자료는 이미 철옹성같이 쌓인 견고한 신념의 성에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확증편향은 인간이 논리나 사실 여부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선입견, 신념을 우선시하여 상황을 추론하고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보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는 영국의 인지심리학자 Peter Cathcart Wason의 연구에 의해 명명된 것으로, '인간은 논리적으로 추론한다'라고 주장하던 기존 학자들의 의견과 상충되는 개념이다. 즉, 어떠한 일에 대해 확증편향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며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신념을 중심에 둔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확증편향을 그대로 드러냈다. 각자가 가진 생각의 확신이 너무 커서 다른 사람의 의견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분명히 표면적으로 우리는 이성적이었으나 이미 우리의 눈은 서로를 다른 생각이 아닌, 틀린 생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확증편향이 생기는 이유     


왜 인간은 확증편향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신념이 가진 힘과 의미를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은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은 삶을 이끄는 중요한 이정표로서 모든 판단의 기준이자 자아를 이루는 근간이 된다. 문제는 신념과 진실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할 때 시작된다. 

              

1930년대 오스트리아의 동물 심리학자 콘라트 로렌츠(Konrad Lorenz)는 흥미로운 발견을 하였다. 알에서 막 부화한 회색기러기가 실제 어미가 아니더라도 본인이 처음 본 대상을 어미로 인식하고 따르는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각인효과'라고 명명한다. 기러기가 찰나의 순간 느꼈던 확신은 실제 진실보다 더 큰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기러기와 같이 내 눈앞에 보이는 현상만을 보느라 진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은 모두 자신만의 우주가 있고, 그 안에 머물 때 안정감을 느낀다. 그런데 만약 내가 만든 우주의 모양이 외부의 힘에 의해 변형된다면 어떨까. 아마도 그것을 막기 위해 최대한의 방어 태세를 갖추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우주는 단기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의 ‘나’를 만든 수많은 경험과 확률의 집약체이고 고민과 깨달음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 우주가 흔들리는 건 나의 근간을 흔드는 것과 같기에 더 예민하고 날카롭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사람마다 각자 놓인 환경과 성향, 생각의 스펙트럼이 다르기에 우주의 크기와 모양은 모두 다르다는 것을. 이 사실을 간과한 채 자신만의 우주를 고집할 때, 경직된 사고로 진실을 외면할 때 우리는 확증편향에 빠지기 쉽다.                         







우리에게 두 눈이 필요한 이유     


사람은 어떤 현상을 직접 목격하였을 때 강한 신뢰를 갖는다. 하지만 한쪽 눈으로만 그 현상을 바라본다면 어떨까? 여전히 신뢰할 수 있을까?     

        


지난여름, 안과에 검진을 받으러 갔을 때 일이다.     

검안사는 나에게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든 후 벽에 걸린 시계를 그 원 안에 넣어보라고 했다.            




                             

“오른쪽 눈을 감고 왼쪽 눈으로 동그라미 안을 보세요. 아까 넣은 시계가 보이나요? “


“네, 보여요.”          


“그럼 이번엔 반대로 해볼게요. 왼쪽 눈을 감고 오른쪽으로 원을 보세요. 이번엔 어떠세요?”          


“앗! 이번엔 시계가 안 보여요!” 나는 예상외의 장면에 놀라 대답했다.          


“왼쪽 눈이 우세 눈이신 거예요. 사물을 볼 때 주로 왼쪽 눈을 사용하시나 봐요.”     

검안사는 나의 반응과 달리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이렇듯 한쪽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온전한 세상이 아니다. 같은 사물이더라도 그 형상이나 위치가 달라진다. 3차시가 빠져있는 2차원의 평면적 세상인 것이다. 이를 무시한다면 결국 편향된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잘못된 정보가 진실인 양 믿어버리게 된다. 사람의 눈이 두 개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눈이 두 개인 까닭에 원근감과 입체감을 정확히 느끼고 한쪽이 볼 수 없던 것을 서로 보완해 주며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3차원의 세상을 균형 있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신념 또한 균형이 필요하다. 불균형한 신념에 매몰되어 3차원이 아닌 2차원의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그 안에 갇혀 있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것만을 절대적 가치로 여기는 것을 늘 경계하며 타인의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열린 자세와 유연한 사고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또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타인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구분을 강조했다. 자신의 생각이나 사고, 감정은 스스로에게 귀속된 것이기에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지만 타인의 것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애초에 나의 것이 아니기에 강요도, 비난도, 원망도 없어야 한다.               

      


확증편향으로 인한 갈등의 해결은 상대와 나의 시각 차이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생각의 차이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항상 인지하고 지나친 자기 확신을 경계한다면 적어도 확증편향으로 인한 불필요한 논쟁과 감정 소비는 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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