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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 새벽맘 Apr 29. 2021

부부싸움은 타이밍이다

타이밍이 아쉬울 때

우리 부부는 그렇게 격렬하게 싸우는 스타일은 아니다. 솔직히 우리 신랑은 회사에서도 인정하는 순둥이이고 나도 마음이 넓은 편이다. 나는 뭐 아가씨 땐 까칠하다는 이야기를 꽤 들었지만 그건 옛날이야기고. 아이가 태어나고 좀 부드러워졌고, 결혼 6년 차에 접어들며 매해 유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6년이나 살았으니 포기할 건 포기하고 인정할 건 인정하면서 예전에 날 세우던 그런 일이 어느새 우리 부부에게 아무 일이 아닌 것이 되었다.


우리는 그 흔한 돈문제로도  별로 싸우지 않는다. 우리 신랑은

"돈이 내 맘대로 되나~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아껴 쓰면 되지~"

하는 천하태평 스타일이고 나는

"마음먹은 대로 된다..! 지금 없어도 곧 쏟아진다"

며 긍정 확언을 해대는 통에 어지간해서는 돈문제로도 거의 싸우지 않는다.


그런 우리가 올해 크게 다툰 적이 두 번 있다. 2월의 어느 날과 어제.

일방적으로 내가 기분 나쁘고 내가 화난 게 더 크지만 그 일로 며칠간 말도 하기 싫은 정도였다. 그 두 날 다 개인적으로 나의 경력을 위한 큰 도전을 준비하던 기간이었다. 19년을 한 직장의 월급쟁이로만 살다가 인생을 변화시키고 싶고, 육아휴직기간에 뭐라도 유의미한 결과를 하나 만들어놓고 싶어 작년 6월부터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6개월간 가시적인 성과는 하나도 없었지만, 혼자 나름대로 이것저것 도전을 해나가다 보니 하고 싶은 일도 생겼고 왠지 작은 빛이, 길이 보이는 것 같단 생각도 했다.


그래서 지난 2월 나의 숨은 재능도 알아볼 겸 야심 차게 아산재단에서 개최한 정주영 독후감 대회에 참가 신청서를 냈다. 한 두어 달을 자서전을 읽고 독후감을 끊임없이 고쳐가며 거기에만 매달려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마감 주가 다가왔는데 나는 여전히 읽을 때마다 고칠 부분이 계속 눈에 들어와 완성을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신랑은 그동안 '넌 할 수 있다'며(상금에 눈먼 세속적인 응원일지언정) 응원해주고 잘하다가 딱 제출 전날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 술 마시는 거? 상관없다. 마시더라도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만 들어오면 아무 문제없었다. 그날 새벽 2시에 들어왔다. 진탕 마시고 들어왔다. 진작에 완성하고 독후감 제출했으면 애당초 아무 문제없었겠지만 마감 전 날까지 고쳐야 할 부분이 계속 눈에 들어와서 끈떡지게 독후감을 부여잡고 있는 상황을 신랑은 잘 알고 있었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함께 있다 보니 신랑이 들어와서 육아 바통터치를 해줘야 그나마 온전하게 글에 집중할 수 있는데 마감 전 날 내게 그런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아이들도 아빠 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그날 결국 자정 넘어 잠들었다.


그렇게 혼자가 되고 나니 몰려오는 짜증..! 두 달 넘게 공들인 독후감 제출을 포기해버릴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차마 그럴 용기는 못 내고.. 미련하게 노트북 앞에 앉았다. 조급한 마음에 노트북을 붙들고 있으면서도 이런 기분으로 글을 쓰는데 글에 좋은 기운이 들어갈 리가 있나..! 하는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찼다. 떨어지면 모든 게 남편 탓이라는 생각과 함께. 아무리 자기 계발서 읽어도 소용없다. 하필 이런 예민한 시기에 우리 신랑은 술 먹고 새벽 2시에 들어오냐고..!!!



결국.. 진짜 남편 탓인지, 남편 탓이라 생각한 내 탓인지 나는 보기 좋게 탈락했다.


지금은 내 실력 탓이라는 걸 인정하지만, 앙금이 남아있던 저 때는..

'역시 이것 봐 봐.. 그때 내가 그렇게 안 좋은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다듬었는데 될 리가 없지.'

라며 내 실력을 옹호하는 핑곗거리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 또 싸웠다.

공교롭게도 이번 주에 내가 생애 최초로 재능기부라며 오픈 채팅방에 함께 하는 멤버들에게 강의를 해주기로 한 주다. 강의 일정은 이번 주 토요일로 잡혔는데 생전 처음 해보는 강의안 작성과 연습은 정말 만만찮은 일이었다. 약속을 못 지킬까 조급해졌고, 원래도 집안일에 재능은 없었지만 완전히 놔버렸다.



그러니 우리 신랑 울화통 터질 만도 하다.


그러나..!!! 이번 주에 역시 내 삶에 있어 정말 큰 도전을 앞두고 있는 주인데 좀 이해해주면 안 되나 싶은 생각이 마구 들기 시작하자 나는 너무 서운했다. 작년에 둘째 낳고 육아휴직기간 동안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두 아이 가정 보육하느라 한계에 다다를 만큼의 정신력으로 버틴 적도 많고, 이제 겨우 두 아이 다 기관에 보내고 있는데 나의 휴직 기간은 겨우 20여 일 남았다. 그 20여 일도 나만을 위한 온전한 시간으로 채우지 못하나 하는 생각에 억울하고 기분이 심히 나빴다.


무엇보다도 이런 감정싸움으로 어제 소중한 새벽 기상 루틴이 완전 엉망이 되어버렸다. 나는 내가 못 일어나서 새벽 기상 못한 날도 엄청 저기압이 되는데, 심지어 남편 때문에 망쳐버렸다 생각하니 더 짜증 나고, 내가 나 좋자고 이러는 건가 오만 유치한 생각이 다 들었다. 새벽 시간 다 날리고 우리 첫째는 울면서 유치원에 갔다. 예민해진 엄마 아빠 덕에 별 것도 아닌 일에 지적받고, 혼나자 서러웠는지 울면서 유치원에 갔다. 부부싸움의 최대 피해자는 선량한 우리 아이들이다. 또 더 속상해졌다.


아마도 신랑이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온 날이 독후감 제출 마감 전 날만 아니었도, 집안일 내팽개쳐두고 뭐하냐는 잔소리를 오늘이 아닌 다음 주에 들었더라면.. 나는 술 마시고 들어온 남편을 너그러이 보듬어 줬을 것이고, 집 꼬락서니가 이게 뭐냐는 남편의 잔소리에 반성하며 그 날만큼은 온 집안이 반짝반짝하도록..

까지는 아니겠지만 최선을 대해 나름의 대청소를 해놨을 거다.


결국

부부싸움은 타이밍이다.

예민해져 있을 시기에는 조금만 참자. 건드리지 말자. 정말 타이밍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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