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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 새벽맘 Jun 17. 2021

 바보 엄마

착각 속에 살았던 걸까?

얼마  첫째의 퇴행으로 속상했었다. 며칠  모두  탓이란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아니 확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어제 브런치 서랍 속에 잠자고 있던  글을 읽게 되었다. 브런치 작가 신청하려고 작년에 써두었던 글인  같다.  속의 나는.. 착각를 해도 단단히 하고 있는 듯했다.



2020.12월의 어느날.



어린 시절 나는 유난히 어부바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엄마 등에 종종 업혀있었다.(사실은 훨씬  컸을 때까지 업혀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억의 왜곡에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160cm 40kg대인 우리 엄마가 초등학교 3학년  이미 32kg이나 나가던 통통한 나를 업기에 얼마나 힘드셨을까. 어린 시절 철없었음에 대한 뒤늦은 후회, 반성이 무색하리만큼 지금도 어린 시절 엄마 등에 업혀있던 순간을 떠올리면 아직도 엄마 등의 체온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업히기 좋아하던 우리 엄마의 막내딸이던 나는 어느새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늦은 나이에 엄마가  나는 한편 우리 친정 엄마의 각별한 막내딸이었고, 우리 시댁의 나이 많은 맏며느리인터라 임신부터 출산까지 양가 어머님들의 걱정을  몸에 받았다. 건강하게  아이를 품에 안고도 어머니들의 염려는 ‘허리 아프다, 나중에 골병든다 이어졌다. 손타면 안된다고 아기를 많이 안아주지도 말고, 많이 업지도 말라는 부모님들의 당부를 받았다.     


나도  나이가 걱정되었던 것일까?  말을 곧이곧대로, 그렇게 키웠다. 갓난쟁이를 눕혀 재운다고 수면교육을 하고, 우리 아기가 낮잠   잔다는 고민에 조리원 동기가 어부바해서 재우면  잔다는 해법을 줬는데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아니 옮기지 않았다. 내가 결코 모성애가 부족하다거나, 우리 첫째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나는 이미 예약된 팔불출 엄마였다. 조리원에서부터  유명할 정도로 우리 첫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그런 엄마였다! 그랬는데 우리 엄마 말씀대로, 우리 시어머니 말씀처럼 많이 안지도, 많이 업지도 말고 그렇게 키워야 되는  알았다. 그래야 순하고 예쁜 아이로  사랑받을 줄 알았다.     

 

엄마는 많이 못 업어줬지만, 할머니들은 우리 큰 딸을 업어키우셨다. 우리 첫째 꽤 독립적으로 잘 컸다. 작년 둘째를 가지면서 임신 25주부터 조산 위험으로 출산까지 제법 긴 시간 동안 입원을 했어야 했다. 당시 3살이던 우리 첫째는엄마가 없어도 양쪽 할머니 집을 번갈아가며 생활하면서도 엄마 보고 싶다고 징징대는 법 없이 아주 씩씩하게 잘 지내주었다. 밥도 잘 먹고, 걱정되었던 잠은 더 잘 자고......! 아마도 할머니들의 어부바 덕분이었을 거다. 가을부터 겨울까지의 기간이라 영상 통화할 때마다 포대기에 폭 둘러싸여 업혀있던 모습이 자주 등장했으니 보지 못하는 시간들도 충분히 상상 가능했다. 그렇게 엄마 없는 시간 동안 할머니들의 어부바로 우리 딸은 잘 크고 있었다.     


드디어 둘째를 건강하게 출산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독립적으로 잘 컸다 생각했던 우리 첫째가 달라졌다! 동생을 향한 질투가, 동생을 안아줄 때마다

“나도 안아줘어엉엉~~~!”

서러움 폭발로 돌아왔다. 그래도 조리원 퇴소  집으로 돌아온 2주간은 산후 도우 미분의 도움을 받아 어린이집 다녀온  아빠가 오기까지  첫째의 온전한 엄마일  있었다. 그러나  기간도 잠시, 코로나가 들이닥쳐 확진자가 급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한 2월부터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던 산후도우미분의 출입도 조심스러워 도움을 중단했다. 그나마 평화를 유지하던 2주간의 기간은 끝이 나버렸다. 어린이집도 보내지 못하고 집에서 온전히  아이를 끼고 있어야 하는 힘든 상황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둘째를 임신하고 많은 육아서를 봤다. 둘째가 태어나면 첫째가 느끼는 감정이 남편이  여자를 집에 데려왔을  부인의 감정보다   스트레스라고 했던가?! 그런 감정을 어떻게 달래줘야 할까?’  육아 공부의 핵심이었다. 책에서 봤던 그대로, 뭐든지 첫째 위주로, 첫째가 원하는 대로 해주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책은 책일 .나의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너무나 이상과 같은 루션이었음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루 종일  아이와 붙어 있다 보니 나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첫째의 감시대상이 되었다. 수시로 안아주고, 젖을 먹여야 하는 신생아와 동생처럼 모든  똑같이 해주기를 바라는 첫째. 4 첫째도 동생처럼 젖병에 우유가 먹고 싶다 했고, 엄마한테 안겨서 먹고 싶다 했다. 엄마는 동생만 많이 안아준다는 첫째의 불만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들어야 했다. 둘째가 자는 동안 나도 같이 자야 했지만 동생이 자는 동안 나는 첫째가 온전히 차지할  있는 엄마가 되므로  수도 없었다. 첫째는 낮잠을 자는 동안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낮잠까지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산후조리시간은 흘러가고 있었고 책에서  육아는  멀리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  오래다.  


나는 힘든 산모였고, 우리  아이는 서러운 첫째였다.산후우울증을 걱정해야  시기에 코로나 블루가  우려를 덮어버렸고, 코로나 블루보다  무서운 우리 아이 감정이 내겐   정신적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어떻게 해도 달래지지 않는  같았다.  몸은 하난데..코로나 때문에 등원 못하고 있는 4 첫째도 만족시키며 신생아를 돌본다는  부족한 엄마인 내겐 불가능한 것만 같았다.      


그렇게 첫째 어릴 때 많이 업어주지 못했던 우리 모녀의 시간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슬그머니 되돌아오고 있었다. 수많은 육아서를 봤지만 현실에 적용하기에 어려움을 느끼기만 했을 뿐 내게 맞는 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와중에 말이다. 의외로 정답은 간단했고, 우리 엄마세대, 할머니 세대, 훨씬 더 이전의 세대부터 답은 이미 대물림되어 전해져 오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린이집에서 항상 낮잠 자던 패턴이 있는데, 집에서 자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니 오후가 되면 우리 첫째 피곤한 기색이 얼굴에 잔뜩 묻어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첫째가 4살이 되어서야 드디어 나의 등을, 엄마의 등을 내어주기 시작했다. 훌쩍 커버린 팔다리는 이제 포대기로 다 감싸지 지도 않았다. 포대기 없이 그냥 업어 낮잠을 재우기 시작했다. 포대기가 없어도, 어린 시절 내가 느꼈던 우리 엄마의 등처럼 충분히 따뜻하고 포근했으리. 업히기만 하면 스르륵 잠드는 우리 첫째...... 드디어 나도 쉴 수 있는 시간이 왔다!     


그렇게 어부바는 내게 평화와 휴식의 시간을 선물해주었고, 우리 첫째에게는 어릴 때 잃어버렸던 엄마의 등을 온전히 되찾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또한 아직 너무 어린 둘째는 어부바를 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우리 첫째에게 어부바는 더 특별한 사랑이다. 엄마가 나에게만 해주는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엄마의 어부바를 좋아했으면서 우리 딸에게는  그렇게 인색했을까? 그래도 그때  많이 안아주고 업어주지 못했던  후회할 필요는 없을  같다. 동생이 태어나면서 서러움도 늘었지만 동생이 태어났기 때문에 엄마의 등을 늦게라도 온전히 되찾았으니 말이다. 내가 어릴  느꼈던 우리 엄마 등의 체온을,  온도를 지금 고스란히 느끼고 있을 우리 첫째.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동생이 태어난 지금, 혼자였을 때보다  많이,  오래 엄마 등에 기댈  있어 동생이 있는 지금의 삶을  빨리 받아들이고  적응해나가고 있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부족했던(지금도 여전히 부족하지만) 엄마 밑에서  커주고 있는 우리 첫째에게  고맙고, 언니에게 엄마 어부바를  돌려준 우리 둘째의 탄생도 정말 고맙다.




불과 6개월 전쯤인데.. 어부바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된  알았던 때다. 동생이 생겨서 오히려 우리 첫째에게  좋은 시간이 만들어졌다 생각했다. 충분히 많이 업어주고 안아줬다 생각했다. 단순한 생각이었다.


오늘도 나는 아토피로 인해 우리 첫째의 먹거리를 제한시켰다. 역시나 불만이 돌아왔다

"엄만 나만 미워해!"

하는 첫째의 원망. 맥락 없이 모든 일에 불만이 생기면

"엄만 나만 미워해!"

라고 응수하는 우리 첫째 딸.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거실에 나와

"왜 안 안아주는거야아~~~!!~"

하고 있는대로 불만을 터트린다.

그나마 꽁해서 말도 안하고 있는 것보다 뭐가 불만인지 얘기해줘서 고마워해야하나..?!


겨우 5 인생이지만,  머릿속은 단순한  복잡하다. 엄마가 이해하기에 어렵다.  아이를 키우며 가끔 '나 진짜 바보 엄마인가..?' 싶을 때가 종종 있다. 그동안 잘하고 있다 생각한  사실은 모두 나의 착각이었나 싶은 날도 많다. 오늘도 바보 엄마는 우리 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기 위해, 내가 또 무얼 잘못했나..? 깊게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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