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덕분이다.
첫째를 키워봤으니 둘째는 쉬울 줄 알았다. 둘째는 발로 키운다기에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모든 육아맘, 육아빠들은 알 것이다. 첫째를 키워봤으니 둘째는 수월할 것이라는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것을. 특히 우리 부부는 '한 명 키우는 건 진짜 일도 아니었다.'는 말은 자주 한다. 아마도 둘째의 성정이 첫째보다 더 까다로워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첫째를 키우면서 나타는 경우의 수가 하나라면 둘 째는 두 배가 아니라 한 10배쯤은 는 것 같은 이유도 있다. 첫째를 키울 때 당황하던 사람은 우리 부부 두 명뿐이었다면, 둘째가 태어나고부터는 첫째까지 3명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야 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육아가 힘에 부친다 생각했다.
둘이나 되는 아이를 봐주시기에 양가 부모님이 너무 연로하시다. 양육을 도와줄 사람을 구해야 했는데 쉽지 않았다. 둘째가 태어나고 겪은 첫째의 퇴행도 너무 속상한 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복직을 했는데 복직하자마자 둘째가 다쳐서 눈치 보며 휴가를 써야 하는 상황도 불편했다.
이렇게 가끔 육아의 어려움을 토로하면..
“그러게 하나만 낳아 잘 키우지 그 나이에 둘이나 낳아 그 고생이야?!”
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마음을 터놓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모두 친한 지인분들이다. 그렇기에 나쁜 마음으로 그러는 거 아닌 건 안다. 내 나이가 충분히 걱정을 끼칠만한 나이인 거 인정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둘째를 낳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차고 넘치는 그 이유를 대신할 한마디만 한다면
“둘째(막내)는 사랑입니다.”
이 말은 진리다.
물론 첫째도 여전히 이쁘다. 요즘 들어서는 말도 잘 들어서 더 이쁘다. 동생에게 뭐든 양보하고 참아주는 첫째. 가끔 안쓰러울 만큼 착한 아이다.
첫째도 아직 어리지만 아직 두 돌도 안된 둘째를 보고 있으면 정말 정말 귀엽다. 둘째가 사랑인 이유를 유식하게 이야기해보자면, 혹은.. 이건 차별이 아니라 과학적인 이유로 그런 거 다며 핑계를 포장해보자면.
대부분 포유류의 새끼는 부모 혹은 이미 성장한 개체들의 보살핌을 일정기간 동안 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게 되어있다. 그래서 그 보살핌을 유발하기 위해 큰 머리, 큰 눈 동글동글한 코 등 귀여운 외모를 갖게 된다고 진화학적으로 설명된다. 사람도 포유류의 일종이니 당연히 사람의 아기도 정말 정말 귀엽다. 나는 가끔 아이들이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 못생겨서 더 귀엽다 라는 말도 자주 한다. 귀여운 모습에 부모뿐만 아니라 많은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할 수밖에 없는 외모다. 그래서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일단 항변한다.
그러나, 사실 더 궁극적인 이유는 첫째 덕분인 것 같다. 첫째 덕분에 둘째가 더 이쁜 것 같다.
둘째를 낳고나서, 우리 첫째를 낳았을 때가 많이 생각났다. 처음 엄마가 되었던 그때 참말로 행복했었다. 그 느낌, 그 기분이 아직도 생생한데 벌써 훌쩍 커버린 첫째를 보면 왠지 아쉽다.
둘째를 보면,
‘아.. 우리 첫째도 이럴 때가 있었는데..!’
하며 첫째의 아기 시절을 추억하게 된다. 처음이라 많이 어색하고 서툴렀던 엄마였던 내가 지금은 조금 더 능숙하게 육아를 하면서 느끼는 여유가 둘째에게 반영이 된다. 예전엔 아이 케어하는데 급급했다면, 지금은 우리 첫째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둘째도 '언니처럼 어느새 훌쩍 커버리겠지?'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지금 현재, 이 순간순간을 사랑으로 대하게 된다. 힘들지만 힘든 이 순간도 곧 끝이 난다는 걸 아는 부모의 마음은 순간순간이 더욱 소중하다. 첫째 때부터 알았으면 좋았을, 그런 아쉬움을 둘째가 달래주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힘들어도 둘째가 예쁘다.
그래서 둘째는 사랑이라는 말이 생긴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둘째가 있어 우리 첫째도 더 예뻐 보인다. 둘이 같이 있는 그림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둘째가 태어남으로써 자매의 그림이 완성되었다. 나는 그 자매의 투샷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둘째가 사랑인 이유는, 첫째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