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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Oct 17. 2020

“너 공무원 한 번
준비해보는 게 어떠니?”

말은, 언제나 너무 쉽다.



“아, 맞다! 너 이제 진짜 공무원 준비 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게 어떠니.”     


추석 연휴, 오랜만에 본가로 내려와 배불리 밥을 먹고 뒷정리를 하려던 찰나 뭔가가 생각난 듯한 엄마가 퍼뜩 입을 뗐다. 덤덤한 어조로 전달된 문장이었으나 끝이 미묘하게 날카로워져 있다는 걸 눈치 챌 수 있었다. 약간의 초조와 신경질을 배인 발화. 순간 미간이 확 구겨졌다. 그에 대한 답은 이미 충분히 전했다 생각했는데, 왜 또 원점으로 돌아온 걸까. 짜증과 섭섭함이 우호죽순 마음에 돋아났다.     


하긴, 비단 엄마뿐 아니라 친척, 지인, 엄마의 친구들까지 나를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종종 내게 공무원 준비를 권하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성향, 특징, 성격, 강약점, 견딜 수 있는 스트레스의 종류와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 등 다방면을 고려했을 때 나는 공무원에 꽤 적합한 사람이었으니까. 스스로도 그걸 인정하기에 공무원 시험 준비에 ‘취업 플랜 B’자리를 기꺼이 내어주었고.    

  

허나, 그럼에도 내가 ‘공무원’이라는 단어를 쉬이 들이미는 사람들에게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경쟁이 치열하다지만 너는 왠지 될 거 같다’는 식의 무책임한 응원에 몹시도 반감이 드는 이유는, 모두 마음속의 이런 질문에서부터 비롯된 것일 테다.   



만약 내가 2년 후에도 안 된다면?
2년 동안 준비하다가 떨어졌을 때, 그때도 나는 계속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공무원 준비에 대한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이기도 하다.




“2년 준비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건...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은 취업을 하든, 뭘 하든지 해서 다들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나는데. 다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그 자리 그곳에 멈춰있다는 느낌? 다들 1인분의 몫을 하면서 살아가잖아. 근데 나만, 내 시간만 하염없이 여기 이곳에 고여 있다는 그 느낌이 진짜··· 사람을 미치게 하더라고. 그건 정말 못 견디겠더라고.”     


“수능이 아니잖아. 수능은 내가 잘 쳤든 못 쳤든 간에 끝이 나는 거고, 점수대에 따라 갈 수 있는 대학이 있잖아. 근데, 공무원 시험은··· 그냥 합격, 아니면 불합격이야. 내가 몇 점을 받든 몇 문제 차이로 떨어졌든 그냥 불합격. ‘언제까지 하면 된다.’는 기약이 있으면 나도 언제까지고 참고 하겠는데, 이거는 뭐··· 그냥···.
하하, 그래서 나도 이번까지만 하고 안 되면 그만 두려고. 못할 짓인 거 같아, 사람이.”      


내가 아직 대학생이었을 적, 졸업을 한 학기 앞뒀을 무렵 만났던 A와 B의 말을 기억한다. 과 동기였던 A는 과거 2년 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경력이 있고, 모임에서 만난 언니 B는 당시 2년 째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었다.


 A는 휴학을 하고 공부하던 중 다시 학교로 돌아왔고, 올해까지만 해볼 거라던 B는 다음 해가 밝자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라며 삼수를 준비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B가 떨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몇 달 후엔 그녀가 임신했다는 연락이 닿았다. 신혼이었던 B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만해도 그녀는 ‘시험과는 별개로 아직 아이 생각은 없다’고 했었는데···.     


차라리 내가 ‘무대뽀’였으면 좋겠다. 2년 후에도 무턱대고 ‘모르겠고, 일단 GO’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몇 년을 준비하든 나는 언젠간 꼭 합격할거라고 믿으며 우직하게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하지만 나는 내가 그럴 수 없으리라는 것을 몹시도 잘 알기에. 나는 내가 일 년 만에 합격할 수 있을 정도로 영특한 인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첫 실패 후에는 씩씩하게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두 번째 실패 앞에서는 엉망으로 휘청거릴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안다.      


그러니 만일 그때, 내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2년 간 전력을 다하는 동안 심신은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숨구멍은 자괴감과 박탈감에 짓눌려 한 발자국 떼기가 차마 무섭다고 느껴지게 된다면. 

그때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 나이 스물일곱. 내년부터 준비한다 하더라도 2년 뒤면 서른. 그때 내가 돌아올 수 있는 길이 남아 있을까. 

현실적으로 여자 서른에 신입··· ···. 하하, 내가 생각해도 너무 터무니가 없네. 지금도 취업시장은 발 디딜 곳 하나 없이 이리도 삭막한데. 하물며 한국사니 비문학이니, 실무에 아무 쓸 데 없는 공무원 공부를 2년 동안 하다온 여자를 어느 사기업에서 넙죽 받아 줄는지.  

    

대학생활과 대외활동, 인턴, 몇 번의 계약직을 거쳐 한 해 한 해 밟아오는 동안 ‘나이가 깡패’라는 사실을 절감할 수 있었다. 아니, 몸소 경험할 필요 없이 당장 취업 커뮤니티만 들어가 봐도 ‘나이 28 여자인데 신입으로 늦었을까요?’와 같은 글이 수두룩하고, 서류에서 한 번도 떨어져본 적 없다던 이들이 나이 앞자리가 3으로 바뀌는 순간 ‘서류 광탈의 굴레’에 처박히게 되었다는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기업이 바라는 ‘신입의 적정나이’라는 게 존재하고, 그 기준을 넘어가면 우선적으로 거른다는 사실은 이미 취업시장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므로.



영화 <인사이드 르윈> 스틸 컷, 출저: 네이버 영화

한수희 작가의 에세이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에서는 <인사이드 르윈> 이라는 영화가 잠시 언급된다.     

영화의 주인공 ‘르윈’은 무명의 포크 가수로, 집도 절도 없이 낡은 기타와 함께 떠돌아다니며 음울한 노래를 부른다. 르윈은 어느 정도의 재능을 가졌고, 노력도 한다. 하지만 운이라고 할지 결정적 기회라고 할지, ‘성공’에 반드시 필요한 외재적인 어떤 것들이 미묘하게 뒤틀리며 그를 비껴간다. 그렇게 성공으로 가는 삼박자가 번번이 어긋나는 동안, 그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로 나이 들어간다. 

그는 이제 기타를 놓을 수도, 씩씩하게 짊어지고 갈수도 없게 됐다.  


작가는 르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가 선택의 갈림길에서 머뭇거리는 사이에 “그가 살 수도 있었을 인생은 지나가버렸”다고.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달려야한다”고, “그의 앞날은 막막하기만 하다”고.      

나는 내가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달리게” 될까봐 무섭다. 주저하는 사이 내가 ‘살 수도 있었을 인생’을 스스로 져버릴까 두렵다. 더 이상 꿈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그 길밖에 남지 않았으므로. 

걸을 ‘수밖에’ 없게 될까봐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2년 뒤에도 바라는 결과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나는 계속 할 수 있을까?”     


르윈처럼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달리’든, 멈춰 서든, 이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어쨌거나 지금보다 상황은 훨씬 절망적일 거라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내 삶은 계속 되어야 한다는 것.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쇠약해신 심신으로 더 고달픈 현실을 짊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누구도, 심지어 가족조차도 이 짐을 대신 져 줄 순 없다. 단 1g의 무게도 덜어줄 수 없다.      


사람들은 한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리스크가 따르는 문제에 대해서, 본인을 제외한 어떤 이도 감히 책임이나 도움 따위를 제공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 종종 스스럼없이 입을 땐다. 그리고는 너무도 손쉽게 발을 뺀다. 장래와 생계, 결혼, 출산, 임신중지와 같이 한 사람의 생애가 걸린 문제에 자신의 신념이나 정의, 선과 악의 기준, 옳고 그름의 잣대를 소리 높여 들이민다.       


나는 부디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세상에서, 무엇에도 쉽게 입을 떼지 않았으면 한다. 함부로 판단하고 재단해서 속 편히 권유하지 않았으면. 각박하고 자비 없는 세상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타인’으로 남지 않는 방법은, 상대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때에 부드럽게 입을 열고 기꺼이 손을 맞잡는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나와 당신이,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글을 쓰는 동안, 글을 읽는 동안 우리가 조금 더 그런 사람에 가까워졌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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