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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Mar 14. 2021

아무래도 꿈이 없는 거 보다 있는 게 나은 이유

설령 이룰 수 없다하여도


차라리 꿈이 없었으면 좋겠어, 꿈이 있어 좋겠다는 친구의 말에 속으로 생각했다. 취업준비를 하던 시절, 친구는 자신은 꿈이 없어 방향성이 없다며, 그래서 뭘 준비해야할지 어디를 지원해야할지 모르겠다며 나를 부러워했다. 나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언젠가부터 속에서 똬리를 틀고 있던 문장을 떠올렸다. ‘설령 그게 이룰 수 없는 꿈이라 해도...?’ 이룰 수 없는 꿈을 좇는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슬픈 일이란다 친구야.


이전까지 잡지사에서 글을 썼고 영화제를 전전하며 보도자료를 썼다. 나도 작가가 되고 싶었다. 내 이름 석 자가 반듯이 적힌 책을 내고, 독자와 소통하며 동료 작가와 협업하는 그런 작가가. 그래서 어떻게든 유관 직종을 찾아 바지란히 글을 썼다. 훗날 꿈을 이루었을 때 나의 자랑스러운 커리어가 될 수 있도록.

     

하지만 한 해 한 해 시간이 흐를수록, 글과는 무관한 직업으로 생계를 이을수록 마음속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의구심은 부피를 키워갔다. 과연 내가 작가가 될 수 있을까? 내 책을 내고 싶다는 사람이 나타나긴 할까? 서른 살 이전에 책을 내기는커녕 평생에 걸쳐 한권은 낼 수 있을까? 현실은 고작 50명 남짓한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브런치의 수많은 작가지망생들 중 한명일 뿐인데.


이럴 바엔 차라리 꿈이 없었으면 좋겠어. 나도 하고 싶은 게 없는 흰 도화지처럼 깨끗했으면. 그랬다면 이렇게 좌절할 일도, 불안해할 일도, 혼자 기대하고 실망하는 일도 없을 텐데. 그렇게 하루하루 회의 섞인 푸념은 늘어만 갔다.


그런데 바야흐로 일주일 전. 생각에 균열이 왔다. 그날은 직장인 친구 H를 만난 날이었다. H는 술잔을 입에 털어 넣으며 속에 있던 고민을 테이블위에 꺼내놓았다. H는 일을 하며 점점 더 무감해지는 것 같다고, 일은 익숙해졌으나 바라는 것도, 원하는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없이 그저 매일이 무채색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H의 말에 동의하며 생각했다. ‘아. 어쩌면 이래서 꿈이 없는 거 보다 있는 게 낫겠구나. 아니, 확실히 꿈이 있는 쪽이 낫구나!’

   


H의 말대로 회사를 다닐수록 점점 무감해지기 마련이다. 일을 배우며 적응할 시기엔 정신없이 바쁘고 힘에 겨워 아무생각을 할 수가 없지만, 일이 익숙해질 즈음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일상에서 주어지는 모든 자극에 무디게 반응하고 아무런 감흥 없이 하루를 흘려보낸다. 그리 힘든 일도, 좋은 일도, 불안한 일도, 바라는 일도 없이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주어진 업무를 수행한다. 시간이 흐르면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파김치처럼 침대에 널브러진다. 그렇게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반복하는 동안 우리의 표정은 점점 ‘무’가 되어간다. 딱히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잖아. 그저 그렇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무표정의 시간들.


나 또한 일을 하며 매번 그런 시기를 겪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조금이라도 내게 주어지는 자극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일상 속의 크고 작은 감정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글을 썼기 때문이다. 가족과 친구들, 상사와 회사, 퇴직과 이직,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꾸준히 생각하고, 생각을 글로 옮기고, 다시 퇴고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쳤기에 그날 하루의 기분과 사사로운 감정들, 크고 작은 일상의 조각들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을 수 있었다. 계속 무언가를 바라고, 기대하고, 기뻐하고 실망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나는 계속 나만의 꿈을 꾸었으므로 반복되는 일상에 잠식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쉽게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꿈을 꾸는 건 여전히 슬픈 일이다. 하지만 그건 무언가 ‘되고 싶다는’, ‘이루어내고 싶다는’ 꿈의 도착지점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일 것이다. 실은 우리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보다 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기뻐하고 기대하고, 실망하고 좌절하고, 한 발짝 성큼 내디뎠다가 다시 발을 물리고. 그리곤 마음을 가다듬고 새로이 출발선에 선다. 다시 꿈을 꾸며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손가락 사이로 드나드는 바람을 감각하며 손가락을 꿈지럭 거린다.


그러니 설령 이룰 수 없다 하여도, 나는 계속 꿈을 꾸련다. 꿈을 꾸며 혼자 들뜨고 애틋해하며 익숙한 것에 잠식당하지 말아야지. 반복되는 일상에서 더 자주 감탄하고 더 많이 슬퍼할 수 있도록. 그러다보면 언젠가 꿈이 내게로 걸어와 손을 내밀어 줄지도 모를 테니. 그렇게 나는 나의 꿈을, 당신은 당신의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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