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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May 11. 2021

회사 생활에서 고수해야 할
한 가지 태도

  

기분이 더러웠다. 내가 잘못한 일인데도 상대방이 그런 태도로 나오니 머리가 차갑게 내려앉고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 상황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나는 지금 대학교에서 행정직원으로 일하고 있고, 내 업무 중 하나는 방역이 필요한 강의실을 파악해 보고하는 것이다. 그 일이 일어났을 무렵은 학교 중간고사 기간으로, 나는 대면시험을 진행하는 강의실을 정리해 이미 보고서를 올린 상태였다. 그런데 중간고사 당일, 갑작스레 한 교수님께서 내 담당이 아닌 강의실에서 시험을 치르고 싶다며 조치를 취해달라고 하셨다. 나는 해당 강의실 담당자분께 잠시 공간을 사용할 수 있겠느냐고 허락을 받은 뒤 시험을 진행시켰다.


그런데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시점, 해당 강의실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강의실 사용 하신 후 방역신청을 하셨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나는 당시 경황이 없어 방역요청을 하지 못했다고 답하며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를 거듭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기가 차다는 듯 하,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지금 상황이 적반하장 된 것 같은데, 선생님이 잘못한 일인데 제가 부탁하는 듯이 되어버렸잖아요. 이게 뭐예요?!” 그 말을 들은 나는 너무 기분이 나빠 가만 침묵하고 있다 전화를 끊을 때쯤 한 번 더 죄송하다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곧장 방역담당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방역요청을 부탁드렸다.


무사히 방역을 마치고, 모든 일이 마무리 되었을 때쯤에도 나는 한동안 기분이 나빠 일에 진중할 수가 없었다. 적반하장? 뭐가 적반하장이란 말이지? 내가 그 사람한테 화를 냈나, 욕을 했나, 거듭 미안하다고 말하며 상황을 수습하려고 했는데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야 대체. 그런 생각을 하다 문득 그 장면이 떠올랐다. 이전에, 내가 다른 선생님께 짜증을 마구 표출했던 장면이.


한 달 전쯤인가, 한 선생님이 내가 올린 기획서를 제대로 읽지 않아 상황이 무척 꼬여버린 적이 있었다. 뒤늦게 자신이 기획서를 제대로 읽지 않아 오해했다고 말하는 선생님에게 나는 그만 너무 화가나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쏘아붙였다. “선생님. 그때 분명히 기획서 제대로 보셨다고 하셨잖아요. 그렇게 말해놓고서 이제 와서 이러시면 제가 뭐가 돼요?” 그리고는 “하... 진짜 이것 때문에 몇 번을......” 이라고 짜증스레 덧붙이며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그때 맞은편에 서있던 선생님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무슨 말을 하려다 말았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역지사지의 형태로 내가 한 행동을 똑같이 되돌려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짜증에 관해서라면 누구보다도 마인드 컨트롤을 잘 할 수 있다고 자부했는데, 결국 나 또한 남 기분은 생각지 않고 나 편할 대로 말하고 행동했구나. 부끄러움과 후회가 동시에 밀려왔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을 계기로, 한 가지 단단히 깨달은 게 있었다. ‘비록 잘못이나 실수의 책임이 상대방에게 있다고 하더라고, 나는 관대함과 친절함을 유지하려 애를 써야겠구나!’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이고, 나도 예외일 순 없음으로 서로에게 가시를 세운 채 일을 해선 안 되겠구나. 짜증을 내고 화를 내면 상대방은 물론 내 마음까지 찐득찐득 진흙탕이 되어 업무와 인간관계에 악영향만 미치는구나.


생각해보니 우리 모두 각자의 생계를 등에 짊어지고 매일 아침 힘겹게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인데. 똑같이 고달픈 처지인데 작은 실수하나 했다고 그렇게 날을 세울 필요가 있을까. 무언가를 조금 늦게, 또는 틀리게 처리해서 일이 조금 귀찮아지더라고 그렇게 화를 내야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 모두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일을 하며 스스로를 열심히 책임지려고 하는 ‘동지’들인데.



Be Kind


“남들에게 친절해라.”


학창시절 교과서에서도, 선생님의 가르침에서도,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접했던 문장을, 먼 길을 돌고 돌아 다시 마주한 기분이다. 아마 삭막하고 예민하게 굴러가는 ‘직장인의 삶’이라는 게 덧씌워지면서부터 눈이 점점 침침해졌나보다. 그래서 등장 밑에 있던 저 문장도 발견하지 못한 채 뾰족해져있었나 보다. 그러니 이제는 두 눈에 힘을 바짝 주고 정신을 맑게 가다듬고, ‘Be Kind’ 두 어절을 마음속에 단단히 새기면서 출근길에 올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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