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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Jun 01. 2021

서울토박이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서울 출생 사람들을 항상 부러워했다. 그들은 본래 거주지가 그곳에 있었으므로 대학이나 직장문제로 집을 구하러 전전하지 않아도 되고, 비싼 월세를 남의 손에 쥐어주며 이번 달은 어떻게 버티나, 금전 문제로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아도 될 터였다. 더군다나 모든 인프라가 집중된 곳에서 거대한 문화자본과 정보를 가장 먼저 접하고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으니. 어찌 부러워하지 않을 수가 있으랴.


나는 그렇게 물리적 환경과 조건, 취업을 비롯한 모든 경쟁에서 그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러므로 기회가 생기면 언제든 서울로 올라가리라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오랜만에 고향인 부산에 내려온 친구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아! 지도앱을 켤 필요가 없는 익숙한 간판과 거리, 이 친숙한 공기! 너무 좋다, 정말. 이렇게 익숙한 환경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이 얼마나 큰지 몰라.”


‘!’ 

그때 머릿속에 느낌표가 푱, 하고 튀어 올랐다. 맞다, 그랬지 참. 익숙하다 못해 눈에 새겨질 것 같은 풍경과 분위기가 주는 그 안정감, 더할 나위 없는 위로.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나도 경험한 바 있다. 예전에 타 지역에서 근무했을 당시 일이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게다가 난생 처음 가본 지역이어서 언제나 몸에 힘을 바짝 주고 긴장을 하고 다녔더랬다. 모처럼 여유가 생겨 어디 좀 가보려고 해도 지도앱부터 켜서 버스 정류장과 가는 길을 확인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연휴를 맞아 부산으로 내려오게 됐는데, 와, 부산역에 도착하자마자 숨이 탁 트이더라. 긴장으로 바짝 서 있던 머리카락이 어깨 위로 살랑대며 내려오는 것 같다고 할까. 동시에 마음이 어딘가에 폭, 안착해 몹시도 편안히 자리 잡던 느낌. 그것은 아마 당장 휴대폰이 꺼져도 집까지 가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안정감일 것이다. 아니, 실은 집이 아니라 부산 내 어떤 곳이라도. 나는 부산에서 나고 자란 부산토박이니까.


그렇지, 매일 지긋지긋하다고 여기면서도 나는 도망치고 싶어질 때마다 늘 부산을 떠올렸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어, 그럼 서울토박이들은 어디로 도망가지? 본래 서울에서 태어났고 출신 대학도, 직장도 서울에 두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꽤 많을 텐데 말이야···(왜냐하면 우리나라는 모든 인프라와 자본, 문화와 대학. 직장이 서울에 다 몰려있는 서울민국이니까). 그들은 서울에서 더는 버틸 수가 없다고 생각 될 때,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그렇다. 서울토박이, 그들에게는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없다. ‘떠날 수 있는’ 장소만 존재할 뿐. 그러니까 타 지역 출신 사람들은 혹독한 서울살이에 지쳐 언제든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서울토박이들은 아무리 서울이 환멸 나게 싫어도 선뜻 다른 지역에 가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서울의 미세먼지가 지독하고 교통체증이 심해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존재에 치이고 도를 지나쳐버린 경쟁에 지쳐도, 그들은 돌아갈 수 있는 장소가 없다고. 존재만으로 위안과 안정을 가져다주는 그런 곳이. 너무 눈에 익어 눈을 감고도 돌아다닐 수 있는 그런 곳. 그저 그들은 잠시 숨을 틀 수 있는 공간으로 살짝 떠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떠난 장소에서도 다시 지도앱을 켜고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얼마간 긴장해야 하겠지. 그러니 떠나 온 장소도 결코 마음의 안식처가 될 수는 없을 터. 잠시 환기의 역할을 해줄 뿐. 


그렇게 생각하면 나의 고향 부산은 뭐랄까, 든든한 지원군 같은 기분이랄까, 언제든 그 자리그곳에 있어줄 내 편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마음이 들어, 서울출생이 아니라 억울해하던 게 많이 누그러진다. 나는 언제든 내가 아는 얼굴과 내게 익숙한 거리, 내 눈에 익은 간판들과 몹시 친숙한 공기가 떠다니는 곳으로 돌아올 수 있어. 이렇게 마음먹으니 머리가 홀가분해지는 동시에 뱃속이 든든해진다. 그러니 누군가 예전의 나처럼 서울에서 태어나지 못해 배알이 꼬인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무 상심치 말아요, 당신이 가진 선택지 중엔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존재하는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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