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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Jun 29. 2021

면접관님, 예의는 밥 말아 드셨나요?


처음에는 슬프고 슬퍼서 마냥 울다가, 이제는 그냥 화가 나, 라고 말했었지.

  

친구는 2차 면접까지 본 곳에서 일주일 째 아무 연락이 오지 않자 회사로 결과를 묻는 메일을 보냈다. 회사에서는 이미 합격자를 뽑았다는 답이 되돌아왔다. 씨발새끼들, 되면 됐다고, 안 되면 안됐다고 말이라도 해줘야 될 거 아니야, 친구는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 아이가 자기소개서를 비롯해 2번의 면접을 준비하는데 총 3주라는 시간을 쏟아 부었고,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동안 한껏 마음을 졸이며 희망과 좌절 사이를 무수히 오갔던 것을 알았기에 개새끼들, 하고 같이 욕을 해주었다.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그래도 결과는 알려줘야 할 거 아니야. 그게 지원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아니냐고. 자기소개서와 면접에 쏟은 시간과 에너지, 그를 초월하는 간절한 마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말이야 이 자식들아. 그런 말을 친구와 주고받다 문뜩 내 생애 첫 면접이 떠올랐다.


그때 내 나이가 스물다섯이었는데, 꽤 이름 있는 화장품 회사에 마케팅 직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 그곳에서 긴 탁상을 사이에 두고 실무자 4명과 내가 나란히 마주보고 앉았는데, 어찌나 떨리던지. 밤을 새가며 수십 번 연습했던 자기소개를 달달달달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고, 이어지는 질문세례에 진땀을 뻘뻘 흘리고.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리고. 긴장으로 바싹 마른 입술을 억지로 끌어올리며. 마지막으로 모든 대답을 마친 후 어색한 웃음을 지을 때쯤 실무자 중 한명이 나직이 입을 뗐다.


"글쎄요, 예란씨는 아무래도 이 직무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거 참······."


그는 곤란하다는 듯 눈동자를 굴리며 끝을 얼버무렸다. 나는 그의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조용히 눈을 내리깔고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이 들려오기를 기다렸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회사를 나왔다. 그렇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


화가 났다. 그런 말을 꼭 내게 말하는 저의가 뭔가. 그게 밤을 새서 내내 면접을 준비한 사람에게 할 말인가. 그냥 자기들끼리 있을 때 해도 되는 말이었잖아. 꼭 그렇게 사람 기분을 무참히 짓밟아야 직성이 풀리겠냐고. 정말이지 말하는 본새하고는.



한국은 청년이 청년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공간이다. 지금만 그런 게 아니다. 원래 그랬다. 어제까지 청년이었던 사람들이 지킬 것이 생기면 돌변한다. 그리고 반드시 해야 할 것들과 알아야 할 것들, 거쳐야 할 것들을 알려주는 대신 자신이 겪었던 가장 무의미한 형태의 부조리를 요즘 청년들은 피하고 싶어 한다고 타박한다.
-허지웅  <살고 싶다는 농담> -


그들도 자신들이 청년이었을 적 그렇게 무례한 방식으로 평가당하고 수치와 모멸을 주는 방식으로 대우받아서 우리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는 걸까. 그래서 합격여부조차 알려주지 않고, 사람 면전에 대고 당신은 이 직무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을 하고, 지원자에게 반말이나 찍찍 날리는 걸까. 도대체 청년이 존중 받는 세상은 언제 오는 걸까. 노인 공경, 연장자 공경은 그리도 외치면서 왜 아무도 청년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는 걸까. 왜 청년들의 열정과 간절함을 이용해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고 갑질을 정당화하는 걸까. 그리고 왜 이모든 것들을 청년들이 묵인하고 인내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참 뻔뻔해 다들. 참, 알 수가 없어.


“요즘 90년생한테는 무서워서 무슨 말도 못하겠어.” 따위의 말이 나돌아 다니는 걸 보면 아무래도 청년이 살기 좋은 세상이 오기엔 아직 먼 거 같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런 말이 나올 만큼 어느 방면에서는 조금씩 꾸준히 변화가 일어왔다는 뜻일 테다. 그러니까 지금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들, 그리고 앞으로 사회에 나오게 될 Z세대들이 조금만 더 힘을 내주기를. 조금 더 용기를 갖고 또박또박 자기 할 말을 다 할 수 있는 청년이 되기를. 그리고 이 글이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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