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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Jul 06. 2021

나는 보이그룹 오디션 프로그램<라우드>를 보고 슬퍼졌다

재능이란 과연 개인의 타고난 산물일까

    

저희 엄마는, 과격하게 말해서 ‘천재’에 환장하는 분이십니다. 타고난 재능을 가진 영재들을 보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지요. 그래서 재능 있는 아이들을 모아 경쟁시켜 놓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몹시도 좋아합니다. 그런 그녀가 요즘 꽂혀 있는 것은 보이그룹 양성 프로젝트 <라우드>. 프로듀서 박진영과 싸이가 재능 있는 소년들을 평가해 차세대 보이그룹을 만들어가는 TV프로그램입니다.


엄마는 오랜만에 본가를 방문한 저를 TV 앞에 끌어다 앉혀 놓고 “이것 좀 봐라”며 부산을 떠셨습니다. 저는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지만, 곧이어 스크린에 펼쳐지는 천재들의 향연에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감각적인 센스와 유머로 프로듀서를 사로잡은 아이부터, 스스로 비트를 찍어 작사작곡을 하는 아이, 영화를 찍는 청소년, 전 세계 춤 배틀에서 1위를 휩쓴 11살 천재 소년까지. 모두 혀를 내두를 만큼 탁월한 재능과 실력을 겸비한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모습을 보다 문득 슬퍼졌습니다. 각국에서 날아온 ‘재능 있는’ 아이들 뒤에 남겨진, ‘꿈을 꿀 기회’조차 없는 아이들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꿈은커녕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조차 발견하지 못하는 아이들, 무언가를 향해 죽도록 연습할 ‘노력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아이들 말입니다. TV에 비춰진 반짝이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는 값비싸 보이는 음악기기, 넓은 연습실, 카메라 장비와 녹음기 같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분명 부모님의 지원과 환경적, 자본적 뒷받침에서 비롯된 산물이겠지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재능’이란 과연 온전히 개인에게 속한 능력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재능이란 과연 개인의 타고난 산물일까. 그것을 발견할 수 있고 아름답게 자라날 수 있도록 해주는 환경적, 자본적, 문화적 뒷받침이 있었기에 그것이 비로소 재능, 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자연히 며칠 전 SNS에서 읽었던 은유 작가님의 칼럼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다른 ‘계급’에서 자란 아이들이 같은 날 같은 시험을 치르는 게 공정한 경쟁인가요> 라는 제목의 칼럼인데요, 잠시 내용을 언급해 보겠습니다.


“우선 능력은 개인의 것인가? 저는 교육열이 높기로 이름난 동네에 살았어요, 가까이서 본 그곳 아이들은 잠자리에서 동화책을 읽어주고 매 끼니 유기농 음식을 만들어주는 부모의 손길 아래 자랐죠. 잘 꾸며진 자기 방이 있고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게 어려서부터 훈련이 돼 있어요, 초등학교부터 질 높은 사교육을 병행한 그 아이들이 세월이 흘러 소위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책에는 현수의 사례가 나와요. 현수는 영구임대아파트에서 가족 6명이 살아요, 엄마는 장애가 있고 학교와 교육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합니다. 현수처럼 적절한 정보와 돌봄을 제공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배움이 느린 학생'으로 자라는 아이들이 사회곳곳에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계급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같은 시험지로 같은 날 시험을 치른다고 공정한 경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의 능력이란 것은 타고난 재능이나 자질보다 가족으로부터 우수한 학업 기회가 제공되느냐, 행운이 따르느냐 등 비능력적인 요인에 의해 많은 것이 좌우됩니다. 그런 점에서 "부모를 잘 만나지 못한 능력이 현수의 능력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해도 무리가 없게 되죠, 저자는 말해요. "능력은 환경적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며 온전히 개인에게 속한 능력이란 환상이다."


"능력은 환경적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며 온전히 개인에게 속한 능력이란 환상"이라는 문장이 마음에 맺혔습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재능이라는 것도 개인의 고유한 능력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인적 자본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완성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실패가 온전히 우리의 탓만은 아니듯, 누군가의 성공이 모두 그 자신 덕만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아, 물론 프로그램에 나온 아이들의 무수한 땀방울과 노고의 시간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건 건 아닙니다. 그들의 타고난 재능을 부정하려는 것도 아니고요. 그들도 분명 그 자리에 가기까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왔을 겁니다. 다만 그 시간을 견디면서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 온전히 개인의 재능이나 의지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거죠. 사실은 재능이라는 것도 완벽히 개인에게 속한 특성도 아니고요.


이 글을 쓴 건 우리 모두가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들의 재능과 열심만 찬양할 게 아니라 그 이면에 남겨진, 재능과 열심을 좇을 여건조차 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리고 재능이란 것이 발견되고 싹을 틔워 꽃을 피우는 과정에는 결코 한 사람의 개인적인 노력이나 의지만 필요한 게 아니라는 것도요. 그것을 잊지 않을 때 우리는 세상을 더 다양한 시선으로 폭 넓게, 그리고 관대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흥미진진한 천재들의 경쟁 속에서도 슬픔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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