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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Jul 19. 2021

스물일곱 살에도
엄마가 있어서다행이다.


사고 쳤다. 사고를. 

자전거로 사람을, 그것도 초등학생 아이를 치었다.


인도에서 아빠 뒤에 서 있는 아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만 어엇, 눈 깜빡할 사이에 일이 일어난 것이다. 다행히 외관상 큰 부상은 없었고, 같이 병원에 가 진찰을 받아보니 인대가 조금 늘어났다고 했다. 의사는 반깁스를 제안했지만 아이의 엄마는 번거롭다며 그냥 최대한 주의해서 다니겠다고 제안을 거절했다. 나는 그녀에게 죄송하다며, 치료비는 나중에 합산하여 한 번에 보내주겠다고 말한 뒤 헤어졌다.


그런데 다음날 그녀로부터 치료비와 위로금을 요구하는 문자가 왔다. 나는 치료를 다 받은 뒤 돈을 합산하여 보내주겠다고 말했으나, 그녀는 쓸데없이 병원에 다니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며 20만원을 당장 보내달라고 했다. 그녀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나는 더 이상 가타부타 덧붙이지 않고 요구하는 금액만큼 부쳐주었다.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사흘 후, 그녀는 아이의 발목이 다시 욱신거린다며 병원에 가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했다. 나는 그 문자를 보고서 어이가 없었다. 아니, 전에는 마치 합의한 것처럼 위로금까지 합하여 당장 돈을 보내달라더니, 이제 와서 또 병원에 가야 한다며 돈을 요구하다니. 나는 울컥하여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이가 그렇게 아팠으면 당장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어야지 10일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게 말이 되냐며, 그리고 처음에 의사말대로 반깁스를 했으면 진작 나았을 건데 본인이 거절하여 상황을 악화시켜놓고 그 책임을 나에게 다 전가하면 어떡하느냐고.


나는 당장에라도 전화를 걸어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일단 엄마에게 지혜를 구하기로 했다. 엄마는 상황을 들어보더니 그런 식으로 말하면 후에 너에게 불이익이 올 수도 있다고, 인도에서 자전거로 사람을 친 건 100퍼센트 너의 잘못이니 일단 잠자코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나보다는 아이를 키워본 엄마가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해보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나는 스물일곱이나 되어 상황을 혼자 해결하지 못하는 게 부끄러웠지만, 정말로 내가 전화하면 상황이 악화될 거 같아 엄마에게 그녀의 번호를 건넸다.


엄마는 부드럽고 융통성 있게 그녀와 통화를 이어 기며 상황을 정리했고, 앞으로 이 일에 대해서는 자신과 연락을 주고받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엄마는 전화를 마친 뒤 너는 앞으로 이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아이가 빨리 나을 수 있도록 기도나 열심히 하라고 했다. 회사생활과 출간준비로 정신이 없는 나를 배려하여 엄마가 전적으로 이 일을 맡아주기로 한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가 옆에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내게 무슨 일이 있을 때 인생의 연장자로서 조언해줄 수 있고, 함께 일을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 전적으로 내편이 되어줄 사람. 내가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해도 내 옆에서 나를 든든하게 감싸줄 수 있는 사람. 나의 부모, 나의 엄마가 지금까지 함께 있어주어 나는 무척 행운아라고. 무척 다행스럽고, 그런 당신에게 감사한다고.



내가 21살적, 동갑내기 사촌의 어머니가 심정지로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서 상복을 입고 온통 눈물로 얼룩진 그 아이의 얼굴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야··· 너··· 너 이제 어떡해······ 어쩌면 좋아.” 라고 말했다. 아이는 내 말을 듣자마자 무너지듯이 주저앉으며 흐느꼈고, 나는 그런 그녀를 조심스레 안아주었다. 아마 그녀는 내말을 들었을 때 세상에서 유일하게 끝까지 자신의 편이 되어줄 사람의 영원한 상실을 다시 한 번 상기했으리라. 그래서 마른 눈물자국이 자욱한 볼에 다시 한 번 눈물을 쏟아냈으리라.


10년 전, 우리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다. 어느 날 엄마가 부엌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길래, 다가가 “엄마, 울어?” 하고 물었다. 엄마는 촉촉해진 눈가를 문지르며 “아니 그냥··· 더 이상 세상에 완전히 내 편인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세상에 온전히 내 편인 사람. 엄마라고 칭할 수 있는 사람이 이제는 존재하지 않아 가슴이 사무친다고.


“아이고, 나도 이제 곧 죽을 텐데 뭐~” 정년 60세인 우리 엄마는 장난으로 종종 이런 말을 한다(주로 몸에 나쁘지만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을 때). 예전이라면 귓등으로라도 안 들었을 테지만, 이제는 조금 가슴이 무거워진다. 그래서 부러 더 밝게 “아냐~ 엄마 적어도 20년은 더 살아야 돼~”라고 말하며 장난을 건넨다. 그리고는 다짐한다. 시간을 내서 메시지 하나라도 더 보내고 전화 한통이라도 더 걸어야겠다고. 집에 조금 더 자주 들러야겠다고.


그렇게 당신과 틈틈이 다정의 시간들을 나누며, 

당신은 세상에 유일무이한, 온전한 내편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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