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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Jul 20. 2021

자전거로 사람을 치고 나서야 깨달은 것들

바로 이전의 글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사람을 쳤다. 자전거로, 인도에서, 초등학생 아이를.

아빠 뒤에 가려져 있다가 그가 옆으로 비켜서면서 갑자기 아이가 시야에 확, 나타났고, 순간  속도조절을 못해 아이를 그대로 들이 받고 만 것이다. 아이는 뒤로 넘어지며 나동그라졌고, 아이의 엄마와 아빠는 비명을 지르며 부산스레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그런데 나는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이 일어나는 동안 그냥 멀뚱히, 아이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아이가 자전거와 부딪혀 넘어졌을 때도, 엄마아빠가 깜짝 놀라며 아이를 안아 올릴 때도, 어디가 아프냐며 아이 다리를 호들갑스레 만져 볼 때까지도 나는 그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눈썹을 찌푸린 채 응시. 결국 아이의 엄마가 뭘 그렇게 가만히 있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때서야 죄송하다며 꾸벅, 사과를 했고 뒤늦게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이후 병원에 같이 가 진료를 받고 합의금과 진료비에 대한 논의를 끝내고 나서도 나는 한동안 멍한 상태로 있었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난 것처럼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머리가 깨질듯 지끈거렸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렇지만 빠르게 퍼지는 두통 가운데에서도 강한 의문 하나가 들었다. 나는 왜 그 때 가만히 있었는가.


아이의 엄마 말대로, 응당 사람이라면 곧바로 괜찮느냐고 물어보며 아이를 살펴야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왜 나는 인격 파탄자처럼, 또는 소시오패쓰처럼 무표정하게 그걸 바라만 보고 있었느냐고. 심지어 나는 그 순간 짜증이 났었다. 또 귀찮은 일에 생겼다는 사실에 조용하지만 강한 짜증이 일었다.


나는 정녕 쏘시오패쓰란 말인가.

아닌데,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나는 그렇게 경우 없고 이기적이며 몰상식한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나는 평소에 타인의 감정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공감해주며 도닥여주는 사람인데, 어떻게 내가 그런 행동을 할 수가··· 그러니까 그 순간 짜증을 낼 수가······· 있었느냐고. 나는 그로부터 삼일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그 생각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한 가지 사실에 도달했다. 내가 그때 왜 그랬는가에 대한 대답을.



나는 지쳐있었다. 나는 당시 모든 것에 지쳐있었다. 자전거 사고가 일어나기 바로 전쯤 회사에서 큰 일이 하나 터졌고, 나와 상사는 그걸 수습하느라 동분서주 뛰어다니고 마음을 졸이며 약 2주간 밤낮으로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일이 수습되어 드디어 한시름 놓을 때가 되자 나는 완전히 방전 상태 되어있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씻고 출근을 하고 밥을 먹는 등 일상생활의 지극히 평범한 지점들마저 내겐 힘에 겨웠다. 작은 자극에도 화가 났고 모든 인간과 일에 환멸이 났다. 한편으로 나는 잔뜩 예민해져 있었고, 다른 방면으로는 이상할 정도로 무감하고 무뎌져 있었다. 양립할 수 없는 두 상태가 한사람의 몸에서 폭죽을 터뜨리고 있었다. 나는 하루에도 온탕과 냉탕을 몇 십번씩 오가는 정신 상태에 몸과 머리가 고장나버렸다. 그 상태에서 또 다른 사고가 일어나 버린 것이다.


나는 저 일련의 사건으로부터 두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나, 누구라도 완전히 지쳐버리면 너무도 쉽게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것. 둘, 그렇기에 그 상태가 되기 전에 적절한 조취를 취해야 한다는 것. 평소에 마음이 따뜻하고 관대한 사람이라도 영혼이 고갈되면 쉽게 괴물이 된다. 타인의 감정에 무뎌지고 모든 자극에 무감해지며 쉽게 화와 짜증을 분출한다. 더 이상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되어버리고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그저 회의감과 관성 사이에서 기계적으로 키보드를 두들긴다. 그래서 타인에게 쉽게 상처를 주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러 관계를 망쳐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신과 육체가 완전히 고갈되기 전, 스스로에게 적절한 처방을 내려야 한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마음이 들 때면 모든 것을 멈추고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연차를 내서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시간을 확보하거나, 숨통이 트일 수 있는 곳으로 훌쩍 떠나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맛있는 케이크 먹기, 독서, 한밤에 산책하기 등)을 하기 위해 어떻게든 하루 중에 짬을 내야 한다. 시간이 있을 때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지만 우리는 각박한 세상 속에서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아직도 사고 당시의 내 태도를 생각하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싶어질 정도로 부끄러워진다. 많이 놀랐을 어린 아이와 부모에게 비인간적인으로 굴었던 모습이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동시에 퍽 싫어진다. 물론 그 후에 장문으로 사과의 말씀을 전했지만, 그렇다고 내 잘못의 무게가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잊지 않으려고 한다. 두고두고 살면서 기억하려고 한다. 내가 그 사건으로 인해 깨달았던 두 가지 사실을. 그 사실들을 기억하면서 다시는 괴물이 되지 않게 스스로를 방치하지 않을 테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잘못에 좀 더 관대한 사람이 되어야지. 그 사람도 평소에는 따뜻한 사람이나, 현재 너무도 지친 상태여서 한순간 실수한 것일지도 모르므로. 그렇게 조금씩 나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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