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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Aug 30. 2021

‘나’를 변호해줄 수 있는 사람

  

친구의 메시지를 읽고 또 읽었다. 

형용할 수 없는 여러 감정이 한 군데 모여 소용돌이 쳤다.


전에, <자전거로 사람을 치고서 깨달은 것들> 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거기에서 나는 자전거로 아이를 치고 난 후 조용하고 강하게 짜증이 일었다고 했다. 몇 주 전 회사에서 큰 일이  터져 그걸 수습하느라 고군분투하다가 이제야 한숨 돌리게 됐는데, 또 이런 일이 일어나니 성가시고 짜증난다고. 그리고 사람을 치고서 그런 생각을 했다는 스스로에게 놀라 나 자신을 괴물이라고 칭했었다.


친구는 그런 나를 보며 전부터 해오던 생각을 조심스레 메시지로 전했다. 친구는 내가 안타깝다고 했다. 일련의 사고들이 연달아 생긴 것이 안타까운 게 아니라, 그런 일들이 터질 때마다 내가 내편이 되어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자신을 적극적으로 변호하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그러니까 막을 수 없는 사고가 일어났고, 충격으로 멍해진 자신을 괴물이라 칭하는 것도, 성가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사과하고 합의금을 물어주는 등 도의적 책임을 다했음에도 계속 자책하는 것도 마음이 아프다고.


그럴 때는, ‘뭐! 나는 할 만큼 했어, 뭘 더 어쩌라고!’ 라고 생각해도 된다고. 회사에서 잘못을 했을 때도 ‘나만 잘못했냐? 너도 잘못했으니까 이 사달이 났지!’라고, 좀 뻔뻔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해줬으면 좋겠다고. 행동이야 그렇게 하면 안 되겠지만 마음만은 너 자신을 변호하고 너의 편이 되어주는 방향으로 가졌으면 한다고.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그런 사람이 필요하니까.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변호하고 옹호해주는 사람이. 친구는 그 사람이 나 자신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의 상황과 마음은 내가 제일 잘 알 테니까. 마지막으로 친구는 한마디 덧붙였다. “너를 돌보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너를 변호하는 일이야”



친구의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울렁거렸다. 나를 위해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장문의 메시지를 보낸 친구의 아름다운 마음, 나는 이제껏 한번이라도 내 편이 되어준 적이 있었는지에 대한 의심, 왜 나는 내편이 되어주지 못했을까 라는 의문, 스스로에게 너무 모질게 대하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반성. 그리고 나를 진심으로 옹호하고 변호해줄 수 있는 건 나 자신이라는 깨달음. 여러 감정이 폭죽처럼 터지며 뒤섞였다. 메시지를 읽은 그날 밤은 아름다우면서도 심란했고 소란스러우면서도 고요했다.


내가 정녕 나의 편이 되어줄 수 있을까. 언젠가는 잘못을 저질러도 나를 두둔하고 감싸줄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올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평생을 내편이 되어주지 못했기에 단번에 태도를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노력은 해야지. 내가 나를 옹호해 줄 수 있도록, 내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나를 변호해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좀 더 강해져야지.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세상에서 건강하고 씩씩하게 살아남기 위해서 나를 열심히, 뻔뻔스럽게 변호해 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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