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거하게 취한 날이었다. 우리는 1차로 선술집에서 와인 한 병을 너끈히 비우고 2차를 도모하러 친구네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친구가 집에 담배를 사놨다고 한 말이 기억났다(친구는 아주 가끔 담배를 피우는, 흡연인과 비흡연인의 경계에 있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말했다. 야, 너희 집 가서 담배 피우자, 라고. 친구는 푸슬푸슬 웃더니 그러자고 했다.
담배는 내 오랜 궁금증의 대상이었다. 맛은 어떨까? 피우면 진짜로 정신이 맑아지나? 주변이 환기될까? 번뜩, 기막힌 아이디어가 솟아오르려나? 스물다섯 무렵부터(인생이 본격적으로 지랄 맞아졌을 무렵부터) 쭉 궁금했으나 선뜻 피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게 건강에 그렇게 안 좋다던데. 중독되면 어떡하지? 한 갑에 5000원? 너무 비싸···. 주변에서 들은 말들과 상황을 종합해봤을 땐 역시 피우지 않는 게 나은 것 같았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담배를 영접해볼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당시 우리는 취했었고, 기분이 매우 좋았으며, 어느 정도 바보스럽고 대담해져있었다. 거기에 담배와 라이터가 고이 집에 구비되어 있으니, 망설일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얇은 담배를 입에 물고서 불을 붙였다. 친구는 처음엔 콜록거릴 수 있다고 주의를 줬다. 긴장 반 설렘 반으로 한 모금 깊게 빨아들였다가 길게 내뱉었다. 후우, 하얀 연기가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깊고 진한 향도 마음에 들고 맛도 꽤 괜찮았다. 오호라, 이런 거였구나. 드디어 마음속에 웅덩이처럼 고여 있던 오랜 궁금증과 환상이 풀렸다. 나는 그렇게 반쯤 풀린 눈으로 인생의 첫 담배를 느긋이 즐기고 있었다. 그때 친구가 말했다.
“역시, 뭐든 직접 해봐야 알 수 있는 거 같아.”
어떤 맥락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친구는 그게 무엇이든 직접 부딪혀봐야 그에 대해 알 수 있고, 뭐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담배를 바라보며 어, 정말로 그러네, 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그랬다. 남들이 다 반대하고 별로일 거라고 말하던 담배도 직접 펴보니 나쁘지 않았고, 남들이 다 찬양하는 서울에서도 직접 살아보니 영 나랑 맞지 않았었다. 번듯해 보이는 기업도 실은 주먹구구식으로 일하는 데가 많았고, 반대로 규모는 작아도 체계적인 업무처리방식을 정립한 회사도 있었다. 그러니 역시 남의 말만 믿고 무언가 섣불리 판단하고 뭐라 단정할 순 없는 노릇이다.
언젠가 책에서 ‘나도 나를 경험해봐야 안다’는 문장을 읽은 적 있다. 우리는 종종 자신에 대해 서 충분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는 우리가 경험해보지 않은 상황에 대해 그렇게 쉽게 추측하고 판단을 내릴 만큼 스스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까. 전에, 나는 그렇다고 믿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뜻밖의 내 모습에 스스로 놀랄 때가 많았다.
침착하리라 예상했던 상황에선 오히려 욱해버렸고, 나는 남들과 달리 참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상황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참고 넘어갔다. 객관적으로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이더라도 나에게 평안을 주는 선택이 있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었다. 모두가 괜찮을 거라 예상했던 선택지도 나에겐 영 맞지 않아 고역을 겪은 적도 있다. 나도 나를 경험해봐야지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세상에는 내 생각보다 훨씬 많았던 것이다. 다,
나도 나를 경험해봐야지 알 수 있다고, 그 말을 되새기며 나는 담배를 펴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뭐든 역시 직접 해봐야 알 수 있는 거니까. 괜히 남들 말만 철석같이 믿었다가 이 좋은 느낌을 경험해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으니. 그거야말로 어리석은 일 아닐까. 어떤 게 좋고 어떤 건 별로다, 이렇게 하면 더 힘들어질 거다, 이게 최선의 선택이다. 이런 남들이 하는 말은 적당히 흘려듣고 역시 내가 해보고 싶은 건 직접 하면서 살아야겠다.
왜냐하면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니까.
나도 나를 경험해 봐야지 알 수 있는 것들이 세상에는 넘쳐나니까.
그러니까 일단은 해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