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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Aug 23. 2021

커뮤니케이션은 약자의 전유물이다

   

교수님은 말했다. 커뮤니케이션은 약자의 학문이라고(나는 신문방송학과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다). 커뮤니케이션이란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설명하고, 무언가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인데, 권력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럴 필요가 없다고. 그들은 그저 명령만 하면 되는 위치에 있기에.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은 약자의 위치에 있던 사람들에 의해 발전되어 왔으며, 지금처럼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전 대통령 박근혜씨를 떠올렸다. 그녀는 발표를 하거나 토론을 할 때 지지부진하고 장황하게 말을 했으며 자주 떠듬거렸다. 그래서 대면으로 업무 보고를 하는 것을 꺼려했고, 급기야는 일반인에게 국가기밀 문서를 보여주고 대필을 요청하는 등 있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러 버렸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권력을 쥔 사람이었고, 탄핵되기 전까지 그 권력을 쭉 누려왔던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굽실거렸을 것이고, 그녀의 말은 곧 법이었을 것이다. 무언가를 논리정연하게 설명할 필요 없이 그저 단어 한 두 개만 툭툭 뱉어도 다른 사람들이 척척 일을 처리해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커뮤니케이션이란 영역에서 완전히 실패한 사람이 되었다.


그에 반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물 흐르듯 유려하게 말을 했으며 언어의 강세를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상대방의 말을 부드럽게 수용하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강하고 단호하게 피력하는 법을 알았다. 약자를 배려하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원활히 커뮤니케이션 했다. 그 역시 약자의 위치에 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유년시절 가정 내에서, 그리고 현재 사회 안에서 항상 ‘을’의 위치에 서있다. 사람들은 내말을 귀담아 들어주지 않았고, 나라는 인간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내 말에 귀 기울여주는지를 고민했고, 글을 잘 쓸기 위해 연습했다. 나 자신을 타인에게 피력하기 위해서, 내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나 지금 여기 있다고.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그렇게 하다 보니 타인의 목소리를 정성껏 듣고 그들의 내면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남에게 받길 원하는 것이니, 남들도 나처럼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가난하고 불행하고 약자였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완성됐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이란 학문에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정리하자면, 우리가 소위 ‘강자’로 여기는 사람들은 의사소통에 미숙하고, 오히려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그에 강하다는 건데, 이걸 바꿔 말하면 약자의 시절을 경험한 사람들은 글과 말, 미디어를 통해 사람과 세상과 소통하는 능력에 뛰어나다는 뜻이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자신의 의견이 타인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는지 고민하는 사람들일 테다. 그래서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글을 읽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결핍은 그 자체로는 연약하지만 스스로 그것을 무엇이라고 믿고, 남에게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따라 위대해질 수 있다

                                                                        -정문정<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중-


그러므로 자신이 현재 약자라고(과거에 약자였다고) 너무 좌절하지 말자. 그 낮은 위치로 인해 당신은 의사소통 능력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쥘 수 있었을 테니까. 그리고 그 무기가 녹슬지 않도록, 더욱 효과적으로 타인과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꾸준히 읽고 쓰는 사람이 되었을 테니까. 그런 사람은 언젠가 권력을 쥔 사람들보다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들을 신뢰한다. 허점과 약점이 있는 사람들, 어딘가 부족한 사람들을 믿는다. 그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내 세계가 확장되고 풍부해짐을 느낀다.


예를 들어··· 그래,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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