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었을 적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엄마가 급식으로 뭘 먹었냐고 매번 묻는 것이었다. 아니, 급식으로 뭘 먹었는지가 왜 궁금하지? 해줄 것도 아니면서! 나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매우 귀찮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서 대충 말을 뭉개거나 못들은 척 했다(못됐기도 하지).
그런 내가 언젠가부터 언니에게 점심은 먹었는지, 먹었다면 뭘 먹었는지 매일 묻고 있다. 처음에는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엄마가 보낸 점심은 먹었느냐는 카톡에 답을 할 때쯤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어, 내가 전에 그토록 귀찮아하고 쓸데없다고 생각한 질문을 언니에게 매번 묻고 있었네? 그리고 엄마는 그걸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내게 계속 묻고 있었구나! 나는 그제야 “밥 먹었니?” 라는 문장의 내면에 뭔가가 있음을 깨달았다.
엄마가 내게 밥은 먹었냐고 매일 묻는 것, 내가 언니에게 점심은 먹었느냐고 매번 메시지를 보내는 것, 이제는 돌아가신 지인이 나를 만날 때마다 밥은 무슨 반찬을 먹었는지 물었던 것. 그 기억들을 하나로 쭉 나열하자 답이 나왔다. 이들이 말한 밥 먹었느냐는 질문은 형식적으로 안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정말 상대방이 밥을 먹고 다니는지, 먹었다면 무엇을 먹었는지 순전히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다. 그렇다면 그게 왜 궁금할까? 바로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하찮고 사소한 것들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전에 나는 언니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언니에게 굳이 격식 차리며 안부를 물을 필요도 없고, 스스로도 그런 질문은 아주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6개월 전쯤 내 우울증이 아주 심한 상태였을 때, 언니에게 정신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다. 무너져 가는 정신을 언니 덕분에 그나마 추스르고 몸을 움직여 하루에 한 끼라도 챙겨 먹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내가 가장 힘든 순간 기꺼이 내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주었다 아주 다정하고 인내심 있게.
그 후로 정신의학과에 다니고 어느 정도 상태가 괜찮아 졌을 무렵부터 언니에게 밥은 먹었느냐고 묻기 시작했다. 그건 아마 어려운 시기에 힘이 되어준 언니에 대한 애정이 전보다 훨씬 깊어졌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언니가 무엇을 먹고 지내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졌으리라.
그리고 한 가지 더.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하루에 두 번,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이 되면 매번 밥은 먹었는지, 뭘 먹었는지 묻는 엄마가 가슴 한 구석에 남겨져 있었다. 그녀는 내가 언니를 애정하고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해서 꾸준히 그 질문을 했을 것이다 나의 시큰둥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결국 ‘밥은 먹었니?’라는 질문은 사랑한다는 말의 다른 형태였다. 상대방을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지극히 일상적이고 하찮은 부분에 계속해서 관심이 기운다는 뜻일 테니까. 그런 것들이 진심으로 궁금하고 신경이 쓰인다는 뜻일 테니까. 그걸 깨달은 후로, 나는 도저히 엄마의 질문에 대충 답할 수가 없게 되었다. 당신이 나를 이렇게 사랑한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에, 그녀의 메시지에 정성껏 뭘 먹었는지 세세하게 답한 후 그녀에게도 꼭 되묻는다. 엄마는 밥은 먹었냐고, 무엇을 먹었느냐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밥은 먹었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질 사람이 몇 명이나 더 생길까? 부디 넉넉히 생겼으면 좋겠다. 그만큼 진심으로 애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늘어나길 바란다. 나의 가족뿐 아니라, 주변의 지인들에게도 매일 밥은 먹었는지 물을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상대방을 더욱 깊고 세밀하게, 더욱 다정하게 사랑하고 싶다.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었으면 한다. 그런 방식으로, 서로의 끼니를 신경 쓰며 묻는 방식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싶다.